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키스트 보리차

마법의 위장약

by 일상의빛

생수를 사 먹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시절, 집에는 항상 갈색 빛깔을 영롱하게 뿜어내는 보리차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냉장고에서 꺼낸 보리차를 컵 한가득 담아서 마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생수보다 더 시원하고 설탕을 안 넣어도 다디단 맛이었다. 집에는 항상 보리차가 가득했는데, 주로 동서보리차 티백을 사용했다. 대형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보리차 티백을 넣고 잠시 우려내면 구수하고도 향긋한 보리차가 되었다. 너무 많이 끓이면 차맛이 너무 강해지기에 살짝 우린 다음에 티백을 거둬놓고, 뚜껑을 열어 김을 식힌 후, 식으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전기로 데워지는 커다란 정수기에서 나오는 냉수는 흉내도 못 낼 맛이었다.


당시, 보리차를 담아두었던 유리병 중에 가장 애용하였던 병은 썬키스트 오렌지주스 유리병이다. 이 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민 물병'으로 불리며 전국의 모든 가정집에서 보리차를 담아놓았던 국산 애용품이었다.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유리병은 찰랑찰랑 거리는 보리차를 더 맛있게 보이게 만들었고, 움푹 파인 손잡이 부분도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유리제품이라 재활용하기도 친환경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3년까지 판매됐고 그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고 한다. 해태에서 이 유리병을 다시 생산해 주면 안 될까? (꼭 재고해 주시길...) 아직도 유리병에 붙어있던 '무가당' 마크가 기억난다. 양도 1.5L로 물병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했다. 안에 든 오렌지주스도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는 유리병인 것이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가 찰랑거리는 것을 보면, 그 시절 누구라도 마음이 시원하고 풍족해졌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종종 소화가 안 돼서 속이 아팠고, 가족 중에서도 위장이 약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밥을 야무지게 먹었는 데, 밥을 다 먹은 후에 밥그릇에 묻은 밥 알 한 알 한 알도 남김없이 먹었다고 한다. 특히, 그 한 알을 깔끔하게 떼어먹기 위해 보리차를 반 정도 부어서 슥슥 긁어서 먹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국밥을 국물을 남김없이 먹는 스킬을 어릴 적부터 터득한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어릴 적에 자다 보면 속이 쓰려 울면서 일어날 때가 종종 있었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밥을 안 먹고 자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배가 고파서 깬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그럴 때에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주셨고, 나는 졸다가 울다가 따뜻한 보리차에 적신 밥을 한 숟갈씩 떠먹었다. 여기에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조합이 있는 데, 할머니의 배추김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할머니 손 맛이 담긴 배추김치의 하얀 줄기 부분을 한 조각 잘라 그 위에 딱 올려 먹으면 보리차의 구수함과 김치의 깊은 풍미와 톡 쏘는 맛에 쌀밥이 내는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지면서 최고의 한 숟갈이 되었다. 입도, 위도 즐거워지면서 속 쓰린 현상도 금방 잦아들어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보리차에 뜨신 쌀밥을 말아서 김치 한 조각 올려 먹는 그 단순한 밥이 내겐 최고의 명약이었다.


보리차를 주로 끓이던 이는, 역시나 이 구역 최고 요리사인 할머니께서 가장 잘 끓여주셨다. 생각해 보니 차에 밥을 말아먹는 것은 보리굴비처럼 꽤나 고급진 방식 아닌가. 할머니의 밥도, 보리차도, 반찬도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랑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내가 완밥 할 때마다 나를 보며 애정이 가득 담긴 한 마디를 말씀하셨다. "아이구, 내 새끼~" 밥도 맛있어서 즐거운 데, 칭찬도 받으니 아마 나의 자존감은 할머니의 밥상 앞에서 다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썬키스트 유리병을 보았다. 빈티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식당이었는 데, 그 유리병에 들은 작두콩차가 어찌 그리 맛있던지. 밥도 맛있었지만, 덕분에 반가움도 가득 안고 나올 수 있었다. 내 속을 달래주던 어릴 적 보리차, 요즘은 자주 볼 수 없지만, 가끔 그 선키스트 유리병 보리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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