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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목요일의 단 하나의 '힘에의 의지'에 관하여.


바쁜 하루였다. 오전엔 그동안 틈틈이 준비했던 사례관리를 푸른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했다. 오랜만에 많은 선생님 앞에서 하는 발표라 은근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렇지만 나! 은근 발표 잘한 거 같다. PPT 자료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의 발표도 좋았다. 희미해지던 사회복지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했던 시간이다.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도시락 한 번을 제외하면 김밥만 다섯 번째다. 이제 남은 김밥은 단 한 번이다. 입안을 탱글 하게 맴도는 참치김밥은 오늘도 맛있었다. 김밥은 나의 아침을 위한 주식이 된 지 오래다. 아침이면 버스 정류장 인근의 김밥천국의 테이블 위에서 천오백 원짜리 지상의 양식을 주문한다. 김밥은 천국이 아닌 지상의 양식이다. 그리고 김밥을 위한 찬가를 부른다.


하늘이 흐리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런 심미안은 초인이 아니어도 마흔이 넘으면 가능하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이 일직선으로 선채, 그림자가 사라지는 정오의 시간에 선생님들과 함께 김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오전 내내 나약했던 힘에의 의지가 솟는다. 긍정의 시간들이 다가온다. 자라투스트라도 만족할 힘에의 의지가 불끈 솟아오른다.


오후의 일들은 비교적 명확했다. 여름캠프를 위한 시간이었다. 저렴하고 안락한 숙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했다. 가평, 천안. 펜션 주인과 예약과 식사 등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았다.


목소리 시원하고 적극적인 답변을 해주신 가평 꽃보다 펜션 사장님 호의적이다. 홈페이지상이지만 가격 대비 부대시설도 상당히 훌륭했다. 아~ 불타오르던 영혼의 목마름 끝에서, 다시 불끈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힘에의 의지여. 그렇지만 하루 중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나는 기진맥진이다. 며칠 전 시에서 요청한 공문 관련 자료를 뚝딱 작성해서 메일 발송하고 다음 주 성문 밖 학교 통일캠프에서 쓸 텐트 대여 공문을 뚝딱 작성해서 메일 보내고 시대 복지공감 담당자와 수신확인.


째깍째깍째깍


나른한 오후의 벽을 타고 퍼지는 시계의 분침과 초침. 어둠이 아니어도, 고요함이 내 귓가에 확성기를 대고 고함을 질러도, 나는 때로 대포소리보다도 더 커진 시계의 초침을 듣는다. 어쩌면 이 순간은. 니체적 영감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은 아니려나. 이 시점에서 내가 미쳐 버리는 건 아니겠지. 니체처럼. 내 의식을 불안하게 흔드는, 영원히 반복되는 자라투스트라의 경구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대와 모든 타인의 삶의 흔적들. 연인을 위해 길상사를 바친 김정한. 그들의 사랑은 엇나갔지만 시인 백석이 부럽다. 나에겐 외롭게 지나온 흔적만 있을 뿐 나타샤도 흰 당나귀도 없다. 그러나 힘에의 의지여. 나는 아직 남은 한 조각 희망을 그대에게 걸어보련다.


다시 한번 힘에의 의지!


아차! 오늘 학습동아리 '놀자' 영어 수업하는 날이지. 뭐~1316 팬클럽 시리즈. 까짓 거! 오늘은 기본 실력으로 가르치는 거지. 이 정도 게으름은 나 정도 깜냥으로 충분히 커버되잖아. 이것 역시 힘에의 의지. 오늘 저녁 메뉴는 뼈 없는 적당히 매콤하게 양념된 닭고기와 시큼한 오이지 담백한 콩나물 무침. 김치냉장고에서 적당히 익은 김치. 그리고 국은 뭐였더라. 과즙이 풍부한 참외는 달콤했고 우유는 목 넘김이 부드러웠어. 이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힘에의 의지!


오후 7시에 시작하는 뮤지컬 수업 코 길이 인증숏. 찰칵, 찰칵. 그런데 나의 학습동아리 놀자 팀 멤버들아! 어디 숨었니?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저도 여기 있었어요. 1316 팬클럽 시리즈 레벨 2. 어라! 너는 누구니? 오늘은 객원 학생 한 명 추가요. 수강료는 없어요. 여러분! 주어 다음엔 뭐라고요? 그래요. 동사예요. 그리고 보어(목적어)라고요. 아시겠지만, 영어와 국어는 어순이 달라요. 1 형식은 자동사. 2 형식도 자동사. 3 형식은 타동사.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보어보다는 목적어가 필요한 타동사겠죠. 그것도 불완전 타동사. 여러분 4 형식을 3 형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렇죠. 전! 치! 사. 수여 동사 다음엔 간접 목적어와 직접 목적어가 따라와요. 동사에 따른 전치사는 to와 for, 그리고 ask는 반드시 of라고요. 명심해요. 헷갈리면 안 돼요. 그런데 4 형식의 제 삶은 제 아무리 to 부정사를 집어넣어도 3 형식으로 되지 않더라고요.


오늘따라 다들 열공들이시네요.


아홉 시가 넘었다. 뮤지컬 수업이 끝났다. 코 길이도 잠을 자야 하는 밤으로 가는 마차의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나의 할 일이 남았다. 나의 나약한 '힘에의 의지'를 향한 열망을 제발 꺾이지 않기를.


오늘의 마지막 할 일. 여름캠프 기획단 첫 번째 회의. 무려, 기본 안은 나왔어요. 장소, 답사 일정,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면 아!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오늘 하루가 끝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하루가 끝이 난다. 오전부터 버거웠던 힘에의 의지가. 힘에의 의지.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이었을까? 등에 짐을 가득 실은 사막을 건너던 낙타였을까,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사자였을까, 아니면 그 자체로 '빼박 캔트' 순수한 어린아이였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니체의 책 제목


2016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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