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설렁탕의 매력에 빠질 시간

푸짐한 재료들이 향연 속으로

by 일상의빛

새해 맞아 글쓰기를 하기로 다짐을 하고 내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주제인 할머니의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누가 볼 거란 기대는 전혀 안 하고 쓰는 데 몇 글을 확인해 보니 하트가 많이 달려있다. 브런치가 이렇게 훈훈하고 좋은 곳이라니, 후루룩 써 내린 서툰 글도 좋았다는 반응을 보고 어제 잠이 안 올 뻔했다. 할머니 음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겐 큰 활력이기에, 내 어릴 적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하루에도 '조식에 나온 오렌지주스 한 잔' 마냥 생생함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라면 좋겠다.


어느 날, 티브이 방송을 보며 알게 된 놀라운 정보가 있다. 그것은 순대를 찍어먹는 양념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순대는 소금에 찍어 먹는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에서 먹은 순대에는 소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초장, 쌈장 등 다양한 양념을 찍어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몰랐던 음식 정보였다. 그리고 이 차이가 순대러버들에게도 충격이었는지 온라인상에서는 '순대, 뭐에 찍어 먹으세요? 소금? 쌈장?' 이런 질문들이 많다. 나는 순대에 소금을 곁들여 찍어먹는 지역에 살았으나 순간 초고추장도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구역 요리사께서 초고추장을 기가 막히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주인공은 초고추장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설렁탕이다. 설렁탕과 초고추장이 무슨 연관일까 싶지만, 내 DNA에 깊게 새겨진 음식의 연결고리는 "설렁탕 고기 + 초고추장"으로 맺어져 있다. 설렁탕 식당을 방문하면, 보통은 간장류의 양념을 내어 주신다. 하지만, 설렁탕에 초고추장도 정말 맛있는 조합이다. 설렁탕에 들어있는 각종 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고깃국의 고소함과 묵직한 맛 위에 초고추장의 기분 좋은 매콤함과 상큼함이 팡팡 뛰어노는 것 같다. 잠시, 아직도 오늘의 주인공을 못 만났다. 이제 이 구역 요리사, 울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설렁탕을 살펴보자.


오늘 글의 제목을 정하며, 할머니께서 해주신 고깃국이 설렁탕이었는지 곰탕이었는지 매우 헛갈렸다. 네선생님의 도움을 얻어 확인해 보니 곰탕은 고기와 내장을 끓인 맑은 국물이 특징이고, 설렁탕은 뼈·도가니 위주로 끓여 뽀얀 사골 국물이 특징이다. 두 음식 모두 만들어주셨지만, 오늘은 맑은 국물의 설렁탕을 선택해 보았다. 할머니의 설렁탕에는 다양한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살코기와 물렁 고기와 검은 고기이다. 살코기는 소고기의 메인 고기이다. 주로, 사태와 양지를 사용하셨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정확한 건 엄마에게 한 번 여쭤봐야겠다. 이 살코기의 특징은 두꺼운 데 부드럽다는 점이다. 설렁탕집에서 주로 봤던 2-3mm 정도의 고기가 아니다. 1cm는 넘는 숭덩숭덩 잘린 멋드러진 살코기였다. 두껍지만 씹고 삼키기에 전혀 거슬림이 없었다. 국물에 잘 익힌 살코기를 한점 들어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 두세 번 씹으면 입안에서 금방 사라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기는 물렁 고기인데 꼬리뼈와 도가니다. 이 고기는 먹기가 곤란했다. 살코기보다 더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금방 사라졌기 때문이다. 식감을 좀 느껴볼 새도 없이 한 입 먹으면 금세 후루룩 꿀꺽하고 넘어가버렸다. 물렁거리는 고기를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입안에 넣으면 고소한 풍미와 콜라겐의 찰진 맛이 입 안에 퍼지면서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졌다. 젤리와 찹쌀떡의 중간 그 어디의 식감으로 건강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다채로운 식감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검은 고기이다. 설렁탕에 검은 융털이 있는 고기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도 양이라고 불리는 부위였던 것 같다. 흐드러지는 고기들 뒤로 쫄깃한 식감으로 존재감을 주었다. 물론 이 검은 고기도 매우 부드러웠다. 국물을 휘휘 저으면 다양한 모양의 고기들이 가득 떠올랐고, 그 고기들을 다 건져 먹으면 이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순서가 온다. 국물이 잘 스며든 밥 한 숟가락에 할머니의 시원한 김치 한 조각 딱 얹어 먹는 순서가 하나의 예법 같았다.


설렁탕을 먹을 때, 우리 집 어른들의 몇 가지 조언이 항상 귀에 울렸다. 첫 번째, "파 많이 넣어라~". 할머니는 파 전문가 셨는 데, 설렁탕에 넣을 파를 정말 많이 썰어서 내주셨다. 그리고 설렁탕이 나오자마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위로 파를 두 세 숟갈을 크게 퍼 넣었다. 핵심은 내 생각보다 "많이" 넣으라는 거였다. 물론 소금도 준비돼 있었는 데, 할머니는 맛보고 원하는 만큼 소금도 충분히 넣으라고 하신 반면 엄마는 건강상 되도록 적게 조금만 넣으라고 하셨던 것 같다. 여기서 약간의 지침 차이가 있다. 할머니는 소금을 많이 넣으라고 해도 자신감이 넘치셨던 이유는 국물이 짜지더라도 부엌에는 리필할 국물과 고기가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국물 다 마셔라~"였다. 국물에 좋은 영양분이 많이 들었다면서 말이다. 고기를 한참 먹고 배가 차도, 국물을 잘 먹는 것은 암묵적인 룰이었다. 장시간 부드러운 고기와 영양 가득한 국물을 내주기 위해 애쓰신 할머니의 노력과 수고가 가득 담겼기 때문이다.


이 음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가족들의 논쟁이 생길 수 있다. 고기에 들어간 재료가 더 있었다던지, 곁들인 반찬들에 대해서 왜 더 안 썼냐는 잔소리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보여줄까 말까 고민 중이다. 사실 혼자 쓰는 글이라서 별 흥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음식 고증을 위해 가족들의 기억이 필요한 것 같다. 할머니가 주신 고깃국은 정말 맛있었다. 수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소고기 맛과 눅진한 국물이 몸 안을 감싸고 돌 때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내 튼튼한 뼈는 할머니의 고깃국에 지분이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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