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오늘도 새벽에 수차례 몸을 뒤척였다. 요즘은 사흘에 한번 꼴로 잠을 설친다. 왼쪽 발에 경련이 일었다. 엄지발가락이 의지와 상관없이 휘었다. 끄으응. 고요 속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결국 잠은 포기했다. 아직은 동이 트기 전이다. 관자놀이는 띵하고 머리는 무겁다. 입안은 일주일째 헐었다. 상처가 점점 넓어진다. '알보칠'을 발랐다. 십 초 정도 따끔했다. 상처부위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십 초가 더 지나자 평화가 찾아왔다. 눈이 쏟아질 것처럼 무겁다. 점안액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미지근했다. 신경이 곧두선다. 그나마 일요일이다. 평일이었으면 남은 시간을 저주했을 것이다.
꿈을 꾸면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 어떤 꿈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몸이 힘들고 피곤할수록 꿈속의 장면들은 짙고 선명하다. 반복되는 꿈에서 벗어나고 싶다. 꿈 중 하나는 몇 년 전 그곳을 다녀온 후로 꾸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꿈속의 장면들은 되돌아 갈 곳이 없다. 그곳은 현실에서 사라져 버렸다.
텔레비전 채널을 11번으로 돌렸다. 알람을 껐다. 목이 마르다. 믹스커피가 떨어졌다. 이참에 끊어 버릴까? 블랙은 여전히 쓰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어제는 몇 잔 마셨어요?' 의사는 매번 확인한다. '두 잔 마셨습니다.' 나는 항상 한잔을 빼놓고 말한다. '블랙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정신을 차렸더니 허기가 진다. 냉장고에서 마지막 남은 사과를 꺼냈다. 사과를 빙빙 돌려 깎는다. 과도는 빛이 바랬다. 날도 무디다. 그래도 껍질은 한 번에 깎인다. 흰 속살이 드러난 사과를 한입 베어 문다. 푸석거리지만 달콤하다. 씨앗만 남기고 한 개를 다 먹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시끄럽다. 비눗물이 들어갔다. 눈이 따갑다. 곧 세 번째 알람이 울릴 것이다.
일요일이다.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런 일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그런 일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 방은 사적인 영역이기에. 그래서 일상이 더 지겹지만. 미뤄둔 일들이 어디 이것들 뿐일까? 오전 동안 한 일은 간단하다. 의미 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거나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을 들락날락거렸다. 달갑지 않은 전화 두 통이 왔다. 하나는 모르는 번호였고 하나는 아는 번호다. 아는 번호는 딱히 응할 말이 없다. 그녀는 왜 계속 전화를 하는 걸까?
점심은 간단히 먹었다. 간장에 계란 프라이. 신김치 하나. 오후 두 시의 식곤증?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살리에르. 젊잖은 클래식의 향연. 스르륵. 잠이 밀려온다. 망가진 창을 타고 호루라기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일요일. 이 시간이면 들려오는 오후의 함성들. 나는 아직 꿈을 꾸기 전인데. 오전 동안 각성된 몸과 의식이 서서히 닫힌다. 창은 열어 놓은 채. 호루라기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빗물에 얼룩진 커튼이 바람에 나부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내 방의 창과 내 의식 사이를 드나들었다.
오후에도. 땅거미가 깔리기 전까지. 나는, 아무도 없는 나의 방에서,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오분을 앞선 시계의 시간. 바이러스 걸린 노트북. 이야기가 없는 채널들. 그리고 67퍼센트에서 충전이 끝나는 핸드폰. 마주한 두 개의 벽을 타고 넘어오는 소소한 대화들. 내가 있어도, 내 방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내 방에서조차 나를 제외한 사물들에게 손님이 된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메시지가 몇 통 와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텍스트. 한참을 쳐다봤다. 경선 승리. 공천탈락. 무이자 대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배가 고프다. 허기는 축복이다. 채워지기만 한다면. 쌀을 씻었다. 오늘은 된밥이 먹고 싶다. 저녁도 단출했다. 무를 넣고 어묵국을 끓였다. 대파가 없다. 양파로 대신했다. 맛? 그런대로 괜찮다.
배가 부르다. 배를 꺼트려야 한다. 이것은 매일 실천해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이다. 나는 토끼를 위해 불을 훔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벌을 받았을까? 운동장을 돌았다. 사람들이 많다. 개들도 많다. 그림자들은 더 많다. 당연하다. 일요일은 월요일의 그림자니까. 한 바퀴는 걷고 두 바퀴는 뛰었다. 세 바퀴는 그림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밤 열 시가 되면 운동장 가로등이 꺼진다. 그림자도 사라진다. 내일 아침에도 알람은 세 번 울릴 것이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채널 3번에서 지지직거릴 것이다. 출근길의 현관에서 웃는 연습을 한다. 퇴근길의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서. 와이키키 두 번, 스파게티 두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치 치즈 스마일. 아무도 없는 내 방에 관한 이야기의 엔딩. 로맨스는 아니어도 호러는 아니었길.
2016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