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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가을이 좋지만, 가을이 싫은 이유

가을 문턱에서 친구와 남한산성 산행을 했다.

by 김인철


작년부터 인연이 된 친구와 주 1회 탄천에서 한강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같이했는데 오늘은 그 친구와 남한산성을 오르기로 했다. 산성 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남문을 거쳐 수어장대까지 두 시간이 조금 넘게 등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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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산성의 가을 하늘은 흐렸지만 적당히 쌀쌀했고 산행을 하기에 좋았다. 가을 초입 초록초록 한상태로 약간은 부족한 산성의 울긋불긋함을 만끽한 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산행을 했다.


화사한 가을이 좋지만 가을이 싫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맘때쯤이면 항상 알수없는 스산함과 쓸쓸함이 내 몸과 감정에 깃들어 의욕을 상실하고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던 삶을 향한 약간의 환희를 저 만치로 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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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을 오르는 곳곳에 지난 폭우와 태풍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안타까웠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수어장대가 꽤 멀었다. 수어장대에서 내려온 후 로터리 근처 빈대떡 전문점에서 파전에 동동주(+신라면)한잔 했다. 도톰한 파전과 시원한 동동주로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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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신라면 하나를 주문했는데 산성에서 먹는 라면 맛에 감겼던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었다. 집이나 편의점에서 먹던 것 과는 다른 세계의 맛이었다. 신라면의 새빨간 국물이 찬 기운에 허허롭던 혀와 목구멍, 그리고 차갑던 위장을 뜨겁게 덥혀 주었다. 결국 하나를 더 주문하고 후루록 목구멍으로 삼켰다.


오전 산행으로 주렸던 배를 기름진 파전과 동동주, 그리고 환상적인 신라면으로 든든히 채우고 지인이 인수하고 싶어 하던 카페에서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입구에서 수어장대까지 오전 산행의 노곤함을 풀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 둘이 다정한 커플과 꽃들이 만개한 산성의 한 카페에서 인생을 논했다. 지인이 카페를 인수하면 구석에 조그만 집필실 하나 얻어서 세월을 낚고 글이나 쓰면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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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을 오르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산성 공원 입구의 위험함과 산만함이다. 열아홉 살부터 보던 풍경이니 어언 삼십 년이다. 산성 입구는 사람으로 치면 얼굴인데,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지도 꽤 지났는데 언제쯤 말끔하게 정돈된 남한산성 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내일 새벽에 찾아올지 모를 종아리나 허벅지의 경직을 염려하여 하산하는 길은 버스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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