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이틀 전 가방을 잃어버렸다. 검은색이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편이 아닌데 요즘은 종종 두고 오는 물건들이 생긴다. 며칠 전엔 현금을 인출했던 카드를 잃어버렸다. 한동안 잃어버린 사실조차 몰랐다. 나의 유실물들은 잘 있을까? 상상해본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잃어버린 이름들이 숱하다. 하여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내 존재의 실팍한 긍정의 이유다.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잃어버리는 이름도 있다.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지금은 곁에 없지만 한때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이니셜 K가 박힌 세상 한편의 유실물센터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망각은 축복이다. 망각은 기억이 주는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나 나는 상처 속에서도 잃어버린 것들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쇠퇴해가는 기억력이나 흐릿해진 열망, 나약한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몇 해 전 검은 지갑을 차디찬 서울 바닥에 두고 온 적도 있다. 한 달 후 같은 지갑을 인사동 모퉁이 술집에 두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나 이틀 후 그 검정색 지갑은 내 곁으로 돌아왔다. 일 년 전 잃어버렸던 만년필을 찾았듯이.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온다. 잃어버린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어제 가방을 잃어버렸다. 검은색 노트북 가방이다. 사실은 두고 왔다. 그 시간, 나는 무엇에, 누구에게 홀린 걸까? 범인은 불면으로 인한 주의력 부족. 가방을 찾으러 가기엔 늦은 시각이다. 별것이라 치부해보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두 눈을 감았어도 까마득하다. 검은색 가방엔 무엇이 있었지? 언제나 옆에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던 물건들. 시집 한 권. 2016년의 다이어리. 작년에 만든 여권, 언젠가 쓰려고 모아둔 쿠폰. 카드 명세서. 도시가스 고지서. 플러스펜, 네임펜. 건네받은 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명함. 여권과 다이어리가 신경 쓰인다. 시간순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온누리홀, 북카페, 시청 로비, 자동차. 시청 근처의 한 카페. 다행히 카페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사장님 오늘 오후에 여기 왔었는데 혹시 검정 가방 하나 못 보셨나요?"
"아니오. 봤으면 직원들이 챙겼을 텐데 없네요."
"다른데 두고 왔나 보네요."
또 하나의 유실물이 발생했다. 잊지 않아야 하는. 유실물을 담기 위해 가려진 천국의 문이 열린다. 천국은, 존재하기보다는 유실물들이 모여있는 곳을 내가 발견함으로써 완성되는 곳이 아닐까. 지옥은 그 반대. 한때는 소중했지만 잃어버린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의 나, 너, 우리들.
'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 너의 이름은. 우리는 늘 삼 년의 시간 차이를 살고 있지. 그러니까 나의 삼 년 전은 너의 현재야. 너의 현재는 나의 삼 년 후. 같은 계절을 살아도 너는 시월에. 나는 십삼월을 살고 있는 셈이지. 그러니 과거의 나에게 너를 설명할 수는 없어. 서로의 손바닥은 마주치지 않아. 서로를 이어주는 시그널[무전기]은 없어. 마음으로만 통하는 거지.
골목엔 밤새 눈이 쌓였다. 나는 꿈속에서 줄곧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다녔다. 별것이라 치부했지만 가방은 내게 별것 아닌 것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내 방은 천국이었고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있었지만 어제 잃어버린 가방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낙담과 실망,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우울함을 않고 꿈에서 깨었다. 눈발에 미끄러지는 타이어. 천천히 액셀을 밟는다. 와이퍼는 남은 눈을 밀어낸다. 시청 온누리홀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린다. 무대에선 어린이집 아이들의 리허설이 펼쳐진다. 내가 두고 온 그곳에 가방이 있을까? 그러나 가방은 보이지 않는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아! 저기 의자 위. 익숙한 물건이 보인다. 찾았다. 내 검은색 가방. 안도의 한숨 속에 생각나는 또 하나의 유실물. 지난 9월 백두산에 두고 온 검정 선글라스는 거기에 여전히 있을까?
2017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