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강좌, 그 첫발을 떼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청소년 인문학 강좌, 그 첫발을 떼다.


'학벌 없는 사회'의 ㅊ선생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K대학교였다. 12시경 집을 나서는데 눈발이 제법 매섭게 흩날렸다. 우산을 펼쳤다. 옷을 얇게 입은 탓인지 처음엔 입술만 떨리더니 찬 기운이 스며들수록 온 몸으로 번졌다. 어제 대충 ㅊ선생님이 보내준 자료를 읽어보긴 했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어떤 일정이 진행될지 아직은 잘 몰랐다. 분명한 것은 이거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K대가 있는 역은 예정 시간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속이 허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먹지 못했다. 날씨는 더욱 매섭고 몸은 차가웠다. 분식집에 들러서 칼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꽁꽁 언 몸에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한결 마음과 몸이 부드러워졌다. K대학교는 건물들이 유럽식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대학생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노리는 상업성 짙은 화려한 커피숍과 카페를 들여놓는 여느 대학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외관만으로도 학교의 유구한 역사를 잘 보여주는 듯해서 좋았다. 길치인 나는 한 번의 설명으로 목적지를 한 번에 찾기는 불가능했다. 몇 번 서성이다 전화를 걸어 다시 위치를 물었다.


대회의실 문을 여니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몇 달 전 공부방을 방문했던 ㅊ선생님이었다. 학교 밖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기관은 푸른 학교를 포함 네 개 기관이었다. '푸른 학교'와 '디**'은 지역아동센터였고 '배**'와 '모**'은 대안학교여서 기관의 성격은 조금씩 달랐다. 그중에서도 '배**'는 적극적으로 학교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라는 설명이 호기심을 일으켰다.


강좌에 참여할 교수님과 기관의 실무자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분들이 있어서 회의는 조금 지체되었다. 십여분 정도 더 지나서 회의가 시작되었고 먼저 기관별 소개와 교수님들의 소개가 짧게 이어졌다. 내 차례가 되자 '푸른 학교' 역사와 교육철학, 수업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늘 심장이 쿵쾅거려서 말을 버벅 거리는데 입학상담을 하거나 학부모님들에게 늘 했던 거라 설명하는데 큰 부담은 없었다. '배**'에서 오신 선생님은 두 분 이셨는데 직접 자료까지 만들어 와서 교수님들과 다른 기관에게 나누어 주셨다.


기관 소개가 끝나고 ㅊ선생님의 사회로 앞으로 진행될 강좌에 대하여 상당히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교수님들이나 우리나 이런 식의 수업은 처음, 작년에 시범적으로 진행한 기관도 있는 것 같았지만,이었으므로 모두들 같은 마음, 두려움, 설렘, 호기심 등등,이었다. 강좌는 기관별로 두 달 총 8차례 강좌가 진행될 계획이며 디**이 3,4월 푸른 학교가 5,6월이었다. 그리고 다른 두 기관은 하반기에 진행될 예정이다.

"교수님이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를 공부방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 강좌를 진행할 교수님들이 공통적으로 우려와 물음표를 던진 부분이었다. 기관별로 아이들의 성향도 다른 것 같았다. 디**과 푸른 학교는 아이들의 정서가 비슷했고 모락산 아이들과 배움터 길 학생들은 약간 달랐는데 그중에서도 '배**'의 아이들의 성향이 가장 도드라졌다. 담배 피우는 행위를 '하위문화'로 보고 '꽃보다 남자'같은 대중 매체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선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했다. 제도권 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의 대안을 찾으려는 부모님들의 영향이 큰듯했다.


교수님들은 기관별로 조금씩 다른 아이들의 가정 상황이나 성향, 정서 등을 접하며 강의안을 대폭 수정해야겠다면서 난감해하셨다. 내 생각에도 기관별로 아이들의 성향이 많이 달라서 강의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오늘 모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다음 순서로 교수님의 강의안 설명이 이어졌는데 주제별로 그리스 철학, 동양철학, 대중 매체 비평, 다문화 가정 등등 차시별로 다양한 강의안이 제시되었다. 교수님의 강의안 설명이 끝나면 기관 실무자들이 조언을 하거나 수정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내 경우엔 이미 아이들과 진행했던 수업 안이 더러 있었는데 그 부분을 언급하자 교수님들은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졌다. 한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고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오늘 수업 지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왔다. 게다가 오늘 나누미 생일파티도 있다. 전화기는 십분 마다 한 번씩 울려댔다. 보나 마나 이러저러한 일로 늦는다는 아이들의 전화 일터. 며칠 전 수업 중에 다친 아이의 이마가 자꾸 떠올랐다. 설명회는 6시를 훌쩍 넘기고서 끝났다. 저녁식사가 예정되어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왔다.


돌아가는 길, 아이들에게 줄 케이크 하나를 안고서 생각했다.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 이제 그 첫발을 뗐다. 두 달이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뭐든지 금방 싫증 내는 아이들이 지겨울지도 모를 교수님들의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까? 행여나 재미없다고 지루하다고 수업 당일 안 나오면 어쩌나. 행여나 내가 너무 우리 아이들을 못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첫발을 뗐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다행인 것은 오늘 만난 교수님들의 진지한 열정이 이런 나의 우려를 조금이나마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8시가 조금 넘어서 버스에서 내렸다. 마트 쪽에서 검은 물체 서넛이 손에 뭔가를 들고 온다. 나누미 선생님과 아이들이다. 자 이제 두 달을 미뤄둔 생일 파티를 할 시간이다.


2010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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