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정통파에 맞서는 신식 요리 출격
드디어 엄마에게 내 첫 글을 보내드렸다. 모른 체하며 한 번 읽어보라고 주었다. 한참이 지나도 별 답장이 없어서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보내준 글 읽어봤어? 어때?" 엄마의 답에 나는 큰 마상을 입었다. "이 사람 글 싫어." "어... 왜?" "길어서 별로야." "엄마, 그거 내가 쓴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말했다. "이제 엄마 안 보여줄 거야.." 엄마는 살짝 당황하며 "아니 식혜에 대해서 간단하게 쓰지 설명이 너무 반복되니까..." 엄마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묘미가 주제를 여러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분량도 채워야 하고 말이다. 백과사전처럼 정의만 나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엄마, 이거 내 에세이야'라고 말해야 했나 보다. 엄마에게 두 번째 글을 보내드렸다. "글 괜찮아, 따뜻한 느낌이야~ 첫 번째랑 느낌이 달라." 하지만 이미 내가 쓴 글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신뢰도는 떨어졌다. 아마도 엄마 세대에게 먹힐 만한 글은 아닌가 보다.
할머니가 이 구역 요리사였다면 그녀의 DNA를 정통으로 물려받은 엄마의 요리 솜씨는 어땠을까? 엄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식 요리로 대응했다. 일단, 엄마는 일하는 여성이었기에 요리를 장시간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한식은 더더욱 만들기 어려웠을 터, 하지만 엄마도 내 입맛을 단박에 사로잡는 몇 가지 치트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집 피자이다. 엄마는 주말이나 생일잔치를 할 때도 자주 피자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 피자가 기가 맥혔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맛있었는 데, 지금도 그때 맛이 나려는가 모르겠다. 그 당시만 해도 피자는 시중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식 서양요리였다. 근데 그 피자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주셨고, 기름기가 적게 구워져서 정말 담백하고 맛있었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잘 구운 후,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버섯과 피망 등의 다양한 토핑이 올라간다. 그러고 나서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부어서 구워 주셨다. 뜨거운 피자를 큰 접시에 담아 8조각을 내서 먹으면 한 조각씩 들 때마다 쭉 늘어나는 치즈에 바삭한 도우, 그리고 아삭한 야채들과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졌다. 한 입 크게 먹으면 잘 구워진 도우의 폭신함에 담긴 여러 재료들이 한 번에 느껴지면서, 토마토의 튀는 맛을 뜨거운 치즈의 고소함이 잡아주어 잠시 모르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국적인 맛을 내었다. 할머니의 한식 공격에 대응하기에 피자라는 단일메뉴는 아주 요긴한 방어책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피자와 쌍벽을 이루는 엄마의 치트키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부추전이다. 부추전을 구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바삭함'이다. 엄마는 이 바삭함에 대해서는 엄청난 일가견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 오는 소리에 어울리는, 전 굽는 소리가 들렸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그러면 그날은 엄마의 비책이 담긴 바삭한 부추전이 나오는 날이다. 부추전의 재료는 단순하다. 밀가루 반죽에 부추, 그리고 사이사이에 얇게 썬 양파와 감자가 조금씩 들어갔다. 지글지글 전이 구워지는 장면을 몇 번 보았는 데, 엄마의 전 뒤집기 기술은 대단했다. 한 번에 돌릴 때 전이 덜 익어서 찢어져서도 안되었고, 돌리다가 전이 접혀서도 안 됐다. 한방에 탁! 전의 윗부분이 팬 안으로 돌아누워야 했다. 적절한 온도와 반죽 비율로 잘 구워진 전은 피자와는 또 다른 찰진 식감과 함께 김치처럼 죽죽 찢어먹는 재미를 주었다.
엄마도 할머니처럼 가장 맛있는 부분을 먼저 먹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가장자리였다. "끄트머리에 바삭한 부분 먼저 먹어봐." 바삭한 부분을 쭉 떼어먹고 나면 가운데 촉촉한 부분이 남았다.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엄마의 부침개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가운데 구멍을 뚫는 방법이다. 그러자 끝의 바삭한 부분을 다 먹고도 또 바삭한 부분이 남게 되었다. 거실에 앉아 만화를 보면서도 내 귀는 엄마가 부침개를 부치는 지글지글한 소리, 그리고 고소한 냄새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히고, 그 맛이 내 안에 남아있다. 바삭한 전 안에 영양분 가득한 부추가 가득하고 그 사이에 잘 익은 감자와 탱글한 양파와 으깨지면서 알알이 씹히는 고소함이란, 부침개 달인인 엄마만 만들 수 있는 매혹의 음식이었다. 생각해보니 피자와 부침개, 둘다 후라이팬에 하는 음식이다. 그녀를 팬요리 전문가로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