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가 끝나고 딱히 볼 드라마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빈자리를 대신한다. 공중파나 기존 채널이 아닌 신생 채널 ENA에서 방송을 한다.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가 흠모하는 박은빈이니 기본은 하겠다 싶었다.
막상 드라마를 첫회를 보고 나니 기대 이상이었다. 장애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는 서번트 증후군을 보인다. 미혼부 밑에서 자라며 변호사가 된다. 자폐아가 변호사가 된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변호사가 된 사례가 있다. 작가가 그 변호사를 모델로 한 듯하다. 법무 법인 한바다의 변호사가 된 우영 우가 회사 동료들과 억울한 이들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다른 법정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 빌런이 등장하는 극한의 갈등이 아닌 선한 이들의 대립과 갈등이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밋밋할 수도 있지만 주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열연과 캐미가 잘 맛고 특히 우영 우의 사수 역할인 정명섭 변호사와의 케미가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우영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항상 이렇게 소개한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 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역삼역"
삼초 간 시간차를 둔 후 마지막 역삼역에서 훅 뿜었다. 넷플릭스 영어 자막 번역가가 이 부분을 번역하느라 꽤나 고생했다는데 그랬을 것 같다.
아울러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과하지 않게 드러내며 비장애인이 잘 모르던 편견을 이해하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을 다치게 한 할머니를 변호하는 정 변호사와 우영 우의 대화에서...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건 같네."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나 같은 비장애인이 장애인 앞에서 생각 없이 했을 표현이나 단어 또는 행동을 상황과 설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공교롭게도 지난 며칠 복지이으미 대체인력 단기 알바를 했던 곳이 <장애인 주간 쉼터>였다. 오랜만에 사회복지사로 사회복지현장을 접하니 모든 것들이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단기 쉼터에도 우영우와 비슷한 자폐 스펙트럼을 보이는 이용인들이 있었다.
수시로 박수를 치고, 몸을 앞 뒤로 흔들고, 상대를 빤히 응시한다. 하지만 그 시선은 상대방과의 소통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갇혀있는 자신을 향한 시선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사소한 말 한마디 행위 하나에 웃는 모습은 참 부러웠다. 몸의 부자연스러움 대신 미소를 준 게 아닐까.
이용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식단표, 일일 프로그램, 시간표... 등 모든 것이 글자와 그림이 함께 표시되어있다. 프로그램도 사진교실, 생활요리, 볼링, 심리미술 등 요일별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요리, 미술, 사진등 대부분 활동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수준에 맞춰서 진행되었다.
장애인들이 볼링을 어떻게 칠까 싶었는데 경증 이용인들은 스스로 볼링을 쳤고, 중증 이용인들은 낙차를 이용하는 기구를 이용하여 볼링을 쳤다. 사회복지사들이 레인 앞에 놓인 기구에 볼링공을 올려놓으면 공을 밀어서 레인으로 보냈다.
지역아동센터에 있을 때도 일 년에 한두 번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을 받을 때만 이용인들의 불편함을 조금 이해할 뿐 아직은(?) 그들의 삶이 나의 삶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장애인과 함께 이동할 때는 반 걸음 뒤에서 걸으세요."
지난해 노인돌봄센터에서 장애인 활동지 원사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던 장면이 되살아났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자가 한통 와있다. 어제 젊은 이용인 한 분이 엄청 뿌듯해하며 보내주겠다던 유희왕 카드 사진이다. 지난 이틀간 그분을 전담했다. 그분이 내 스마트폰에 설치해준 포켓몬도 몇 마리 잡을 계획이다. 포켓몬을 나보다 훨씬 잘 잡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는 사건이 꼬일 때마다 고래를 떠올리며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낸다. 장애를 주제로 한 선한 드라마 한 편이 우리 사회에 여전한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개선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