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오늘부터 '학벌 없는 사회' 선생님들과 함께 중등부 청소년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두 달 동안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 10월부터 이야기가 오고 갔으니 꽤 오래전부터 준비한 아주 특별한 수업이다. 그만큼 신경도 많이 쓰인다. 아주 특별한 수업을 위해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주제는 '나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였다.
오늘 강사는 전** 철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계시는 양** 선생님이셨다. 악수를 하는데 지난번 모임 때 본 기억이 났다. 아산에서 인문학 수업을 듣고자 대안학교 '햇살**' 아이들 다섯 명과 선생님 한분이 찾아왔다. 그 열정이 보기에 좋았다.
"우리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봐요."
선생님의 소통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여기의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교실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그 좁은 공간에서 공을 던지고 글러브로 잡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와는 참 다른 곳에서 성장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홈그라운드'가 아니어서 수업 내내 얌전했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공간에서는 못지않게 활기찰 것이다.
"선생님, 왜? 쟤네들은 뭐라고 안 해요?"
1학년 m이 그들을 보더니 내게 와서 항의한다.
"쟤들은 푸른 학교 학생이 아니잖아. 오늘 한 번만 봐주자."
"그래도, 우리랑 똑같이 해야죠."
맞다. 똑같이 해야 한다. 정당한 항의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방방 뛰어다닌다고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일은 없을 테니 오늘은 그냥 가자. 인문학 수업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다. 중학생들이 듣기엔 다소 어려운 표현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고등학생을 생각하며 강의안을 만들었단다. 수업 내용은 대강 이렇다. ‘우리는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 분노의 대상이 어디서 왔는가? 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분노할까요?"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손이 올라갔다.
"키가 작아서요. 버스 손잡이가 안 닿아요."
"오빠가 맨날 나만 집안일시켜요. 그래서 짜증 나요."
"국어 선생님 때문에 짜증 나요"
푸른 학교 선생님인 나를 향한 분노(?)도 아이들의 농담 섞인 한마디 속으로 흘러나온다. 살짝 난감한 상황. 음. 안 돼 안 돼 표정 관리해야지. 모두들 참으라고 한다. 참아야 한다. 참지 않으면 나쁜 아이, 나쁜 어른, 나쁜 선생이 되어 버린다. ‘왜 버스의 손잡이는 키 작은 사람에게 불편한가를.’ ‘왜 집안일은 항상 여자가 해야만 하는가를.’, ‘왜 잘생긴 사람들만 이 사회에서 대접받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이다. 분노하기보다는 참는 것이 미덕이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배워왔다. 나를 돌아보자. 나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 육교 위에서 몸부림치던 분노는 온전치 않을뿐더러 정당하지도 않다. 정당하게 분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정당하게 분노하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오늘 인문학 강좌 첫 수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2010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