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
나는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다.
나의 삶에서...
나의 몸은 렌즈가 되어 제대로 초점이 맞아 본 적이 있었나 싶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오래된 카메라의 셔터처럼 찰칵하고 사진이 찍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한번 음각으로 몸으로 각인된 순간은 내 생의 시계추 안에서 영원의 곁으로 남겨지며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분명한 건 그런 장면을 떠올릴 때면 애틋하고 아련해진다. 어둠 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내 앞에 돌올히 나타나서 찬란히 빛난다. 타임머신을 발명할 필요 없이 나 자신이 과거로 흘러들어 가거나 그때의 순간을 현재로 불러온다. 나를 나로서 살아있게 하는 이유다.
몇 년 전 캄보디아 올드마켓의 한 노점과 전통시장에서 만난 소녀의 해맑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또 다른 시장 인 '싸르'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맑고 영롱한 눈빛도 떠오른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 갔던 방송대 MT에서의 이른 아침이 어제의 꿈처럼 선연하다. 나이 많은 후배들과, 워즈워드와 셀리와 유진 오닐과 제임스 조이스를 논하며 밤을 꼬박 세우고 알코올이 가시지 않은 채 몽롱한 의식으로, 마찬가지로 밤을 꼬박 세운 한 후배와 깊은 산사를 비틀거리며 오르던 새벽의 안개 서린 풍광도 눈에 선하다. 내게는 너무나 신비스럽던, 아쉽게도 오래전 장소와 이름을 잊어버렸기에 다시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신비로운, 산사와 절벽의 맑은 물이 그립다.
이따금씩, 생각과 말(언어)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낀다. 생각과 언어 사이의 간격이 가늠할 수 없는 무한의 우주처럼 느껴진다. 그런 증상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말의 형태로 태어나지 못한 채 사장되어버린 편린들이 현기증이 일 정도로 머릿속을 빙빙 돈다. 정신과 몸은 하나이기에 위장에 꾸역꾸역 먹을 것을 채워 넣지 않았어도 체기가 올라오는듯한 체증이 올라온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에게, 무엇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사는 것도 버거운데, 넋두리를 주저리주저리 들어줄 상대라곤 길가에 차이는 돌멩이나 이름 모를 꽃 들일뿐인데, 요즘엔 대낮의 검은 길냥이도 나를 피해 허물어진 담장을 넘는데, 애초에 모두를 피했던 것은 나였을 텐데. 실상은 그들이 그리웠다고, 앞에서는 바보처럼 말 한마디 못하고 왔지만 내 안의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삭혔다고
4월부로 반디 교실을 그만두었다. 약속했던 시간에서 한 달을 더 있었다. 지난 2년의 시간이 아득하다. 허락했지만 허락되지 않은, 나의 공간이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에서, 어디에도 없는 계절을 살았던 것처럼, 지난 시간이 아득하고 몽환적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다 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타이어가 터져 전복될 염려는 없어졌다.
나는 때로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다.
네 몸의 셔터는 외부에서 어둠과 빛을 받을 때마다 늘 흔들리고 불안했지만, 여하간 인생의 한 장이 끝이 났다. 반드시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시간들이다. 마지막 날에는 코로나19로 아이들과 이별의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이 정성껏 쓴 편지 몇 장이 내 손에 전해졌다.
"진짜 선생님은 내가 본 센터장님 중에 최고예요. 알죠? 항상 저희 믿어주시고 저희 의견 존중해주시고 저희한테 지원 아껴주시지 않았잖아요."
평소 속을 잘 비치지 않았던 고1 아이의 손편지에 흐린 시선이 오래오래 머문다. 얼마간은 보내는 이를 위한 헌사겠지만 그 마음과 진심은 오롯이 나의 렌즈로 전해진다.
라깡이 말했듯이 이제 그곳은 내가 없어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사연은 강물처럼 흐를 테니
"내가 없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고 내가 없는 곳에서 나는 존재되는"
그런 시간이 지속될 테니까.
당분간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없는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내가 없지만 내가 있는 지금을. 고요와 함께 덤덤이 흘려보내며 언젠가 다시 떠오를, 혹은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지난 시간의 무수한 그림자와 쓰리고 괴롭던 환영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흐려진 초점을 다시 맞추기 위하여 구석구석 내 몸의 모든 렌즈를 꼼꼼히 닦는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는 이번회로 마침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