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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Sep 24. 2022

큰고모

올해는 유난히 조문을 많이 한다. 한 달 전에도 속절없이 먼길 떠난 친구 조문을 다녀왔다. 그제는 부안 큰고모가 숙환으로 먼길을 떠나셨다.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갑작스러운 부고다. 십 년 만에 부천 사는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함께 가기로 했다. 다음날 사촌동생의 차를 타고 부안 혜성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탓에 사촌동생도 나도 처음엔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장례식장 입구 위에 큰고모와 유족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가로로 펼쳐졌다. 김**. 큰고모의 이름이 낯설었다. 나는 생전 큰고모의 이름을 말하거나 불러 본 적이 없었다. 내게 큰고모의 이름은 언제나 큰고모였다. 이모들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고모의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뉴저지에 살고 있다는 미국 고모, 돈지의 막내 고모. 두 고모의 이름을 이제라도 기억해야겠다. 


영정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큰고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 형과 누나들에게 슬픔과 위로를 전했다. 고모부는 아흔을 바라보시지만 눈도 밝으시고 허리도 꼿꼿했다. 저녁을 건너띤 탓에 허기가 졌다. 긴 시간을 이별했던 인척들이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눈다.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구먼, 별일 없이 잘 사는가, 건강은 어떠신가, 결혼은, 자녀는.


마스크를 쓴 여인이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나는 먼 친척이라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릴 적 보았던 조카에게 아는 척을 했지만 그 조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 아들, 조카, 며느리, 먼 친척의 손자, 이곳을 떠나면 다시 만나는 일이 없을 이들을 소개한다. 시끌벅적한 장례식장을 보며 언젠가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닥칠 상황과 장면들을 상상한다. 그곳이 쓸쓸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막내 고모의 가족과 자리를 함께 했다. 작년에 고모부 돌아가셨을 때 보고 처음이다. 어릴 때 함께 놀던 사촌동생들과 선한 인상의 두 매제,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같이 놀던 추억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좋은 기억이다. 주고받는 대화와 서로를 그윽이 바라보는 표정에서 화목함이 보인다. 화목한 시간을 위해 만들어왔을 노력들이 부러웠다. 맏이의 역할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이야기 주제는 돈이었지만 그 중심엔 사람이었다. 


큰고모와의 추억 한 가지가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고창에 살았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별이 빛나던 날 밤에, 큰 이모가 고창에 있던 우리 삼 형제를 부안으로 데려다주셨다. 큰 집 안방에 들어서자 큰고모가 나를 품에 안고서 오랫동안 흐느끼셨다. 고모 품에 안긴 포근함이 좋았다. 


술을 마신 사촌동생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밤중의 고속도로는 막힘없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세시다. 경직된 근육이 덜 풀린 채 잠이 들었다. 동이 틀무렵 왼쪽 다리에 격심한 경련이 일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며 고생한 다리는 오른쪽인데 통증은 왼쪽으로 왔다. 창 틈으로 희붐한 빛이 새어드는 방 안에서, 허리를 굽힌 채 경직된 종아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했다. 통증은 일분 남짓 지속되었다. 종아리의 격심한 고통이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통증이 끝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종아리는 종일 얼얼했다.


올해 남은 날들은 궂긴 소식이 아닌 밝은 소식만을 접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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