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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07. 2022

화사한 가을이 좋지만, 가을이 싫은 이유

가을 문턱에서 친구와 남한산성 산행을 했다.

 

작년부터 인연이 된 친구와 주 1회 탄천에서 한강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같이했는데 오늘은 그 친구와 남한산성을 오르기로 했다. 산성 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남문을 거쳐 수어장대까지 두 시간이 조금 넘게 등산을 했다.



비록 산성의 가을 하늘은 흐렸지만 적당히 쌀쌀했고 산행을 하기에 좋았다. 가을 초입 초록초록 한상태로 약간은 부족한 산성의 울긋불긋함을 만끽한 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산행을 했다. 


화사한 가을이 좋지만 가을이 싫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맘때쯤이면 항상 알수없는 스산함과 쓸쓸함이 내 몸과 감정에 깃들어 의욕을 상실하고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던 삶을 향한 약간의 환희를 저 만치로 밀어 놓는다.   



산성을 오르는 곳곳에 지난 폭우와 태풍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안타까웠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수어장대가 꽤 멀었다. 수어장대에서 내려온 후 로터리 근처 빈대떡 전문점에서 파전에 동동주(+신라면)한잔 했다. 도톰한 파전과 시원한 동동주로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추가로 신라면 하나를 주문했는데 산성에서 먹는 라면 맛에 감겼던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었다. 집이나 편의점에서 먹던 것 과는 다른 세계의 맛이었다. 신라면의 새빨간 국물이 찬 기운에 허허롭던 혀와 목구멍, 그리고 차갑던 위장을 뜨겁게 덥혀 주었다. 결국 하나를 더 주문하고 후루록 목구멍으로 삼켰다.


오전 산행으로 주렸던 배를 기름진 파전과 동동주, 그리고 환상적인 신라면으로 든든히 채우고 지인이 인수하고 싶어 하던 카페에서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입구에서 수어장대까지 오전 산행의 노곤함을 풀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 둘이 다정한 커플과 꽃들이 만개한 산성의 한 카페에서 인생을 논했다. 지인이 카페를 인수하면 구석에 조그만 집필실 하나 얻어서 세월을 낚고 글이나 쓰면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 

 

산성을 오르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산성 공원 입구의 위험함과 산만함이다. 열아홉 살부터 보던 풍경이니 어언 삼십 년이다. 산성 입구는 사람으로 치면 얼굴인데,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지도 꽤 지났는데 언제쯤 말끔하게 정돈된 남한산성 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내일 새벽에 찾아올지 모를 종아리나 허벅지의 경직을 염려하여 하산하는 길은 버스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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