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 잘 맞추는 남자

우리 집 요리 어워드에 빠지면 섭섭한 음식을 찾아서

by 일상의빛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 구역 최고 요리사 할머니를 칭송하다 보니 슬금슬금 다른 후보군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팬 요리 제왕의 자리에 앉혀 드린 엄마가 후보 중 한 명이었고, 오늘 또 다른 후보가 내 기억을 비집고 등장했다. 바로, 아빠다. 생각해 보니 아빠의 요리 치트키도 만만치 않았고, 빠지면 섭섭할 만한 메뉴들이다. 나는 라면 물을 잘 못 맞춘다. 요즘에는 라면 봉지 뒤편에 써진 정량대로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 경험치를 과신하다가 혹은 그 순간의 귀찮음에 '이 정도면 돼~'하고 대충 물을 맞춰 라면을 끓이다가 싱거운 라면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라면 물을 알잘딱으로 맞추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우리 아빠다.


주말이 되면 아빠는 집에서 가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주의, 자주 만들어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면 아빠만 할 수 있는 특별메뉴가 등장하곤 했다. 첫 번째가 라면이었는데, 아빠의 라면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바로, 계란에 스팸까지 들어간다는 거였다. 팔팔 끓는 거대한 냄비가 식탁 위에 안착하면 아빠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러면, 뜨거운 라면 국물이 내뿜는 수증기가 한순간에 퍼지면서 라면 국물의 진한 육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아빠는 진라면 순한 맛을 좋아하셨는 데, 오뚜기 회사 박사님들이 만드신 스프맛은 그때가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있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지만, 국물 속에 숭덩숭덩 잘린 스팸은 라면국물이 배어서 짠맛+짠맛이 더해 짠짠맛이 되었다. 국물에 술술 풀린 계란이 부드러움을 극대화시켜 주었고, 약간의 참기름이 첨가돼서 매우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주말의 힐링요리가 되었다. 때로는 이것이 스팸찌개인지 라면인지 헷갈렸지만, 하여간 맛있는 라면이었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었는 데, 면을 다 먹은 후 국물에 밥을 말아서 배추김치 한 조각 딱~ 얹어 먹으면 국물까지 완벽하게 클리어였다.


분명, 햄이나 계란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가면 물 맞추는 것이 어렵고, 끓이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릴 터인데도, 아빠가 만든 라면의 간은 정확했다. 그리고 좀 더 특별한 날에는 아빠의 두 번째 치트키가 등장했는 데 그것은 바로 골뱅이 무침이다. 아빠가 골뱅이를 슬슬슬 썰어서 각종 야채와 소면에 말아주는 골뱅이 무침도 아주 별미였다. 직접 만드신 양념이 굉장히 맛있었는데, 빨간 양념에 잘 버무려진 골뱅이에 소면을 빙빙 둘러서 한 입에 먹기 좋게 만든 다음, 쏙~ 하고 먹으면 달달하고 새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단짠단짠파티가 열렸다. 글을 쓰다보니 두 요리 모두 면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아빠를 면요리 전문가로 인정해야겠다. 그의 요리들은 대기업의 힘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쟁 요리사들의 손맛에 대응하고, 늘어지는 주말의 나른함을 단번에 깨우는 고객맞춤형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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