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 끝에 예정되어있던 두 번의 정규직 면접을 취소했다. 이젠 나이도 먹고 특별한 재주나 능력도 없지만, 정규직보다 계약직을 선호하게 된다. 사회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말하지만, 나처럼 자발적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제저녁에 계약직 면접을 봤다.
그동안 해왔던 아동 돌봄 분야다. 시설장님이 내 경력을 보고 연락을 주셨단다. 내년에 평가가 있는데 내 경력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면접을 보기 위해서 오랜만에 검정 구두를 꺼내서 신었다. 구입 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몇 번 신지 않은 탓에 여전히 새 구두 같다.
또각 또각. 또각.
면접 시간이 남아서 도서관을 갔다. 매일 찾는 도서관 계단을 오르는 구두 소리가 각이 진다. 그 각진 소리가 나쁘지 않게 들린다. 두 발에 가해지는 적당한 압력이 마치 정장을 입은 것처럼 흐트러지려던 걸음을 똑바로 붙잡는다.
한 때는 매일 구두를 신어야 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푹신한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 삶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지? 맨발로 있어도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반짝반짝 광이 나던 구두는 어느새 코가 헤지고 구겨진 채 뒤축이 닿은 헌 구두가 되고, 새 하얗던 운동화는 누렇게 변하고, 푹신한 슬리퍼는 닿고 닿은 슬리퍼가 된다.
모나게 자라는 새끼발톱을 깎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신발에 발을 맞추는 삶이 행복할까? 구두를 신어도, 운동화를 신어도, 슬리퍼를 질질 끌어도, 내 발은 여전히 내 발이다. 무얼 신어도 상관없는 삶이다. 결론은 무엇을 신던지, 편한 대로 신자.
발가락은 못났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