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세시 삼십 분이다. 청소년 여행학교 첫날은 이른 새벽에 시작되었다. 작년 제주도에 이어 이번 청소년 여행학교 목적지는 <백두산 일대>와 <연변 항일유적지]>, 그리고 <발해와 고구려 유적지]> 탐방이다. 수정지역청소년센터 2016 청소년 여행학교. 지난 몇 개월을 이 순간을 위해서 달려왔다. 부족한 예산. 국내가 아닌 해외라는 부담감. 여행학교. 꼭! 해외로 가야 하나?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목적이 확고하다면 과정에서 오는 불편은 감당할 수 있다.
새벽 네시. '세이브존' 앞의 버스 정류장엔 여행학교를 같이 할 청소년과 어머님 한분이 먼저 와있었다. 몇 분을 사이에 두고 다른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학생들이 가져온 커다란 캐리어와 백팩엔 4박 5일 동안 지낼 물품들이 한가득이다. 나도 캐리어를 가져올걸 그랬다. 출발 전 믹스커피와 고추장을 챙기지 않은 것도 신경이 쓰인다.
출발 십 분 전, 인천공항행 5300번 버스가 도착했다. 인솔교사와 부모님들이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인천공항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공항 탑승게이트는 3층 A-18번. 수속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아직 출발시간이 많이 남았다. 일부는 게이트에서 대기했고 일부는 근처 면세점을 들러 가족과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을 구입했다.
오전 8시 45분. 대한항공. KE823편. 목단강(무단장)행 비행기는 북쪽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날아올랐다. 비행시간은 대략 세 시간쯤 걸릴 예정이다. 지상을 벗어난 비행기는 어느새 구름 위를 날고 있다. 삼십 분쯤 지났을 무렵 기내식이 나왔다. 어떤 맛일까? 살짝 기대된다. 쌀밥, 제육볶음과 파인애플. 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 기내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적었지만 먹을만했다.
덜커덩. 방심하던 사이 기체가 땅을 거칠게 밟았다. 목단강 공항은 다소 낙후된 느낌이다. 비라도 내렸는지 공항 주변은 축축했다. 가는 곳마다 낯선 중국말이 귀를 울렸고 뜻 모를 한자들이 두 눈을 어지럽힌다. 그래. 여기는 '꽌시'와 '만만디'의 나라 중국이다. 입국심사대 뒤로 부동자세로 선 공안은 경계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지켜본다. "선생님! 저 군복 입은 아저씨, 꼭 한국인처럼 생겼어요."M이 신기하다는 듯이 낮게 속삭인다. 전라도 전주 사람처럼 생겼다고 하니. "선생님 정말 구체적이시네요" 라며 M이 깔깔거린다.
입국 심사를 받던 중 할아버지 한분이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공항 관리자들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국심사대를 빠져나가자 '청소년 여행학교'라는 푯말을 든 현지 가이드[조선족]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를 4박 5일 동안 연변 일대를 태우고 다닐 관광버스는 사자머리를 형상화시킨 듯 앞쪽이 크고 위엄이 느껴졌다. 운전석에 비해 좌석이 높았다. 운전기사는 중국인이다. 공항 출구를 빠져나가는데 커다란 시진핑 사진[전광판]이 우리를 환영한다.
목단강 공항
버스는 도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승차감이 좋지 않다. 써스펜션이 좋지 않아 작은 요철에도 버스의 덜컹거림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조금 가다 보니 도로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거의 없다. 버스로 삼십여분을 달린 후 현지 식당에서 첫 번째 식사를 했다. 어떤 맛일까? 기대 반 우려반이다. 식당은 원형 테이블에 의자가 열개씩 놓여있다. 테이블 중앙은 빙 돌아가는 구조다. 원형 유리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사람들이 조금씩 덜어서 먹는 구조다. 생선 조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음, 이건. 뭐랄까?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맛이다. 듣던 대로 모든 음식에 향신료가 들어있다.
중국 현지 식당
현지 음식은 한마디로. 단짠단짠, 기름진 음식들이다. 밥은 찰기가 없다. 쌀알이 길어서 젓가락과 숟가락질이 쉽지 않았다. 상추는 끝 맛이 씁쓸했다. 된장처럼 보이는 소스도 입에 맞지 않았다. 당면과 두부, 그리고 탕수육처럼 생긴 음식은 먹을만했다. 식탁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표정도 걱정이 한가득이다. 김과 고추장, 그리고 라면을 준비해야 한다던 싸부의 말을 그때서야 이해했다.
숙소 [이도백하]까지는 버스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린다. 한국이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지만 대륙의 개념으로는 이웃동네 마실 가듯이 차 한잔 마시고 오는 거리란다. 출국 전 여행사 직원에게 들었던 개방형 화장실도 걱정이다. 어떤 아이들은 볼일이 급해도 숙소까지 꾹 참겠단다. 두 시간쯤 지나니 내 방광도 요동을 친다. 잠시 휴게소를 들렀다. 헐. 휴게소 개방형 화장실을 본 아이들 몇이 기겁을 한다. 컬처쇼크다. 개방형 화장실 참 오랜만이다.
중국인은 붉은 색을 좋아한다더니 어디를 가든 붉은색 천지다. 특히 주택 지붕은 거의 붉은색이다. 차창밖으로 드넓은 옥수수밭이 펼쳐진다. 드넓은 만주벌.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 항일 유적지. 저 멀리 발해의 시원지 '동모산'이 보인다. 해동성국 발해의 출발지. 동모산. 나는 당췌 무엇을 상상했던 것일까?작은 언덕 정도의 크기와 높이에 놀랐다. 내가 보았던 '대조영'은 그렇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리기 전 길*투어의 배** 팀장은 중국의 숙소에선 마시는 물도 돈을 내야 한다며 여행사에서 준비한 생수를 한 병씩 챙겨주었다. 한모금 마셨지만 삼다수 같은 청량함은 없다. 중국이 유독 차가 발달한 이유를 알겠다. 경험만 한 교훈은 없다.
여행학교 첫날과 둘째 날, 우리가 이틀을 보낼 숙소(3성, 명호 호텔)는 2인 1실이다. 원래는 싸부와 함께 방을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D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괜찮은데 D는 좀 불편하겠다. 함께 하는 동안 잘해줘야지. 저녁은 가까운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한식이다. 맛은 중국식이다. 단짠단짠, 기름진 음식들. 김치처럼 생긴 붉은 채소를 먹다가 컥컥거렸다. 입안에서 우적우적 대다가 넘겼다. 입안을 휘감는 향신료, 느끼함.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쌀밥, 삶은 계란과 양파볶음으로 겨우 허기만 면했다. 여행 첫날부터 김치찌개와 고추장이 그립다. 라면 사리 들어간 부대찌개가 그립다.
청소년 여행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은 십오 명. 세모 둠이다. 밤 아홉시에 총괄 책임자인 사무국장 숙소로 모였다. 교사와 모둠장들이 첫날 평가를 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했다. 아픈 아이는 없는지. 다칠 것을 미리 예정해둔 아이는 없는지. 그런 것들. 여행 내내 S와 H가 멀미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열한 시가 넘었다. 스무 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끈적한 얼굴과 몸을 씻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물도 나오지 않는다. 창밖을 보니 온 도시가 깜깜하다. 머리에는 거품이 한가득인데. 십분, 이십 분, 한 시간. 개수대에 담긴 물로 간신히 머릿속 거품을 씻어냈다. 어제 새벽부터 시작된 여행학교 첫날의 하루는 머릿속의 하얀 거품과 함께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