된장찌개의 예술

어느 계절에 먹어도 맛있는 된찌

by 일상의빛

할머니는 이 구역 요리사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먹은 음식이 지금도 내 입맛을 쥐고 흔들어 행복감을 줄 줄은 그 때는 몰랐다. 그러나 다른 감각이 가지고 있는 기억보다 음식을 직접 먹어서 몸 안에 세포로 저장했던 미각은 그 기억을 더 오래토록, 더 강렬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의 음식 중에 사계절 즐길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된장찌개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고 자주 등장하는 국민찌개다. 그 시절 할머니가 해 주신 된장찌개는 어린 내게도 정말 맛있었고, 특별함이 있었다. 그 킥은 바로 알새우다. 할머니는 항상 된장찌개에 감자와 양파 고추 소고기 그리고 작은 새우를 넣어주셨다. 작은 새우를 건져먹는 재미가 있었다. 씹을 때 톡톡 터지는 조그마한 새우를 먹으면 다른 식당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식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기보다 부드러워 어린 내가 씹어 먹기에도 편했고, 새우가 주는 바다 향이 된장찌개에 어우러져서 고소함이 극대화 되었다.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항상 뚝배기에 끓여주셨는데, 그 뚝배기를 '투가리'라고 하셨다. 새우는 '새비'라고 부르셨는데, 보글보글 끓는 투가리를 들고 밥상 가운데 놓아주시면서 '새비 많이 건져 먹어라'라고 하셨다. 기억해보면 늘 음식 중에 맛있는 재료를 많이 건져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나만의 주방장의 엄청난 손주사랑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그 엄청난 특권을 먹고 자라 음식에 대해 풍족감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마가린이다. 지금은 몸에 나쁘다고 해서 잘 먹지 않는 마가린이 그 때는 참 인기가 많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한 밥에 마가린을 한 숟갈 퍼서 슥슥 비빈다. 그리고 그 위에 감자 소고기 새비가 가득 들어있는 된장찌개를 한 숟갈 크게 퍼서 밥에 얹고 슥슥 비빈다. 그러면 마가린의 고소한 맛이 된짱찌개의 짭짤함과 그 안에서 끓여진 각종 재료들을 한 데 어우러졌다. 크게 퍼서 입안에 왕~ 하고 넣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식탁에는 마가린과 버터가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버터가 인기가 많지만 그때는 마가린이 몸에 더 좋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더 이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특유의 향과 맛을 잊을 수 없다.


두 번째 방법은 열무 김치다. 할머니는 김치의 달인이기도 하셨는데, 계절마다 알맞는 김치들이 밥상에 절대 빠지지 않았다. 그 중에 된장찌개와 굉장히 잘 어울렸던 김치는 열무 김치였다. 먹는 방법은 이렇다. 고슬고슬한 밥에 재료가 가득 들어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한 숟갈 퍼서 얹고, 그리고 열무김치도 한 숟갈 넣고 슥슥 섞는다. 그러면 된장찌개에 열무김치가 주는 약간의 새콤함과 시원한 아삭함이 가미가 되는 데 그것이 또 별미이다. 이 방법은 여느 식당에서 많이 해 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밥에 열무김치와 참기름, 고추장을 넣고 섞은 후 된장찌개 한 두 숟갈을 넣어서 먹는 방식이다. 비빔밥 못지 않게 양푼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 바로 된장찌개와 열무김치이다. 마가린이 없어도 된장찌개에 들어있는 감자를 숟가락으로 톡톡 으깨면 매우 부드러워 진다. 그리고 새콤하게 익어가는 열무 김치 몇 조각을 얹어서 입 안에 넣으면 된장찌개의 구수함에 톡톡 튀는 열무 김치가 어우러져서 입 안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할머니 음식이 그리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재밌는 현상을 겪고 있다. 입에 침이 고이고, 배가 급격히 고파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할머니의 된장찌개가 생각나서 새우를 넣고 끓여보았다. 딱 그 맛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흉내만 내어도 맛있었다. (최대한 작은 새우를 샀는데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사이즈의 새우를 찾기란 어려웠다.) 할머니 손 맛은 흉내낼 수 없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니 할머니 밥상은 지금도 내게 떠올릴 때 마다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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