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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Apr 16. 2023

그랜저HG, 나의 첫번째 준대형 세단

'고민은 배송만 늦출뿐'이라는 진리를 깨닫다.


운전면허를 28살에 취득했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 지금까지 내가 구입한 자동차는 모두 세대다. 첫 번째 자동차는 1998년식 수동 아반떼다. 일을 쉬면서 한동안 뚜벅이의 삶을 살다가 2006년 지역아동센터에 취업을 하고 차가 필요해서 지난 2013년 2007년식 아반떼 HD를 중고로 구입했다. 아반떼 HD를 2022년까지 탔으니 꽤 오래 탔다. 아반떼를 모는 동안 자잘한 접촉사고 외엔 큰 교통사고도 없었고 잔고장도 거의 없었다. 삼 년 전인가 태풍에 옥상에서 떨어져 날아온 알루미늄 조각에 주차장에 있던 아반떼 뚜껑이 박살 난 적은 있다. 차값보다 수리비용이 더 나왔지만 다행히 가해 건물주가 보험처리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만 20만 킬로가 다 되어가는 아반떼 HD를 보내줄 때가 되었다.

      

▲ 그랜처HG 그랜저HG ⓒ 김인철

 

나의 세 번째 자동차는 그랜저 HG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껏 구입한 자동차 세대 모두 현대다. 그랜저는 한때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다. '어떻게 사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를 보여주었다'는 자동차 광고 카피의 주인공이다. 그중에서 5세대 그랜저 HG는 디자인과 성능면에서 가장 명차라고 불린다. 그랜저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호구'라고 불린다. 하지만 프리미엄 럭셔리 카의 대명사이던 그랜저가 지금은 현대에서 독립한 '제네시스'와 다른 수입차 대형 세단에 비해서 그 명성이 다소 퇴색되었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대형차, 특히 그랜저는 성공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는 한 IT유투버의 말을 듣고서 그런 생각을 했다. 포르셰 카이엔, 마이바흐, 그리고 에스턴마틴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드림카지만 현실적인 드림카 하나 정도는 꿈을 꿔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 현실적인 드림카가 나에게는 바로 2011년식 그랜저 HG였다. 


그랜저 HG와 K7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차값은, 세금이 비싸잖아. 그리고 유지비는...


자동차를 살 때 반드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러기에 신차는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고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랜저 HG와 K7과 사이에서 꽤 오래 고민했다. 성능과 브랜드. 무엇보다 자동차는 안전이 우선이었다. 고심 끝에 그랜저 HG를 구입했다. 그랜저 HG는 준중형 아반떼를 운전할 때와는 확실히 격이 다른 주행감과 승차감을 경험하게 했다.

       

▲ 그랜저HG 그랜저HG ⓒ 김인철


아반떼를 타면서 붉은 요철을 넘을 때마다 온몸이 흔들리던 내가 그랜저 HG를 타면서 노면의 충격이 바퀴로 감아도는 느낌은 내가 붉은 요철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갖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단단한 검은색 시트에 피곤이 덜 풀린 몸을 얹고 시동 버튼을 누르면 웰컴라이트가 켜지면서, 나를 위해 세상을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환영을 해준다. 처음 차를 인도받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그날 밤에 이 상황이 설레어서 몇 번이고 나갔다가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채 정신이 혼미한 채로 다가가면, 이 근엄하면서도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밤새 서리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던 멋진 녀석은, 하늘 위로 접혀있던 검은 사이드 미러가 수평으로 촤르륵 펴지면서 자신의 생애에서 두 번째 주인인 나를 환영한다. 하지만 겨우 주행거리 2,000킬로를 넘긴 우리는 추앙의 단계는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신뢰를 넘어 추앙의 단계로 가려면 최소한 만 킬로는 넘어야 한다. 

       

▲ 그랜저HG 그랜저HG 운전석 ⓒ 김인철


내가 구입한 그랜저 HG는 240 럭셔리 기본 모델이라 옵션은 많지 않다. 주행거리는 10만킬로가 조금 넘었다. 차량 구매가격은 등록비 포함해서 9백만원이 조금 안된다. 겨울철 차가운 손을 따스하게 해 줄 핸들 열선과 무더운 여름철 통풍좌석 옵션이 없는 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모자람은 또 다른 작은 욕망을 위한 충족시키기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 

    

▲ 그랜저HG 그랜저HG 센터페시아 ⓒ 김인철


십녑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랜저HG의 전면, 측면, 후면 디자인은 지금 봐도 크게 낡았거나 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부르릉.... 시동을 걸기도 전에 바로 튀어나갈 것 같은 그랜저 HG의 날렵한 옆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요즘 나오는 차들에 비하면 실내 인테리어와 센터패시아가 다소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아보면 항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의 콕핏에 탑승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그랜저HG 그랜저HG ⓒ 김인철


준대형 세 단답게 그랜저 HG의 핸들은 묵직하다. 단단한 그립감이 좋다.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계기판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면서 시인성이 좋다. 핸들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움켜 잡으면 준대형 세단의 묵직함이 두 팔을 타고서 온몸으로 전해진다. 오른쪽 발에 서서히 힘을 주며 악셀레이터를 밟으면 긴장했던 몸이 바닥으로 착 가라앉으며 나의 사랑스러운 그랑이가 전방을 향해 스르륵 미끄러진다.  


       

▲ 그랜저HG 그랜저HG 뒷좌석 ⓒ 김인철


중고 그랜저HG를 구입후 6개월간 타면서 느낀점


그랜저 HG를 중고로 구입후 6개월이 지났다. 올 1월부터 매일 아침 왕복 20킬로씩 출퇴근을 하고 있다. 주말이면 가끔 어머니를 모시고 교외로 바람을 쐬거나 병원을 다녀올 때가 있는데 어머니도 뒷자석도 넓고 조용해서 좋다고 하신다. 운전을 하다보면 나와 같은 연령대의 아저씨들이 차량 성능이나 제원, 그리고 가격을 묻곤한다. 그들도 나처럼 준대형 세단의 로망이 있기에 그럴것이다.


그랜저HG의 복합연비는 평균 9킬로 정도 나온다. 출시초기 세타엔진 결함 이슈가 있지만 아직은 별다른 이상이 없다. 엔진오일과 에어컨필터 외에는 소모품도 거의 들지 않았다. 덕분에 통장은 가벼워졌지만 그랜저HG를 구입한 것은 잘한 선택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되서 만난 친구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2011년식 그랜저를 태워주었다. 현실의 로망을 이룬 나의 결단에 '나도 지를까?' 하는 친구의 표정이 살짝 흔들린다. 혹시 이 기사를 보시는 분 갖고 싶은게 있나요? 여력이 된다면 저지르시기를....고민은 배송만 늦출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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