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네 번의 짧은 노크

by 김인철

2020년 4월, 역대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공동 작품집 'JTI 팬덤클럽' 수록되었습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짐승이 된다.


1.


구르릉. 구르릉. 마을버스 한대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비탈진 언덕을 힘겹게 올라온다. 상대원의 하늘은 오늘도 부옇다. 경사진 언덕을 힘겹게 올라오던 버스는 삼거리 진로마트 앞에서 멈추더니 칙.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차문을 연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승객들이 비틀거리며 계단을 밟고 내려온다. 버스 맨 뒤 좌석 끝에 앉아있던 혜련도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다. 머리에 큼지막한 황금빛 보따리를 얹은 할머니가 계단에서 넘어질듯 좌우로 비틀거린다. 할머니는 가까스로 비스듬하게 서있던 전신주 하나를 부여잡으며 중심을 잡는다. 혜련은 길게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를 지나쳐 진로마트를 지나더니 삼거리 골목에서 가운데 골목으로 들어선다. 블라우스와 주름진 검정치마, 굽이 닿은 하이힐, 단정한 차림의 그녀는 오늘 하루가 힘들었던지 꽤나 지친 기색이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퉁퉁 부은 두 발이 불안하게 비틀거린다. 그녀의 머리 위로 낡은 전신주와 전선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골목은 혜련의 머리위로 널려진 전선만큼이나 좁고 복잡하다. 직선거리로 오십 미터 남짓한 혜련의 집까지 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하다. 골목이 깊어질수록 피복이 벗겨지고 위태로운 전선들이 낮고 길게 이어진다. 찌그러진 철제 우편함엔 빗물에 부풀어 오른 고지서가 가득하다. 혜련은 계단을 오르려다가 모서리에 못이 삐죽 튀어나온 낡은 목제 우편함을 쳐다본다. 붉은 도장이 찍힌 독촉장과 고지서가 퉁퉁 불어 겹친 채 우편함에 뭉툭하니 나와 있다. 독촉장을 읽는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그녀의 오래된 가방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낡은 황금빛 손잡이엔 손때가 묻었다. 그녀는 발신지를 아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뒤로도 두세 차례 전화벨이 울린다. 혜련은 터벅터벅 녹슨 철제 계단을 오른다. 아귀가 맞지 않는, 손잡이가 헐거워진 철문은 오늘도 열려 있다.


땅거미가 진다. 혜련의 집안은 동굴처럼 깜깜하다. 입구 쪽 타일 바닥엔 여름용 슬리퍼와 코가 헤지고 굽이 닿은 구두 세 켤레가 반듯하게 놓여있다. 거실 한쪽엔 냉장고가 놓여있다. 이사 오면서 재활용센터에서 십만 원에 구입한 미니 냉장고다. 냉동실에 성애가 절반이나 끼었지만 냉장실은 쓸 만했다. 싱크대는 한쪽 수납 문이 약간 틀어졌다. 싱크대 위는 물 한 방울 없이 깨끗했고 찬장에는 반듯하게 쌓인 그릇과 유리, 그리고 갖은 양념 통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화장실은 문을 완전히 닫을 수 없는데 싱크대 옆에 있는 세탁기 호스가 화장실 쪽으로 연결된 때문이다. 화장실도 타일이 부서진 자리에 검은 구멍들이 뾰족하게 솟았다. 물기 젖은 문턱은 탈피한 뱀의 허물처럼 썩고 푸석푸석했다. 벽이나 변기는 물 때 하나 없이 깔끔했다. 백열전구속 필라멘트가 깜빡깜빡거린다. 현관 출입문부터 냉장고 손잡이, 그리고 싱크대까지 혜련의 공간은 조금씩 엎질러졌거나 어긋나 있다.


압력 밥솥에서 치이익 소리가 나더니 김이 빠진다. 언니는 작은 방에서 잔다. 장롱 하나와 책상이 전부다. 책상엔 언니의 책들로 가득하다. 혜정이 이불을 무릎까지 덮고서 허리를 벽에 기댄 채 압 화를 만들고 있다. 바닥엔 미니액자와 들에서 꺾은 꽃들이 널려 있다. 누렇게 바랜 벽엔 언니가 만든 압 화 세 개가 나란히 걸려있다. 새하얀 안개꽃을 붙인 액자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오늘은 많이 늦었네, 면접은 잘 봤어?”

“아니, 이번에도 힘들 것 같아. 내일 몇 군데 더 다녀 보려고. 엄마는?”

“저녁 반찬거리 좀 사 오신다고 상대원 시장 가셨어.”

“자꾸 움직이시면 팔 부러진 거 잘 안 붙을 텐데. 그냥 진로마트에서 사시지.”

“모두부는 상대원 시장 게 더 고소하대.”


혜련의 어머니는 며칠 전 일하던 식당에서 식자재를 옮기던 중 넘어지는 통에 오른쪽 팔을 다쳤다. 의사는 뼈에 금이 가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한사코 통원 치료를 하시겠다며 깁스만 한 채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시간제 일이라 치료비도 받지 못했다. 혜련의 전화기에 다시 벨이 더 울리더니 문자가 한 통 왔다. 대출 독촉 문자다.


"주인아주머니가 월세 올려 달라는데."

"얼마나?"

"십만 원. 다음 달부터 올려 달래."

"이젠 올려 줄 때도 됐지. 아니 한참 지났지."

"그렇긴 해. 그렇지만 한 달에 십만 원을 어떻게 올려."

"걱정 마. 내일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테니까. 엄마도 팔 다 나으면 식당일 하실 테고."

"미안해. 언니라고 하나 있는 게 가족들한테 별 도움도 못되고."


혜정은 화선지에 붙이려던 하얀 안개꽃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혜련은 김이 빠진 압력밥솥을 열더니 주걱으로 밥을 고루 섞는다. 찰진 밥알의 고소한 향기가 방 안으로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혜련은 냉장고에서 가지나물, 명이나물, 오이무침, 고추 장아찌, 멸치볶음을 꺼내서 차례로 밥상위에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치냉장고에서 시큼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사각사각 썰어서 상위로 올려놓는다.


"오늘은 된장찌개야."

"오늘도겠지. 언니야, 넌, 된장찌개가 지겹지도 않니?"

"지겨워도 어쩔 수 없잖아. 혈당도 많이 안 올라가고. 소화도 잘되고. 요즘 계속 피곤해. 입안이 자주 헐어. 아침 공복 혈당이 이백이 넘어."

"병원 갈 때 되지 않았어?"

"이번에 가면 당화혈색소 검사결과 나올 텐데 의사 선생님이 입원하라고 할 것 같아."

"지난번에도 9.8 나왔어. 병원 갈 때 마다 의사 선생님이 관리 안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야."

"이 참에 병원 바꿀까?"


언니는 어릴 때부터 당뇨를 앓고 있다. 일곱 살 때 버스에서 쇼크가 왔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했다. 아홉 살 언니는 주사를 더 무서워했다. 저혈당이 자주 왔다. 가방이나 옷에 초콜렛이나 사탕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비염과 천식도 앓았다. 지하철에서 기침이 멈추질 않아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땐 응급실도 수차례 실려 갔다.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다. 합병증 탓인지 한쪽 눈이 잘 안 보인다. 콩팥도 망가져서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 언니는 그렇게 십오 년을 살고 있다.


2


“이봐 고씨. 그러고 있지 말고 주민센터에 뭐 긴급 복지 지원제도 같은 거 있다고 하던데 지원 받을 수 있나 좀 알아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텐데요.”

“이그, 답답한 사람아. 그럼 식당에서 일한 품삯이라도 달라고 해.”

“그렇게 물러 터져서 앞으로 남은 삶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러게 이미 저승길 받아 놓은 양반 뭣 하러 살리겠다고 그 많은 병원비를 쏟아 쏟기를...”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렇게라도 했으니 제 맘이라도 편하지 안 그랬으면 저 못살아요.”

“자기 남편 살리자고 둘째 딸 신용불량자 만들어 놓구선.”

“내일 당장 두 딸내미랑 약 먹고 죽을 것 아니면 앞날 생각해서라도 한번 알아봐.”

“알아볼게요. 그나저나 다음 달부턴 월세를 올려 드려야 할 텐데. 죄송하네요.”

“나야 뭐 월세 십만 원 더 안 받는다고. 암튼 내 고 씨 보기가 딱해서 그래.”

“그래. 고 씨 같은 건물주만 있으면 월세 살 이도 할 만하지. 안 그래?”

“하긴. 지난달에도 상대원 복지관이랑 지역아동센터에 쌀 열 포대나 보냈다며.”

“아니, 다들 새삼스럽게 왜 그런 다냐?”

“죄송해요, 아주머니 조만간 올려드릴게요.”


고 씨는 팔이 욱신거린다. 아침에 진통제 먹는 것을 깜빡했다. 체납된 건강보험료라도 낼까 싶어서 주민센터 사회복지팀에 서류를 냈다. 하지만 담당 사회복지사는 고 씨가 내민 등본을 확인 하더니 장성한 자식이 둘이나 있어서 긴급지원 대상이 아니란다. 그의 책상 위엔 고 씨처럼 가난을 증빙하는 사람들의 서류가 수북하다.


3.


혜련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흘째다. 야간이다. 사장은 처음 한 달은 새벽 근무를 원했다. 유통기한을 막 넘긴 삼각 김밥 두개로 새벽의 허기를 면했다. 교대를 마치고 집에 온 혜련은 현관에서 신발 벗을 힘도 없다. 거실에 쓰러지듯 눕는다. 편의점 일이 서툰 탓도 있지만 새벽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이 버겁다. 야간 근무는 남자도 힘들다. 전임자도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버틸 수 있을까? 버텨야 한다. 버티면. 조금은 나아질까? 혜련은 피곤한 몸을 돌아눕는다. 형광등이 깜빡인다. 천장은 어둡고 아득하다. 새벽에 폭언을 쏟아 붓던 사내의 매서운 표정이 아른거린다. 도시락을 훔쳐 달아나던 고등학생의 얼굴도 떠오른다. 도시락 세 개는 그녀의 일당에서 빼야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돌아눕는다. 창이 보인다. 한낮에도 커튼을 치면 까만 세상이 되어 버리는 방. 붉은 커튼을 열면 붉은 벽돌이다. 어둡긴 마찬가지다. 스물 네 시간이 깜깜하다.


"언니, 이제 만화는 포기 했어? 요즘은 습작한 게 거의 없네. 그 많던 만화책도 다 내다 버리고."

“만화책 대여점에 모두 팔았어."”

“웹툰도 100회 이후로는 안 올라오던데.”

“마감하기로 했어. 어차피 다음 달에 계약도 종료되고.”


혜련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혜정을 쳐다본다. 혜정은 웃는다. 언니의 미소는 서늘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픈 탓인지 불안증에 시달렸다. 불안한 말들을 했다. 그나마 만화를 그릴 때는 즐거워했다. 포털에 웹툰 연재를 시작 할 때는 너무나 행복해 하던 언니였다. 언니는 아침에 건조대에 널어두었던 빨래를 개며 말한다.


“혜련아.”

“왜?”

“아니 그냥.”

“언니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정말이지?”


웹툰 매니저는 가족들의 삶을 소재로 웹툰을 그려보라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통해 위로를 얻고 동정할 대상을 찾는다고. 이십년을 장마가 져도 홍수가 나지 않을. 달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양념처럼, 가난이 스며들던 당신들의 비루한 삶을 조각조각 넣으라고. 겨울이면 연탄을 때고 타고 남은 연탄재로 얼었던 길을 덮는, 언덕이 높은 달동네의 사연을 풀어 보라고. 그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감동할 것이다. 좋아요 도 누르고 추천도 해줄 것이다. 구독자도 조회 수도 늘 것이다. 자신들보다 불행한 웹툰 속 주인공들의 상황에 위로를 받으면서. 하지만 혜정은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없었다. 그리기 싫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감동이 넘쳐나는 이야기들.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4.


강은 석 달 전만해도 P저축은행 강남지점의 부지점장이었다. 내년 봄에 지점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대출사기에 휘말렸다. 지점장이 소개한 사람이었다. 회사는 그 일로 이십억을 손해 봤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지점장은 은행장의 조카였다. 십오 년이 넘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억울했다. 그렇지만 강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에겐 강남 서초동에 사십사 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고향에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 칠천 평이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 둘이 있다. 작은 아이는 애교를 잘 떨었고 큰애는 새침했지만 공부를 잘했다. 행복했다. 더할 나위 없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향의 땅을 팔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더 살 수 있다. 잠시 쉬면서 재충전을 하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은 전과 다름없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 여유를 누릴 자신이 있었다. 강은 오히려 이번 위기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통장에는 생활비도 충분했다. 일 년 전 사두었던 비트코인도 크게 올랐다. 강은 퇴직 후 골프와 등산,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취미를 즐겼다. 하지만 그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서재에 설치한 모니터 두 개였다. 그날의 비트코인과 주식 시황이 시시각각 커다란 모니터에 펼쳐졌다. 연일 상승장이다. 이대로 가면 대박이다. 강은 갖고 있던 퇴직금을 모두 쏟아 부었다.


5.


한강에 어둠이 내리면 잠실대교의 가로등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온다. 아파트 13층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은 아름답다. 일렁이는 강물에 반사된 불빛이 오늘따라 더 빛난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하찮았다. 강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의 삶도, 부와 명예도,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최소한 그와 가족들이 누리던 생활만은 유지하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아내와 두 딸에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명품 와인과 최상급 스테이크를 사주고 싶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능력 있는 남편으로. 자상한 아빠로. 로열패밀리는 아니더라도 상류층의 삶을 누렸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똑똑한 첫째는 의사나 대학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는 둘째는 중학생이 되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유학을 보내고 싶었다.


"두원아. 미안한데 S은행도 어렵겠다."

"너도 잘 알잖아. 이 바닥 상황 뻔한 거. 그동안 해왔던 니 투자실적도 그렇고. 게다가 지난번에 내부자 거래 건이 좀 컸어. 알아봤더니 벌써 이 바닥에 소문 다 났더라. 아마 다른 데도 블랙 걸렸을 거야."

"그래. 어쨌든 신경써 줘서 고맙다."


강은 전화를 끊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눈치 빠른 친구는 그걸 알아챘을 것이다. 강의 잘못도 있었지만 억울했다. 그는 은행장 조카인 지점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게 된 회사는 얼마 안 되는 위로금을 주고서 그를 해고했다. 이직할 곳을 알아봐 준다는 지점장의 말과 함께. 지점장은 진심이었지만 최선을 다하진 않았을 것이다. 강은 모니터 두 개를 번갈아가며 주시했다. 강이 일주일 전에 산 비트코인은 잠시 고점을 찍더니 삼 일째 바닥을 친다. 강은 점점 불안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강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해고되던 날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 할 것만 같았다.


아내는 단골 숍에서 마사지를 받고 온 듯 피부가 뽀얗다. 고생이라곤 딸 둘 키우는 게 전부인 아내를 바라보며 강은 자신이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사랑은 했었던 것일까? 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무용을 잘한다. 그리고 아내는 명품을 좋아한다. 샤넬을, 구찌를, 루이비통을, 크리스찬디올을 두 딸만큼이나 사랑한다. 백화점도 동네 마트 가듯 다닌다. 하지만 그녀는 죄가 없다. 맑고 순수하다. 그녀는 돈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측은하게 여길 뿐이다. 가끔 두 딸을 데리고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가서 하루 종일 봉사도 한다. 인간극장을 보다가 눈물도 흘리고 기부도 한다. 그녀가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을 충실히 살고 있다.


“여보, 애들 학원 다른 곳으로 옮길까 봐.”

“왜? 지금 학원도 옮긴지 얼마 안됐잖아.”

“그 학원 선생님들 실력이 별로인가 봐. 학원비도 비싼데 선생님도 자꾸 바뀌고. 얼마 전에 수학 선생 한 명이 성추행으로 구속됐대. 이번에 다른 엄마들도 학원 옮긴대.”

“이번엔 얼마짜린데.”

“이백만 원.”


6.


"얘, 너희 신랑 아직도 백수라며?"

"경희네 신랑은 다음 달 지점장으로 승진한댄다."

"어머, 은영이네 남편은 지난달에 정교수 됐다던대."

"얘, 거기는 남편보다 은영이가 더 잘 나가잖아."

"하긴. 남편이 은영이 덕을 보고 있지."

"그나저나 너네 신랑 무슨 계획은 있는 거니? 너무 오래 쉬는 거 아냐?"

“너네 신랑, 몰락한 거야?”


강은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다. 세 번째 거절이다. 반쯤 문이 열린 안방에서는 아내와 친구들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강은 간간히 들려오는 그녀들의 웃음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호호호. 하하하. 까르르. 깔깔깔. 여자들의 웃음소리는 같은 톤이지만 그 의미는 상황에 따라 다양했다. 방금 전의 경박한 웃음소리는 자신을 향한 것이 분명했다. 백수. 몰락.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흉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맑고 순수하다. 아내나 친구들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 남편 흉을 보려면 문이라도 닫고 수다를 떨든지, 라며 강은 조용히 거실을 지나서 컴컴한 서재로 들어간다. 백수. 몰락. 전락. 안방에서 들리던 짧은 단어 세 개가 강의 뇌리를 오랫동안, 그리고 폭풍처럼 휘감는다. 강은 서재 한쪽에서 먼지에 쌓여있던 책을 한권 꺼낸다. 그가 대학생 때 읽었던 카뮈의 소설 「전락」이다. 전락, 한 인간의 파국을 뜻하는 비극의 단어는, 카뮈의 다른 소설, 「이방인」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를 떠올리게 한다. 탕.탕.탕.탕. 뫼르소는 해변에서 왜 그 아랍인에게 총을 쏘았을까? 햇빛 때문이었다고. 뫼르소는 재판장에서 말한다. 정말 햇빛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그 아랍인은 ‘네 번의 짧은 노크’를 듣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고 강은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를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직선으로 뻗은 트랙에서 앳된 얼굴을 한 선수들이 뛰어나갈 자세를 하고 있다. 땅! 소리와 함께 선수들은 백 미터 앞을 향해서 전력질주를 한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강은 아직도 뛸 힘이 남아있다. 강은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백 미터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다. 달려야 할 목적도, 운동장도, 백 미터 앞에서 기록을 재 줄 체육 선생님도 없었다. 구십구도 아니고 백 일도 아닌 정확히 백 미터. 15.3초. 강이 기억하는 최고 기록이다. 지금은 얼마나 될까? 19초, 배가 나왔어도 20초는 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강의 인생에서 백 미터 최고 기록은 15,3초이다. 줄어드는 것이 달리기 속도뿐일까? 바닥을 찍은 주식은 다시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사이로 본 손해가 일억이 넘는다. 아파트를 담보로 삼억을 대출 받았다. 현금은 충분하다. 아내의 씀씀이는 여전하다. 아이들이 새로 옮긴 학원비가 비싸긴 했지만 감당할 수 있다. 증권사에 다니는 아내 친구의 신랑이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다음 주말에 부부동반 골프약속을 잡았다. 조금씩 불안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고 여유가 넘쳐야 한다.


7.


땅거미가 질 무렵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익숙한 음성의 간호사는 어머니의 뼈가 제대로 굳지를 않아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혜련은 어머니에게 답답해도 깁스를 계속 하고 있으라고 했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겠다며 폐지 줍는 일을 시작하시더니 기어이 아물던 상처를 키웠다. 간호사는 보호자가 와서 사인을 해야 수술 날짜를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혜련이 가디건을 걸치고 안방 문턱을 넘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엔 언니가 다니는 병원이다. 언니의 신장 투석 일정이 잡혔다. 혜련은 다리에 힘이 풀린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을 조이고 있던 나사라도 풀린 것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날 저녁 고 씨와 혜련은 말없이 저녁 밥상에 앉았다. 고요했다. 혜련이 밥상에 수저를 내려놓더니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고 씨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서로를 붙잡고 서럽게 운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밥과 뜨거운 콩나물국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두 모녀는 밥상 위에서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었다. 하지만 혜정은 그날 끝까지 울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차갑게 식어 버린 밥과 국그릇을 다 비웠다.


“나, 신장 투석 안 받을래.”


밥상 위에 숟가락을 내려놓은 혜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받으면.”

“약 먹으면 되지 뭐. 저녁에 운동 더 많이 하고.”

“무릎도 안 좋으면서 운동을 더 한다고.”


신장 투석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혜정은 얼굴이 더 검고 푸석푸석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얗던 혜정은 몇 달 전부터 얼굴이 검고 푸석푸석했다. 윤기 나고 찰랑거리던 머릿결은 거칠다. 붉던 입술은 갈라지고 터지며 검게 변했다. 고 씨는 자포자기하는 혜정을 향해 모질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다시 사채를 빌려서라도 투석을 받게 해줄게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혜련도 마찬가지다. 다음 주가 수술인데 백만 원 남짓 드는 어머니 수술비도 아직 마련을 못했다.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는 여전히 친절하기만 하다.


세 모녀는 그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새벽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 채 뒤척였다. 그리고 고 씨와 혜련은 아침도 거른 채 일찍 집을 나섰다. 밤을 꼬박 세운 혜정은 고 씨와 혜련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가는 걸 확인 하고서야 이불속에서 참았던 울음이 봇물처럼 터진다.


8.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짐승이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그 짐승이 전자는 자신을 파괴하지만, 후자는 타인을 파괴한다.


“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 있잖아, 그 반대도 딱 그렇더라.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지만 황새처럼 살던 사람은 뱁새처럼 못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여럿 봤어. 사업 부도나고 치킨집 하다가 망하고 택배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부러지고. 결국엔 한강에서 차디찬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지. 그나마 그 사람들은 밑에서부터 올라왔으니까 그런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지. 나나 너처럼 고생 없이 자란 사람들은 죽어도 그렇게 못살아. 나도 피자집 망하고 새벽에 여러 번 갔어. 한강으로. 근데 난 도저히 못 뛰어내리겠더라. 그 어둡고 차디찬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더라.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죽지 못해 살긴 하지만, 그게 어디 사는 거냐.”


강은 은행에서 이억을 더 대출 받았다. 지난번에 대출 받은걸 더하면 오억이다. 강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월세 오십만 원짜리 고시원에 방을 하나 얻었다. 집에선 가족들 시선 때문에 주식에 몰두하기가 힘들었다. 아내에게는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신생증권회사에 과장으로 취직을 했다고 했다. 아내는 축하한다며 명품 구두와 정장을 선물했다. 강은 아침 여덟시에 집을 나섰고 아홉시 전에 집에 왔다. 회식이나 접대를 이유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강은 직장에 다닐 때처럼 아내에게 생활비로 매달 사백만 원씩 주었다. 아이들 학원비는 별도였다.


9.


언니 혜정이 며칠 전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어 했다. 편의점 일을 마친 혜련이 단골 정육점에서 삼겹살 한 근을 샀다. 혜련은 고기를 들고 나오면서 정육점 사장에게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정육점 사장은 혜련의 뒷모습을 보며 서늘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옆에 있던 손님이 주문한 고기를 썰었다. 혜련은 길 건너편 진로마트에서 통 마늘과 깻잎, 버섯, 비닐에 포장된 양파도 세 쪽 샀다. 진로마트 사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장을 보던 주인아주머니에게도 인사를 했다. 세 모녀가 둘러앉은 방은 삼겹살 냄새로 가득하다. 삼겹살이 절반 정도 남았지만 배가 부르다. 하지만 세 모녀는 숟가락을 상위에 놓지 않는다. 혜련은 검은 봉지에 마지막 남은 삼겹살 한 점을 집더니 달궈진 불판 위에 올린다. 고 씨는 화장지로 기름기 가득한 책상을 닦는다. 그리고 물을 묻힌 행주로 책상을 다시 닦는다. 혜정은 기름기 가득한 그릇을 들더니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한다. 혜련은 장롱에서 요를 꺼내고 이불도 새것으로 꺼낸다. 세 모녀는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코미디 프로다. TV를 보며 크게 웃는다. 9시 뉴스도 본다. 친 딸을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 드라마가 끝나자 자정이다. 세 모녀는 한 이불 속에 눕는다.


수면제 열 알이면 충분했다. 고 씨, 언니, 그리고 혜련. 죽음은 무엇일까? 존재가 없는 시간.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가는. 고통도, 슬픔도, 불안도, 희열도 없는 태초의 시간으로. 째깍, 째깍.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돌수록, 끝과 시작이 없는 단 하나의 점으로 남겨질 순간이 다가온다. 나무도 꽃도 싱그러운 풀도 없는, 숨을 쉴 필요도 없고, 모든 순간이 영이 되는 순간. 세 모녀에겐 너무 가혹했던 생. 그 생과 사의 경계에서. 죽음의 의식만은 평화롭고 싶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던 그 비루했던 시간의 보상으로. 아버지가 건강했으면, 언니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어머니가 친언니처럼 믿었던 계주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혜련이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았으면, 아니 세 모녀가 좀 더 열심히 세상을 살아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기껏해야 다섯 평 남짓이던, 세 모녀의 삶의 공간이, 단단하고 차가운 벽들이 그녀들을 향해 서서히 조여 온다. 세상을 의식하던 순간부터 세 모녀가 편안한 공간은 그 정도였다.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간도 그 언저리였다. 아무리 넓은 곳에 있어도 세 모녀가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다섯 평이었다. 다가오는 벽들은 세 모녀의 팔을 바스러뜨리고 머리를 짓이긴다.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할 만큼 했어. 그러니 네 삶을 자책 하지 마.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해. 네 식구가 한방에 둘러앉아 불판 위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시간, 싱싱한 상추 위에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 올리고 깻잎 하나, 마늘 한 쪽, 쌈장까지 올린 후 한 잎 크게 말아 서로의 입에 푹푹 넣어 주던 그때를. 아! 행복하다. 그때만 해도 붉고 촉촉했던 언니의 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어. 그러나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열아홉 살의 그 시간. 항상 그때가 그리웠어. 불판 위에서 잘 구워진 삼겹살이 맛있었다기보다는 희망이 있었거든. 언니는 만화가가 되고, 혜련은 대학을 졸업해서 반듯한 직장을 얻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딸 낳고, 어머니는 더 이상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뜰이 있는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는 희망. 화사했던 그해 봄 날 오후 두시처럼, 모두가 행복하게 웃던 날. 그립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엄마, 언니, 그리고 혜련. 태초의 시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혜련은 방 안의 모든 틈을 테이프로 막는다. 휴대폰도 어제 날짜로 모두 정지시켰다. 종이, 캔, 플라스틱, 바나나껍질. 쓰레기도 종류별로 담아서 바깥에 가지런히 내놓는다. 된장찌개를 끓이던 냄비에 넣어둔 번개탄은 꺼지지 않도록, 혜련의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불씨를 몇 번이나 확인한다. 삼십분 전에 수면제를 삼킨 언니와 어머니는 반듯한 자세로 누워있다. 혜련은 수면제를 먹기 전 책상에 앉아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편지를 쓴다. 반듯하던 글씨 위로 눈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진다. 종이에 글씨가 번진다. 혜련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편지를 써내려간다.


“미정아주머니께.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이번 달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저희 때문에 한동안 방이 안 나갈 것 같아 두 달 치 방세와 공과금도 넣었습니다. 셋방 정리하고 보증금에서 남은 돈은 가까운 복지시설에 기부해 주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혜련의 휴대폰에 문자가 온다.


“고객님, 이번 달 말까지 대출 이자 납부 바랍니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세상의 부채들. 후련하다. 혜련의 아버지 수술비로 빌려야 했던 천오백만 원은 어느덧 삼천만 원이 넘었다. 조금씩 갚았지만 빚은 계속 늘었다. 수면제를 삼킨 혜련은 의식이 아득해진다. 현실과 꿈속을 헤맨다.


“이상하지?”


언젠가 빚 독촉에 시달리며 서럽게 울던 혜련에게 언니가 물었던 말이 떠오른다.


“이상한 나라야.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 게. 버스비, 지하철, 고속도로 통행료, 전기요금, 가스요금, 전화요금. 가난한 사람들에겐 모든 걸 깎아 주는데 오직 돈에게만 이자가 더 붙는다.”

10.


메르디앙 호텔은 봉은사 가는 길에 있다. 유럽풍의 클래식한 외관은 부드러운 라밴더와 블루, 그린 색감이 주변의 차가운 건물과 차이를 드러낸다. 그 호텔엔 강이 가족과 함께 자주 가는 쉐프팔레트가 있다. 젊은 스타 쉐프 셋이 운영하는 쉐프팔레트는 모던한 스타일의 뷔페식을 내놓는다. 와인은 최상급이었고 시어링이 잘된 스테이크도 언제나 깊고 예민한 강의 혀를 만족시켰다. 내부 인테리어는 흑과 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천장이 높고 훤히 보이는 유리벽으로 실내 전체가 화사했다. 테이블 간격도 넓다. 흰 식탁보로 덥힌 테이블 중앙엔 유리병에 파란장미 세 송이가 서로를 엇갈린 채 서있다. 분위기를 돋우는 재즈풍의 멜로디는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생경하지도 않았다. 서빙을 하는 스텝들은 교육을 잘 받았는지 옷은 흑백으로 단정했으며 손님들에게 절제된 미소를 보였다. 네 식구가 한 번 오면 오십만 원 정도는 지불해야 했지만, 이곳에 오면 강은 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이곳을 찾는 이유였다. 그런 날은 아내가 더 예뻐 보였고 아이들은 더욱 사랑스러웠다. 오늘의 아뮤즈부쉬는 입맛을 한층 돋운다. 아내는 쉐프가 권하는 오늘의 메뉴 중에서, 티본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소연이와 소율이는 접시에 파스타를 담는다. 소책자를 보며 따라가는 와인미각여행도 설렌다. 엘꼬또, 블랑코, 엘 코또 데 리오하. 신선한 향과 산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아내는 기분이 좋은지 직원을 부르더니 와인 한 잔을 더 주문한다. 붉은 와인에 취한 아내는 얼굴에 홍조를 띈다. 아내는 강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댄다. 봄이 오면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강은 표정이 어두웠지만 아내는 개의치 않는다.


새벽 세 시다. 방 안에는 소주 세 병과 와인 병이 흩어져있다. 바닥엔 두 딸에게 감기약이라고 하며 먹이고 남은 수면제 몇 알이 흩어져 있다. 숨이 끊어진 두 아이의 얼굴은 핏기가 없다. 둘째의 목엔 붉은 머플러가 풀어져 있다. 첫째의 목엔 전기 줄이 감겨있다. 잔망스럽던 아이의 눈과 입에서 바닥으로 흘러나온 피가 검게 굳었다. 아내는 왜? 왜? 당신이 도대체 왜? 우리를. 침대에서 버둥거리던 아내는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잠옷은 찢어지고 침대를 은은하게 밝히던 무드등과 깨진 거울조각들이 침대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거실에서 잠을 자던 검은 슈나우저 한 마리가 제 주인의 날선 비명을 들었는지 짖어대며 방문을 마구 긁어댔다. 강은 삼분의 일쯤 남아있던 와인병을 들더니 고개를 젖히고 벌컥벌컥 입으로 붓는다. 강아지의 문 긁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린다. 강은 빈 와인병을 문 쪽으로 던진다. 쾅! 문에 부딪힌 병은 사방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맑은 콧물이 흐른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신음이 강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자신을 따듯하게 품어 주던 공간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은 강아지는 더욱 더 격렬하게 문을 긁어댄다.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이 크게 짖어댄다. 강의 양쪽 눈가에선 주루룩 눈물이 흐른다. 정신을 잃기 직전 자신을 쳐다보던 아내의 눈빛이 잊혀 지지 않는다. 무섭고 두렵다. ‘지금 내가 아내와 소연이 소율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했던 거지?’ 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지만 의식은 더욱 맑아진다. ‘어쩔 수 없었어. 이게 최선이야. 내가 없으면 어차피 모두가 불행해져.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쿵.쿵.쿵.쿵. 어디선가 차가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쿵.쿵.쿵.쿵. 환청이다. 강은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는다.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토요일에 손주들 보러 올라오겠다는 어머니의 문자다. 강은 전화기를 든다. 112에 신고를 했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강은 119 상담원에게 자신의 아파트 주소를 말하고 황급히 전화기를 끊었다. 아무라도 와서 제 손으로 숨을 끊어 버린 아내와 딸의 시신을 수습해주기를 바랬다. 염치없게도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누군가 마무리 해주기를 바랐다. 손과 발이 덜덜 떨린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강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벽과 기둥에 몸을 맡긴 채 비틀거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탄다. 초점을 잃은 시선과 경직된 몸짓을 보던 할머니가 손녀를 와락 품안으로 껴안는다. 강은 지하에 주차된 차 문을 열고 시동을 켠다. 차를 몰고 아파트를 벗어난다. 도로는 한산하다.정처 없이 차를 몬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강을 비켜간다. 강은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트를 수시로 밟았다.


쿵쿵쿵쿵.


다시 환청이 들린다. 그의 삶은 끝났다. 머릿속은 창백한 얼굴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내와 두 딸의 얼굴로 가득했다. 몰락. 전락. 파멸. 비난과 비웃음으로 가득할 사람들의 시선들. 강은 자신 있었지만. 결국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를 그도 피할 수가 없었다. ‘여보.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게 최선이었어. 소율아, 소연아. 아빠가 지은 죄는 지옥에서 영원히 갚을게.’


11.


쿵쿵.

쿵쿵쿵.


아침 여섯 시다. 목 씨는 일층 하수구가 역류하는 통에 아침 일찍 세 모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지난번에 고 씨의 화장실 하수구가 막혔었다. 그런데 기척이 없다.


쿵쿵쿵쿵.


목 씨는 현관문을 네 번이나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상하네. 이 시간이면 늘 불이 켜져 있는데. 오늘따라 늦잠이네. 고 씨, 일어났어? 혜련아, 혜정아. 또 화장실 하수구가 막혔나 봐.’ 목 씨가 동네가 떠나가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설마. 목 씨는 까닭모를 불안이 엄습했다. 비상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과 주방에서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지러웠다. 목 씨는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숨을 죽인 채 안방 문을 열었다. 세 모녀가 한 이불속에서 나란히 누워 있다. 위쪽엔 타고 남은 번개탄이 식어 있다. 어둑한 방 안에는 잿빛 죽음의 연기로 가득했다. 어머낫. 목 씨는 놀란 나머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신을 차린 목 씨는 119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고 씨의 어깨를 잡아서 마구 흔들었다. 혜정이도 혜련이도 움직임이 없다. 밖으로 꺼내야 했다. 하지만 목 씨 혼자서는 밖으로 세 모녀를 끌어 낼 수가 없었다. 목 씨는 허겁지겁 진로마트로 달려갔다.


“오 사장님, 큰일 났어요. 빠...빨리요.”


목 씨와 오 사장이 전신이 축 늘어진 혜련을 들고서 계단을 내려왔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자 혜련은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고 씨와 혜정은 여전히 의식이 없다. ‘어떻게, 어떻게.’ 목 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오 사장이 급한 대로 고 씨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아침 일찍 공장으로 출근하던 사람들도 가던 길을 멈췄다. 삼거리 골목은 금세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세상에나 이게 뭔 일이래요?”

“저 사람들 죽었어요?”

“한 명은 살았어요. 연탄가스를 마셨나 봐요.”


젊은 사내 한 명이 흰색 점퍼를 벗더니 혜정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119. 119. 빨리. 왜 안 와.’ 목 씨가 다시 119에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삼거리 골목의 가운데로 경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울리며 들어왔다. 뒤에는 구급차 두 대가 뒤따라 왔다.


“아줌마. 저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혜련이 괴로운 듯 목 씨를 불렀다.


“아이구야, 한 명은 살았네, 살았어.”


혜정도 잠시 후 의식이 돌아왔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구경하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 사장이 집에서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가져오더니 혜련과 혜정에게 벌컥 벌컥 마시게 했다. 하지만 고 씨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 모녀는 구급차에 실린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12.


강물은 깊고 차가웠다. 강은 물속에서 한없이 허우적거렸다. 누군가 강의 양 어깨를 힘차게 움켜잡았다. 가슴을 압박했다. 강은 몸속에 가득 담고 있던 물을 밖으로 뿜었다. 오한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강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잠시 후 강 너머로 빛이 보이더니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강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가 어릴 적 부모님과 자주 다니던 시골 병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은 여전히 차가운 강물 속에 있는 것처럼 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 머리는 으깨질 듯이 아팠다.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헛구역질도 했다. 강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자 체격이 건장한 사내 두 명이 강에게 다가왔다.


타닥타닥. 젊은 형사 한 명이 컴퓨터 앞에서 조서를 작성중이다. 그는 며칠은 집에 못 들어간 듯 한쪽 머리가 떡이 졌고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타닥타닥. 사방에서 타자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강은 지난밤, 아니 며칠 전 자신이 두 딸과 아내에게 벌인 끔찍한 일들을 떠올렸다.


“형사님 아내는... 제 딸은.”

“이름이 뭐예요, 나이는?”


형사는 시선을 모니터에 둔 채 그가 평소 용의자에게 했을 법한 질문을 했다.


“이름, 나이, 직업?”

“형사님, 딸이랑 집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이름부터 말해요.”

“딸이랑 집사람은 어떻게?”


형사는 치던 타자를 멈추고 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 딸은 사망했고, 당신 부인은 의식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강은 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우지끈 깨물었다.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흐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날 자신도 죽었어야 했는데. 강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그는 조사를 받고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두 딸의 장례식장에선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 강의 처남이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는 강을 보더니 맨발로 달려와서 멱살을 잡았다. 그러더니 강을 파란 쓰레기통이 있는 쪽으로 거칠게 패대기를 쳤다. 강은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쓰레기통 쪽으로 쓰러졌다.


“야 이 새꺄,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 와. 내 동생 살려 내. 니가 인간이냐. 뒈지려면 혼자서 뒈질 것이지. 죄 없는 조카랑 동생을 왜 죽여.”


조문객들이 소란스러운 장례식장 입구를 바라보며 웅성거린다. 형사와 입구에 서 있던 다른 사내가 흥분한 강의 처남을 겨우 떼어놓았다. 강은 한동안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복도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강은 겨우 소연이와 소율이의 영정사진이라도 볼 수 있었다. 두 딸은 사진 속에서 밝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착하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강은 장례식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다시 조사를 받기 위해서 경찰서로 가야했다. 강은 아내를 잠깐이라도 보고 싶었다. 형사는 전화를 한 통 짧게 하더니 차를 그의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형사는 십 분 안에 나오라고 했다. 강의 아내는 응급실 가장 안쪽 창가에 인공호흡기를 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응급실 맞은편 침대엔 고 씨가 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 옆엔 환자복을 입은 혜정과 혜련이 앉아 있다. 고 씨는 새벽에 의식이 돌아왔다. 출입문 위쪽에 낡은 텔레비전이 있다. 오래된 텔레비전은 전원이 꺼져있다. 보호자 중 한 명이 동전을 두 개 넣더니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뉴스가 나온다. 아나운서는 달동네에 살던 세 모녀의 안타까운 자살시도와 강남에 살던 40대 실직 가장의 끔찍한 가족 동반 자살 시도 소식을 전한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남자는 실직은 했지만 소유한 재산이 6억 이라고 했다. 이어서 우리나라가 환율의 강세로 OECD 국가 중 열아홉 번째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삼만 달러를 넘었다고 전한다.


“교수님. 어떻습니까? 예전엔 우리나라도 아이엠에프를 겪었고 그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 국민들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죠. 더욱이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회원국이 된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는 국민소득이 삼만 달러가 넘었는데. 그럼 우리나라도 이제 유럽이나 북미처럼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선진국의 기준을 한가지로 정할 순 없습니다.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 문화, 복지, 경제력 등 다양한 면을 살펴봐야겠죠. 하지만 경제력만 놓고 보자면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을 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신흥공업국이나 중진국이 아니라 명실상부 선진국입니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 둘이 응급실로 들어온다. 차례로 회진을 돌던 의사는 고 씨에게 향한다. 의사는 고 씨를 쳐다보더니 간호사가 건넨 차트를 신중히 살펴본다. 환자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며 옆에 서있던 간호사에게 오후에 입원실로 옮기라고 말한다. 복도가 조금 시끄러워지더니 응급실 문이 열린다. 주인아주머니와 정육점 사장이 문 앞에 서있다. 오사장은 뒤에서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다. 형사는 강에게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재촉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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