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신뢰'한다는 말을 듣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깊은 잠을 잤다. 잠에서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푸른학교 졸업 후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제자들을 만나는 기분 좋은 꿈도 꾸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게 일 년 365일 중 10퍼센트의 기분 좋은 아침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며 커피믹스 같은 하루를 꿈꾼다. 달달하지만 담백한 믹스커피 같은 그런 하루를 기대한다. 에스프레소처럼 쓰거나 흰 설탕시럽을 잔뜩 넣은 라떼처럼 너무 달지 않은 그런 하루하루를 소망한다.
오래된 창의 커튼을 새걸로 바꿔 달았는데 들어오는 빛은 달라진 게 없다. 빛의 세기도 광량도. 어둠 컴컴한 방에서 커튼 하나만 바꾸면 될 줄 알았는데 난 도대체 이 답답함 속에서 뭘 기대한 거지.
사진출처-pixbay어제 센터에서 한 선생님에게 나를 신뢰한다는 말을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잘 모르고 나도 그녀를 잘 모른다. 우리는 단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관계에서 조금 더 가까운 관계일 뿐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런 사무적 관계에서 '신뢰'라는 말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기에. 그런데 그 선생님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상대가 나를 향하여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부터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그를 신경 쓰게 된다."
신뢰, 사랑, 행복, 싫음, 실망, 분노. 인간의 감정이 들어간 표현들은 그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이 향하는 상대방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다. 상황에 따라서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그를 신경 쓰게 된다.
중학교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두 살 터울 사촌 누나의 말에 한동네 살던 동갑내기 그녀를 조금씩 신경 쓰다 보니 어느덧 그녀를 좋아했다. 삼 년을 끙끙 앓던 끝에 수줍었던 나의 고백은 눈발 휘날리던 겨울날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지금도 연락을 하는 이성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신뢰를 원한적이 없는데. 잘 알지 못하는 그녀는 내게 신뢰를 보낸다. 나는 오늘도 방금 마신 '믹스커피'처럼 달달하면서 담백한 하루를 꿈꾼다. 마흔에서 네 번째 해가 지났고 매일 왕복 백 킬로를 달리면 그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