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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Mar 25. 2023

다시 시작된 울퉁불퉁한 시간들

뭐랄까, 서른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휘핑크림같은 달콤함을 기대한 건 아니다. 각지고 울퉁불퉁한 이 공간에 팽팽했던 몸과 정신을 맞추는 중이다. 가볍던 나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진다. 지난 시간 단련되었던 익숙함이라는 장점을 살려야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이년간,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던 무기력과 불안이 매일 정신없는 상황속에서 상쇄되는 장점도 있다. 익숙함에 덧대어진 무기력이, 새로운 변화 앞에서 또다른 공포를 불어 오는건 아닐까 싶지만....


일주일, 아니 한달은 나를 옥죄던 예전의 트라우마들이 사람들의 죽을날을 선고하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사신처럼, 나를 향해 두겹 세겹으로 달려든다.


처음 '지역아동센터'라는 지인들에게 딱히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힘든 공간에서 아동 돌봄을 시작하던 2006년이나 2023년이나 서 있어야 하는 공간과, 삼십평 남짓한 공간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얼굴만 달라졌을뿐, 여전히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하루는 차가운 복도의 시멘트 계단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인채 자신을 닮은 슬픈 자화상을 그리던, 사흘 내내 다른 아이들과 갈등을 겪으며 심신이 불안을 토로하던 한 아이를 보며 십년 전에 만났던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검은 토끼의 해도 3월이 다 지나간다. 새해가 되면 빳빳한 다이어리 뒷장에 스무개도 넘던 신년 계획을 적지 않은지 몇해 되었다. 까닭은. 바람이나 소망은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이루어질건 이루어졌고 또 스러질건 스러졌다. 그 결과들에 내 의지와 결단만 한소금 더했을뿐이다. 이루지 못한 소망들이 더 많다.


앞으로 견뎌야 할 상황속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지옥의 사신같은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신년 계획은 아니다. 그냥 듣는이 없이 흘러가는 순간의 독백일뿐. 나에게, 또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 구름처럼 가볍고 싶다. 새털처럼, 적당히. 내 영혼을 오래 오래 침잠시키던 공허가 일상의 적당한 긴장으로 무뎌지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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