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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리뷰]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고.

by 김인철 Apr 13. 2021

일본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축소지향의 민족, 겉과 속이 다른 민족. 가깝고도 먼 나라. 이웃나라인 일본을 정의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정복도 한다.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한다. 고대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그랬고, 중세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와 영국이 그렇다. 우리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끊임없이 대륙을 욕망했다.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일본은 두 번이나 우리를 침략했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거의 성공했다. 국가 간 힘의 대결에 도덕이나 선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는 남는다. 우리는 피해자고 일본은 가해자다. 그렇지만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역사의 잘못에 반성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피해 국가에 사죄하는 독일과 비교가 된다. 그들이 사죄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사진출처-pixabay사진출처-pixabay

배경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다. 그녀가 쓴 <국화와 칼>은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서 쓴 일본에 관한 보고서다. 일본에 관한 가장 객관적인 책이라고 평가받는다. 미국은 이차대전을 치르면서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적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일본이었다. 가미카제를 하고 포로가 될 것 같으면 집단 자살을 했다. 막상 포로가 되고 나면 가장 잘 협조를 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은 연합군에게 항복을 했지만 일본은 전세가 기울었음에도 끝까지 버텼다. 오히려 진주만을 공격하고 미드웨이 해전을 벌였다. 도쿄 대공습에 불바다가 되었지만 전 국민이 옥쇄를 할 각오로 버텼다. 결국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을 두 번 맞고 나서야 항복을 했다. 미국은 승리했지만 일본을 알아야 했다.


사진출처-pixabay사진출처-pixabay


국화와 칼


책 제목인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이중성을 의미한다. 국화는 일본 왕실의 꽃이다. 청결하고 겸손한 이미지다. 일본인은 나라꽃인 벚꽃보다 국화를 더 좋아한다. 국화는 일본인을 닮았다. 청결하며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엔 칼처럼 날이 선 마음을 품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비웃는다. 일본의 이중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책은 일본의 이중성을 그들의 역사와 환경, 삶의 방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연구한다.


다테마에와 혼네


다테마에(겉마음)와 혼네(속마음)는 일본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다.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은 그 속마음과 포장된 언어의 정도가 심하다. 위에 언급했듯이 일본의 병사들은 천황의 명을 받들어 미 함대를 향해 가미카제(자살폭탄)를 행하지만 막상 포로가 되면 어느 나라의 포로보다 잘 협조를 잘한다. 패전국의 신민들은 본토로 진입하던 미군(점령군)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열렬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사무라이 문화


일본의 사무라이는 충에 대한 개념도 서양과는 다르다. 우리와도 다르다. 쇼군에게 평생 충성을 할 것처럼 행동하던 가신도 그 쇼군이 자신을 모욕(이름이 더럽혀짐)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배신을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정당하다고 여긴다. 일본의 이중성은 '사무라이'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통일된 국가를 수립하지 못했다.


사진출처-pixabay사진출처-pixabay


일본의 지배자는 왕족, 다이묘, 쇼군, 그리고 사무라이들이었다. 왕족이나 다이묘, 쇼군은 일상에서 평민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사무라이는 평민들과 밀접했고 그들에겐 아무 때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평민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목을 벨 수 있는 사무라이에게 살아남으려면 함부로 속마음을 들켜선 안되었다. 이런 생존 방식이 그들의 화법에 녹아들었다.


알맞은 위치 갖기


일본인에게 '알맞은 위치'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에겐 각자의 위치가 있다. 왕은 왕의 위치를, 정치인은 정치인의 위치는, 쇼군은 쇼군의,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상인은 상인의 위치를 가져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형은 형의, 남자는 남자의, 여자는 여자의 위치를 갖는다. 그리고 이는 독재자의 전형이기도 하지만 한 집단의 계급의 책임자로서의 권위와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했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내는 지아비에 대해, 자식은 아버지에게, 동생은 형에게, 계입아이는 연력에 관계 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수그린다. 그것은 결코 내용 없는 몸짓이 아니다....중략...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인 것이다.

국화와 칼-p.61


작가는 일본인은 선과 악의 개념이 다른 나라, 특히 서구와 다르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 해석을 개인을 넘어 국가로 확대해서 보면 일본의 식민지배와 2차 대전의 침략 행위에 대하여 독일이 보여준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행위를 악이 아닌 단지 다른 행동, 더 나아가서 자신들보다 열등한 나라를 이끌고 선도(대동아 공영)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활을, 어느 한 '세계'와 다른 '세계'와 다른 '세계', 어느 하나의 행동 방침과 다른 행동 방침, 이 양자의 요구를...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행동 방침은 그 자체에 있어서는 선이다."

국화와 칼 -p.212-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도움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인들은 도움을 받으면 상대에게 전혀 다른 감정을 보인다고 말한다. 감사를 표현하는 일본어에 이런 이중성이 담겨 있다. 아리가토(쉽지 않은 일), 스미마센(끝나지 않았다 ), 기노도 쿠(독이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도움을 받아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불쾌한 마음도 갖는다. 작가는 이것을 '온', ''기무', 기리', '하지'라는 말로 일본인 고유의 정체성으로 해석한다.


"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관헌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에 의해 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짓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화와 칼 -p.116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났다. 거대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해안을 덮쳤지만 사람들은 차분했다.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 닥쳤을 때 오열을 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전 재산과 가족을 잃었지만 차분하고 감정을 비치지 않는 일본인을 보면서 더욱 궁금했다. 끊임없는 재난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마저 폐를 끼친다고 여기는 것일까?


오명을 씻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모욕, 이름이 더럽혀짐이다. 온, 기리, 기무, 하지.  온은 우리말로 '은혜'를 뜻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은혜를 '받는 것'과, '뒤집어쓰는 것'이다. '기무'와 '기리'는 온에 대한 보답을 의미한다. 기무는 일왕이나 부모님에게 받은 온에 대한 행위, 기리는 친구나 지인, 혹은 모르는 사람의 배려에 보답을 하는 것이다. '하지'는 온을 받은 이가 베푼이에게 기무나 기리를 행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겪는 수치심을 의미한다. 그 수치심은 스스로가 아닌 남을 의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사실은 일본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현대 일본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한다. 미국인은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자살은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에 지나지 않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국화와 칼, P.180-


작가가 말하듯 일본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면 굴복하고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공격한다. 전자는 미국이고 후자는 우리나라다.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처럼 과거가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일본 서점에는 혐한 코너가 있고 일본인은 혐한 서적을 산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먼 나라일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pixabay사진출처-pixabay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정권에 저항했던 우리와 달리 일본인은 권력에 맞서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부조리에 항거하지 않는다. 일본인에게 혁명은 사전 속에 박제된 거룩한 명사다. 형식만 민주주의일 뿐 세습인 경우가 많다. 한 가문이 천년 가까이 왕위를 계승하고 있다. 가능한 일인가? 겉으로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비웃는다.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를 만만히 보고 심지어 침략을 하는 민족이다. 이웃한 나라 중에서 이처럼 독특한 나라와 민족이 또 있을까?


죄의 문화, 수치의 문화


작가는 서양을 죄의 문화, 일본을 수치심의 문화로 본다. 우리나라는 체면의 문화다. 수치의 문화와 비슷한 점도 있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지만 중국은 다르다. 복수의 문화다. 절대로 지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수치의 문화는 타인을 의식한다. 즉 타인이 모르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늘날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 드는 것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결심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끝낼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본토 진입은 미군의 막대한 희생이 필요했다. 베네딕트의 보고서는 '일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강자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핵이었다. 전 국민 옥쇄를 각오했던 일본은 라디오 전파를 탄 일왕의 항복 몇 마디에 항복했다. 미국은 항복 문서 조인식에 일 왕이 직접 나와서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일본인은 하늘의 천자가 미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일본인에게 미국은 일왕의 권위를 넘어섰다.


역사는 종종 약자의 편이 아니다. 종전 후 전범국인 일본이 분단되어야 했지만 식민지였던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다. 일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을 발판으로 회생했다. 전쟁을 했던 미국과 동맹이 되고 거인의 어깨 위에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자 운이 좋은 민족이다.


다시는 침략당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그렇다.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유성룡은 왜란을 겪고 난 후 다시는 후손들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징비록>을 썼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후손들은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왜란이 끝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병자호란을 겪었고 수백 년 후 일본에게 45년 간이나 나라를 빼앗겼다. 또다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사진출처-pixabay사진출처-pixabay


디지털 시대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아날로그 시대에 장점이었던 것이 디지털 시대에선 약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와 일본의 장인정신이다. 일본은 지는 해, 한국은 떠오르는 해다. 조선, 반도체, 철강은 오래전에 추월했고 자동차는 비슷한 수준이다. 한류는 이제 일본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해오던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언제든지 욕망을 드러낼 것이다. IMF로 외환 위 당시 가장 먼저 자금을 빼고 강제 징용 판결에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를 했듯이. 일본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쓸 것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일본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 경제, 국방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압도적으로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을 아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일본을 너무 모른다.


사족


1. 이 책은 학술 서라기보다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실용 연구서다.

2. 이 책에서 조선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3.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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