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제 14회 전태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작에 선정되었습니다.
전태일 문학상 14회 수상 작품집 '비명 마이크로칩 공장'에 수록되었습니다.
1.
간밤에 굉장한 악몽에 시달렸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기도 했고 수십 미터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꿈에서 깨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항상 그랬으므로 곧 잊어 버렸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이 맺혀 있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복도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분주한 간호사들의 발걸음 소리다. 한쪽 눈을 뜨고서 깜빡 거려본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여덟시가 조금 넘었다. 천장의 낡은 형광등은 희미하고 창백했다. 머리맡에는 닝겔병이 걸려있고 가느다란 관이 가냘픈 팔목으로 이어져 있다. 한 여자가 엎드린 채 잠을 자고 있다. 연주였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들린다.
“마취과의 한영철 과장님은 302호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연주가 깨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두 눈은 부어있다. 아직 잠이 덜 깬 그녀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침대 옆 서랍에서 수건을 꺼내더니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웬 땀을 이렇게 흘려요?”
“악몽을 꾸었어. 그런데... .”
하지만 그녀는 내가 말을 다하기도 전에 칫솔과 비누를 챙기더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녀는 요즘 도통 내 말을 들으려 하질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다. 어째서일까? 모르겠다. 이 병실엔 두 명의 환자가 더 있다. 후두암 말기의 할머니와 담석제거 수술을 받은 남자. 남자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지 아까부터 잔뜩 얼굴을 구기고 있다. 할머니의 목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속으로 가느다란 관이 삽입되어 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자고나면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몸은 마른 장작처럼 앙상해져만 갔다. 그녀는 병마보다도 굶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마른 장작처럼 몸속의 모든 영양분이 소진되면 그녀는 마침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섬뜩했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 문간의 침대 하나는 며칠 째 비어있다. 일 년 동안 의식이 없던 남자가 산소 호흡기를 뗀 후 숨을 거둔 자리였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후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 올 것이다. 그 환자도 의식이 없을까? 연주가 세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침식사가 나왔다. 공기 밥 한 공기와 싱거운 무국에 싱거운 반찬들, 병원 음식은 먹을 것이 못 된다고 환자들은 늘 불만이었다. 연주가 익숙한 몸짓으로 침대를 들어 올린다.
“아침 들어요.”
그녀는 침대에 딸린 조그만 식탁에 식판을 올려놓으면서 말한다.
“입맛 없어. 당신이나 먹어.”
소용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막무가내다.
“어서 들어요. 무국이 아주 시원해요.”
“괜찮대도.”
“조금만 먹어봐요.”
“싫다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제발 좀 먹어요.”
오늘은 그녀도 참을 수 없었던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색시, 매번 지겹지도 않소? 댁이나 들고 출근하소.”
할머니가 딱하다는 듯이 한마디 건넨다. 기괴한 음성이 더욱 이상하게 갈라진다.
“그래요, 그냥 놔두세요.”
남자도 한마디 거든다. 연주는 팔짱을 낀 채 한동안 창밖만 바라본다. 뒤돌아 서있는 그녀의 가냘픈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다. 유리창에 비치는 그녀의 두 눈은 어느새 붉어져 있다. 그녀의 눈물 셈엔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는 걸까? 병실을 나가기 전에 연주가 깜빡 잊었다는 듯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오후에 어머니 오실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김빠진 맥주처럼 힘이 없다. 말을 마친 연주는 시내의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가 그 식당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2.
2001년 7월 K건설은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발표해 버렸다. 노조 지도부나 조합원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는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루아침에 800여명의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게다가 임금은 3년 동안 동결된 상태였고 월급은 몇 달씩 밀려있었다. 같은 기간 동안 회사의 매출은 두 배로 늘고 주가는 다섯 배가 되었는데 뜬금없이 구조조정이라니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체불 임금에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근로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기태와 나는 ‘구조조정 결사반대’를 외치며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두 달간의 힘겨운 투쟁 끝에 사측대표인 임대식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구조조정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 협상은 파기 되었다. 임대식은 애초부터 협상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기태와 나는 점점 투쟁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그렇지만 임대식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파업으로 인한 작업 손실을 이유로 노조 지도부에게 거액의 손해 배상 소송을 걸어왔다.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악명 높던 독일의 게슈타포를 연상 시킬 정도로 고압적이고 기고만장했다.
“요구사항은 세 가지요.”
“첫째, 손해 배상 소송으로 인한 가압류 해제.”
“둘째, 해고자 복직.”
“셋째, 3년간 동결된 임금 10퍼센트 인상.”
“우선, 파업부터 철회해.”
“요구사항부터 들어주시오.”
“회사가 부도날 판이야.”
“이런 니미랄, 회사 사정이 그렇게 힘들다면서 사장 당신은 연봉을 수십억씩 챙기고 주주들한테는 배당금을 몇 배씩 나눠주고 지난번 선거 때는 후보자들에게 수십억씩 뿌렸소.”
임대식을 노려보던 기태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섭아 나가자, 시간낭비일 뿐이야.”
“하지만 기태야.”
“씨팔, 오늘부로 전면 파업이야.”
“그래, 니들 맘대로 해 봐.”
임대식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후 협상은 십여 차례 이루어졌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때서야 기태와 나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길이 최선임을 깨달았다.
상공에서 바라보는 지상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그리고 지금 저 아래에는 수개월째 조합원과 전경들이 대치중이었다. 전경들과의 대치는 이제 습관이 되어 버린 듯 무료함을 넘어 평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 속에 깃든 평온함이었다. 충돌은 항상 불시에 발생했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사장실 진입을 시도하던 조합원들이 전경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병원에 실려 간적도 있었다. 도살장의 개처럼 끌려가던 남편을 구하려고 부인들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며 전경들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지상에서는 지금 혜선이가 천막 속에서 우리들의 요구사항을 외치고 있었다. 붉은 두건을 둘러맨 수백 명의 노조원들이 박수를 치며 비장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그들의 절규는 바람을 타고 올라와 기태와 나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카메라 기자와 리포터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렝게티의 하이에나들. 그랬다. 그들은 마치 초원의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자신들의 특종을 채워줄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들소 떼가 몰려가듯 우르르 달려갔다.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하는 사진은 언제나 자극적이었다. 하늘을 봤다. 지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약한 바람이 일었다. 구름 하나가 흘러왔다. 하늘은 이내 먹색 구름으로 가득했다. 빗방울이 쏟아질 태세였다. 구구구. 구구구. 어디선가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크레인 주위를 맴돌았다. 한 마리가 크레인의 깃발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더욱 세게 불었다. 깃발이 좌우로 나풀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것은 착시 현상이었을까? 새는 비둘기가 아니라 독수리였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상공을 나는 독수리였다. 10km 밖에서도 개미를 볼 수 있다는 독수리는 일단 먹이를 포착하면 쉽게 공격하지 않는다. 유유히 상공을 날며 먹이가 완전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포식자로서의 여유일까? 깃발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는 독수리는 우리를 초원의 먹잇감으로 여기는 것만 같았다. 난간에 기댄 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기태가 제법 큰 몸동작으로 기지개를 폈다. 먹잇감을 놓친 새는 그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태의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다. 머리는 부슬부슬했고 작업복은 지하철 역사의 노숙자들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를 보면 로빈슨 크루소가 떠올랐다. 창공의 로빈슨 크루소. 크레인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 기태가 그와 다른 점이라면 스스로 갇혔다는 것이다. 그의 왼쪽 가슴 상단엔 K건설의 마크가 붙어있다. 마크 아래의 264는 수인번호를 연상시켰다. 그도 나를 보며 누군가를 연상할까? 숀 코너리나 브래드 피트 정도면 어떨까? 아니면 붉은 베레모와 전투화를 신은 체 게바라도 괜찮았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을 했다.
“오늘이 몇일 째지?”
“글쎄.”
“개새끼들,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보자는 것 같은데... .”
“돌파구가 필요해.”
그는 초조한 표정이었다. 크레인 농성을 시작한지도 벌써 삼 개월, 사측도 우리도 지지부진한 협상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날씨 또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늘을 덮은 먹장구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전기에서 삐이익~ 소리가 났다. 혜선이었다.
“종찬이가 투신했어요.”
지지직거리는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야.”
기태와 내가 동시에 소리쳤다. 숨이 막혔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있어요. 어떻게 좀 해봐요.”
“알았어, 일단 바리케이트 치고 막아.”
기태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가 내려가라고 했다. 한명은 이곳을 지켜야 했고 그것은 기태의 몫이었다. 종찬이가 투신한 곳은 기자와 경찰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경찰들의 구둣발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조합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굶주린 하이에나들 사이를 비집고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신을 덮은 하얀 천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핏물이 묻어나는 천을 천천히 들쳤다. 왼쪽 두개골이 바스러진 영찬이의 머리가 드러났다. 뇌수와 핏물이 뒤섞인 채 시멘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빗방울이 붉은 피를 묽게 희석시켰다. 혜선이는 옆에 서 있었다.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두덩이 퉁퉁 부어 있다. 공포와 두려움에 절어있던 눈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다시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머리부터 떨어졌는지, 즉사 했어요.”
종팔이었다. 그도 울고 있었다. 종찬이의 형이었다.
“유서예요.”
급히 휘갈겨 쓴 듯 유서는 길지 않았다.
“형, 먼저 가. 기태 아저씨는 아직도 크레인위에 있겠지? 뭐 할 때마다 굼뜨다고 핀잔주었는데 이번엔 내가 빨랐네. 그렇지? 나 죽으면 손해 배상 소송 때문에 진 빛이랑 전세방 가압류 걸린 거랑 어머니한테 갚으라고 하지 않겠지? 엄마 보고 싶다. 유진이한테 좋아한다는 고백도 못했는데.... .”
유서는 거기서 끝났다.
“지금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해야합니다.”
경찰 특수 기동 대장이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투 경찰들이 방패를 앞세우며 바리케이트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들아.”
흥분한 종팔이가 뛰쳐나오며 경찰들에게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제풀에 지친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경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종찬이를 이대로 저들에게 내 줄 수는 없었다. 그의 영혼이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쓸쓸히 나뒹그라져 있었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 수는 없었다.
“혜선아, 식당에 냉동 탑 차 한 대 있지?”
“네?”
“가서 몰고 와.”
혜선이는 잠시 의아해 하더니 식당 쪽으로 뛰어갔다. 전경들의 포위망은 더 좁혀져 바리케이트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뭣들해요. 더 꽉꽉 붙잡아요.”
종팔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지난번의 악몽이 떠올랐다. 상황이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송과 언론에서는 피 흘리는 전경과 그를 짓밟고 있는 흥분한 노조원들의 모습만 내보낼 것이다.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진 우리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찬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혜선이가 차를 몰고 왔다.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시신을 차에 실었다.
“지하로 내려가.”
“알았어요.”
혜선이와 종팔이가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바리케이트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조원들을 더욱 독려했다. 화물 엘리베이터가 굉음을 내며 지하로 내려가자 전경들도 더 이상은 밀어붙이지 않았다. 다음날 각 신문사에서는 종찬이의 죽음을 일면으로 보도 했다. 방송사에서도 주요 뉴스 시간에 현장에 연결된 기자들을 통해서 주요기사로 다루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기자의 사명답게 현장에서 종찬이의 죽음을 전하는 기자의 표정은 야비할 정도로 침착했다. 어느 누구도 기사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씩 종찬이가 찾던 경륜장은 그를 거액의 빛을 진 도박꾼으로 만들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애인의 변심으로 인한 우발적 자살, 그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각인 된 채 잊혀져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완전히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기태의 바람대로 그것은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던 것이다. 연일 언론과 방송에서 종찬이 관련 소식을 다루자 냉담하던 여론은 동정적으로 변했고 이를 의식한 임대식이 먼저 협상을 제의해왔던 것이다.
3.
“할머니, 아빠 자나 봐요?”
“그래, 아빠가 많이 피곤한가 보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꼭 죽은 사람 같아요.”
“그런 말 하면 못써요.”
잠결에 들리는 음성은 어머니와 여울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까무룩 잠이든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울이는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눈을 떠서 아빠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눈이 떠지질 않는다. 분명히 잠에서 깨어나 의식은 또렷했는데 지난밤처럼 악몽에 시달리며 가위에라도 눌린 듯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오랜만에 오셨소?”
할머니가 무척 반가운 듯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두 분은 연세가 비슷하셔서 어머니가 면회 오실 때면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하셨다.
“네, 자주 와봐야 하는데 시장에서 하는 일이 통 짬이 나질 않아서요. 어째 좀 괜찮아 지셨나요?”
“아, 질긴 목숨 살만큼 살았는디 뭘 월매나 더 바라겄소, 다만 목숨 끊어지기 전까정 육신이나 좀 편했으면 좋건만, 요 배라먹을 암세포들이 틈만 나면 바늘이 콕콕 찌르듯이 목구녁을 쑤셔대니 지랄이지라.”
“저런, 쯔쯔..... .”
오늘도 어머니는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할머니의 넋두리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시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방금 전까지 총총거리며 곁에 있던 여울이가 보이질 않는다. 문이 열려 있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상냥한 정간호사에게 달려간 모양이다. 간호사 언니가 귀찮아한다고 어머니가 매번 주의를 주어도 여울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침에 있었던 연주와의 일을 알게 된 어머니는 더욱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불쌍한 녀석, 왜 그랬어? 애미가 너 때문에 고생하는 걸 알면 이제라도 몸 추스리고 일어나야지? 식사도 제때 하고....”
“죄송해요. 어머니.”
“따르릉.”
연주였다.
“응, 그래 좀 전에 왔다. 여울이도 같이 왔어. 몇 시쯤 올거니? 하섭이? 아까부터 자고 있어. 그래 올 때까지 내가 살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여울이는 어디가고 안 보이는 거야.”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여울이를 찾으러 나가신다. 벽에 걸린 시계의 작은 바늘은 어느새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분침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창문 너머의 높고 낮은 건물들이 지상으로 어둡고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매일 찾아오는 밤이지만 매번 새로운 밤이기도 했다. 병원에 온 이후로 밤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차갑고 낯설었다. 오늘은 그것들이 유달리 더했다.
4.
종찬이는 여전히 차가운 냉동 탑차 속에 있었다. 마주 앉은 협상 테이블엔 임대식과 박진용이 사측 대표로 나와 있었다. 우리 측에선 나와 혜선이 그리고 다른 간부 한 명이 참석했다. 종팔이는 보이지 않았다. 종찬이가 크레인에서 몸을 던진 후로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툭하면 전경과 주먹다짐을 하다 유치장에 끌려가는가 하면 대로변에서 훌러덩 옷을 벗고 고함을 질러대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어떤 날은 각목을 들고 종찬이를 죽게 한 살인자를 찾는다며 현장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다. 서로를 마주보고 앉은 공간은 적요했다. 기나긴 침묵과 긴장된 시선들 사이에서 규칙적으로 똑딱이는 시침소리 만이 적요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초가 하루 같고 일분이 몇 달 같았다. 이곳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미동도 하지 않던 임대식이 커피 잔을 들어 빙빙 돌려댔다. 그는 키에 비해서 다소 뚱뚱한 편이었다. 툭 불거져 나온 뱃살 때문에 꽉 조여진 벨트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짐짓 여유로운 척 했지만 그도 역시 초조한 표정이었다. 한동안 기자들에게 시달렸던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던 통통한 얼굴도 초췌했다. 박부장은 계속 임대식의 눈치만 보고 있다.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 임대식의 더러운 책략은 모두 저자의 머리에서 나왔다. 오십억이 넘는 회사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정치자금 때문에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그 부족분을 구조조정으로 충당하자고 한 것이 바로 저자였다. 손해 배상 소송건도 저자의 술수였다.
“파업부터 철회 해.”
“구조조정부터 철회 하시오.”
“안 돼.”
“손해 배상건만 아니었으면 종찬이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요.”
박부장을 노려보며 한껏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깟 젊은 놈 하나 죽은 게 무슨 대수라고.”
“뭐 이 새꺄, 너 말 다했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친구의 일은 정말 안됐어.”
임대식이 눈짓으로 박 부장을 나무랐다.
“그렇지만 손해 배상 철회하면 당신들과 협상 할 카드가 없어져 버리는데 내가 바보인줄 알아. 게다가 그 건은 이미 내 손을 떠났어. 지금 법원에 계류 중이니까 조만간 판결이 나겠지. 크레인 농성부터 철회 해. 그러면 최대한 선처 하도록 힘써 볼 테니까.”
구걸하던 거지에게 선심이라도 쓰듯 비아냥거렸다.
“구조조정은 절대로 포기 못해. 지금 회사 내 자금 압박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
“그러슈?”
“그래.”
“혜선아, 그 서류 가져왔지?”
나는 혜선이가 내민 서류를 임대식 앞으로 던졌다.
“지난 3년간의 경영 실적이오. 건설 수요 증가로 매년 평균 30퍼센트씩 꾸준히 성장해 왔는데 당신 말을 믿으라는 말이오?”
쥐새끼 같은 박 부장이 미리 수를 써놓는 바람에 겨우 구한 자료였다. 두 사람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잠시 서류를 들춰보던 임대식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서류를 내 쪽으로 던졌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엉터리 자료... .”
그 순간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우당탕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사내 한 명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내의 오른손에 굵은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종팔이였다.
“박 부장, 너 이 새끼 죽여 버리고 말테야.”
사무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협상이고 뭐고 우선은 종팔이부터 말려야 했다. 사색이 된 박 부장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종팔이의 쇠파이프가 박부장의 왼쪽 어깨를 강타했다.
“악.”
박부장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종팔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종팔이는 박부장의 복부를 세차게 내질렀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종팔이가 다시 박부장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경비원과 함께 그를 반대쪽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 사이 박부장은 임대식의 부축을 받으며 협상 장소를 빠져나갔다.
“야, 너 미쳤어?”
“그래요. 미쳤어요.”
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박부장이 달아난 방향을 노려보며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형은 알고 있었죠?”
“뭘?”
“그 자식 농간이라는 거?”
“......”
“그렇죠?”
“그렇다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
“씨팔, 그래서 어쩌라고?”
“이 자식이 점점... .”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됐다. 그만하자.”
녀석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났다.
5.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날 종팔이의 난동으로 겨우 진행되던 협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박부장은 기자 회견을 자청하며 우리를 폭력 집단으로 몰아 세웠다. 그의 옆에 선 임대식도 왼손에 붕대를 감은 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였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가 폭력적이라고 말들이 많은데 저들은 이번 일을 제대로 이용해 먹을 생각인 것 같았다. 계획적인 음모라고 호소했지만 신문과 방송에선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종팔이는 일을 벌인 직후 달아났다가 다음날 집 근처에서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종찬이 잡혀 들어갔다.”
“그래?”
“일이 어렵게 되어 버렸어.”
“어떻게 했을까? 너라면.... .”
“뭐가?”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내가 죽고 너만 살았다면.”
“글쎄?”
“하늘은 오늘처럼 파랄까?”
“왜? 먹물이라도 뿌려줘?”
“비도 가끔씩 쏟아지겠지?
“두들겨 패버리지 뭐.”
“자식 싱겁기는.... .”
동문서답이었다. 어이가 없었던지 기태가 킬킬거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나도 모처럼 큰소리로 웃었다. 우리는 한동안 배를 움켜잡고 실성한 사람처럼 그렇게 웃어댔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기태에게도 저렇게 감상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이 생경스럽기도 했다. 장기간의 크레인 농성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걸까?
“자꾸 두려워져.”
“또 뭐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듯 그의 말은 여전히 모호했다. 꿈을 꾸면 또 다른 안개 속에서 헤맸다. 그 속엔 언제나 종찬이가 서 있었다. 달려가면 사라져 버리고 포기하면 다시 나타났다. 꿈에서 깨면 일이 터졌다. 경찰들이 종찬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간신히 막아냈다. 노조원 몇 명이 천막을 치고 교대로 지켰다. 상급 단체의 간부가 찾아 왔다. 크레인 농성을 중단 하라고 했다. 상급 단체의 압력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의 뒤에서 한 남자가 음흉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도 봉투를 내밀었다.
“으아아, 목욕 좀 했으면 좋겠다.”
오줌이 가득 찬 석유통을 들어 아래로 뿌리던 기태가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후두둑 쏟아지는 빗줄기와 섞인 오줌은 단 몇 초 만에 지상에 도달했다.
“몇 달째 굶었더니 쏠려 죽겠다.”
“자식, 그래도 사내라고.”
“넌 가끔씩 땅바닥 밟잖아 임마!”
“조만간 결판이 나겠지.”
“수염도 좀 깎았으면 좋겠고. 속옷도 한 달 넘게 갈아입질 않아서 온 몸에서 쉰내가 풀풀 난다. 딸내미도 보고 싶고,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회사 길 건너 할머니네 포장마차 가본지도 오래 되었네. 그 할머니네 꼼장어 정말 맛있지 않았냐?”
“죽여줬지.”
밑에서 카메라 한 대가 이쪽을 비추자 맥없이 넋두리만 늘어놓던 기태가 크레인 난간을 붙잡더니 한손을 치켜 올리며 카메라를 향하며 소리쳤다.
“해고자 전원 원직 복귀 하라.”
“손해 배상 청구 취소하라.”
“임대식은 즉시 협상 테이블에 나와라.”
몇 초 사이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6.
기태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가랑비가 내리던 이른 아침이었다. 크레인에 올라 온지 꼭 100일만이었다. 그는 밧줄을 크레인 제일 높은 난간에 묶고서 목을 매단 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가벼웠다. 솜뭉치만 들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무겁기도 했다. 잔뜩 물을 머금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두 손을 비틀어 짜낼 수만 있다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그가 품었을 고통과 회환을 단 한 방울까지도 짜내어 주고 싶었다. 싸늘해진 그를 크레인 바닥에 뉘었다. 찬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편안했다. 캄캄한 새벽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외로이 숨져갔을 기태의 모습은 편안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덥고 자던 얇은 이불로 시신을 덮은 다음 무전기로 천막에서 자고 있는 혜선이를 깨워 기태의 죽음을 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벌써 천막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작업복에서 축축해진 편지 한통이 나왔다.
-유서-
새벽 두시가 조금 넘었다. 지상 45m의 타워 크레인에서 부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이 차갑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제부로 만 18년, 한 달 기본급은 백여 만 원, 세금을 공제하고 나면 팔십 몇 만원, 해가 갈수록 생활이 나아져야 하는데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하다. 자본가와 언론들은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다. 우리가 언제 나라를 망치려고 했던 적이 있던가? 우리는 다만 일터에서 누려야 하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위해서, 그리고 그 작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외쳤을 뿐이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 위해 수도 없이 공권력을 투입하고 우리의 유일한 수단인 파업을 불법으로 단정한 채 막대한 손해 배상 청구로 매순간 우리를 옥죄어왔다.
노동자가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K건설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나라가 이만큼이나 잘살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인가?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변하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인가? 뒤틀린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정직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고, 법이 외면한 약자들의 절규 속에서 수많은 열사들이 시멘트 바닥에 투신하고 분신했다. 약해지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모순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세상을 벗어버린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기에 이 사회가 변한 것이다. 나 또한 앞서간 열사들의 고뇌와 고통을 절감하고 있다.
준희, 준영아!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지난날의 고생도 모자라서 더 큰 짐을 남기고 가는 걸 용서해 주구려. 하지만 당신은 강한 사람이잖아. 잘 살아 주리라 믿어. 하섭아, 나의 주검은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옮기지 마라. 내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내가 있을 곳은 5호 크레인이다. 나는 죽어서도 이곳에서 싸울 것이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고 그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고 그래서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 없게 될 수만 있다면, 이 외로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K건설 노조 위원장 도기태-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빗물에 번져 글자가 희미해져 있었다. 더 이상 유서를 읽어 내려 갈 수가 없었다. 기태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알 것 같았다. 두려웠다. 미안했다. 연주와 여울이의 얼굴이 스쳐갔다. 용기도 배짱도 없었다. 얇은 담요에 쌓인 주검 위로 가랑비가 스적스적 내렸다. 내린 다기 보다는 흩뿌려지고 있었다. 차라리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이 찝찝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늘은 여전히 가랑비만 뿌려 대고 있었다. 이제 기태의 자리는 나의 몫이 되었다. 지상과 지하에 두 영혼이 잠들어 있다.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있어야 할 자리였다. 하지만 그들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될 자들은 멀찌감치 팔짱을 끼고 선 채 우리에게 또 다른 죽음을 강요하고 있었다.
7.
스르르 문이 열리더니 환자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들것에 실려 들어온다. 비어있던 침대의 새로운 주인이다. 그의 옆에는 부인인 듯한 여자가 함께 서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강파르게 마른 체구는 작달막했다. 왼쪽 무릎에는 한동안 그의 혈관을 관류했을 붉은 피가 딱딱하게 굳어진 채 상처를 감싸고 있다. 얼굴은 넙죽하고 곰보자국이 깊게 패여 있다. 그중에서도 검게 그을린 피부와 뭉툭한 코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가 입고 있는 흰색 환자복은 그의 까만 피부를 더욱 드러내 보였다. 하얀 벽, 하얀 병동, 간호사와 의사의 하얀 가운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어디가 아파서 입원한 것일까? 아니 어디를 다쳐서 입원한 것일까? 아픈 것은 다친 것과 무슨 차이일까? 의식이 없는 상태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므로 고통도 없을까? 남자는 의식이 없으므로 아픈 것은 아니었다. 존재하면서도 존재 하지 않는 무엇이 지금 저 남자의 실체고 본질이었다. 그리고 저 여인에게는 그것들이 고통스러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남자 옆에 서있던 여자가 반쯤 울먹이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표정은 슬프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골골이 팬 주름이 짜부러져 만들어 낸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슬픈 표정이다. 일주일이나 열흘쯤 후면 그녀의 표정은 낙담이나 절망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다음에도 그녀를 계속 보아야 한다면, 아마도 두 달이나 석 달쯤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할 것이다. 처음엔 연주도 저 여인처럼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8.
사태는 다시 긴박해졌다. 기태의 유서가 일제히 신문과 방송에 보도 되자 상황은 역전이 되는 듯 했다. 그동안 파업에 참여하지 않던 조합원들이 기태의 죽음으로 파업에 가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측과는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임대식이 정상적인 조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파업 참여자수가 가장 많은 사업장 한 곳을 직장폐쇄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일 났어요.”
무전기에서 혜선이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왜 그래?”
“체포영장이 발부 됐어요.”
“언제?”
“어젯밤예요. 오빠랑 나 그리고 다른 간부 세 명이예요. 그나마 파업에 참여하지 않던 조합원들이 가세해서 힘겹게 막아내고 있긴 한데 조만간 전경들이 이곳까지 뚫고 들어 올 거예요.”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이젠 누구와 의논해야 한단 말인가? 말없이 누워 있는 기태가 원망스러웠다.
“임마, 먼저 가 버리고 나니까. 속 편하냐? 죽어서도 싸우겠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지켜보고만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
한참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무전기는 켜져 있었다.
“인터뷰 좀 해야겠어.”
“기자 한 명만 올려 보내.”
“어떻게 하려고요.”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요.”
다음날 오후 두 시쯤, 기자와 카메라맨이 힘겹게 크레인 마스트 안에 설치된 사다리를 잡고서 올라왔다. 투쟁 109일째 되는 날이었다. 기자와 카메라맨은 사다리를 다 올라오더니 거푸 숨을 들이쉬며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한참동안 숨을 고르던 기자가 아래를 내려 보더니 어지러운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기자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섰다. 한쪽에 놓여진 기태의 시신을 본 것이었다. 카메라맨도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 기자답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시신을 향하여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 좁은 곳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죠?”
주변을 둘러보던 기자가 몹시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기태와 내가 투쟁하던 타워크레인 캐빈(조종실)은 사람 한명이 눕기에도 모자랄 만큼 비좁았다. 캐빈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기자가 몇 가지 질문하는 사이 건장한 체격의 카메라 기자도 주변을 살피며 사진을 촬영할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이따금씩 살을 에는 칼바람이 조종실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불어와 잔뜩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기자도 추운지 자꾸 안쪽으로 옷깃을 여몄다.
“날씨가 춥군요?”
인터뷰가 시작 되자 기자는 날씨부터 물어온다.
“밤에는 더 추워요.”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한 달 사이 동료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이 보고 싶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앞서간 동지들의 의지를 알리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맘이 편합니다.
“언제까지 계속 하실 겁니까?”
“저 친구가 여기 있는 한 저도 살아서는 이곳을 내려가지 않을 겁니다. 저 친구가 이 싸움이 끝날 때 까지 이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저도 이곳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거부하던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이유가, 그것도 이 크레인에서 하시겠다는 이유가 뭔가요?”
“그건......”
나는 기자의 물음에 답을 하기에 앞서 한동안 그녀의 눈망울을 응시했다. 사슴 같은 그녀의 눈망울은 수정처럼 맑고 투명했다. 들풀 같은 이곳 노동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맑고 투명했으므로 역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투명한 눈 속에서 알 수 없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동정심이었을까? 이유가 뭐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기자적 양심과 투철한 고발정신이었다. 그녀가 준비한 질문과 그간의 투쟁과정이 이어졌다. 바람이 점점 세지고 진눈개비가 날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질문하고 카메라맨은 사진을 찍어댔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본분에 너무도 충실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다가는 종종 탄성을 질러댔고 때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기태의 죽음을 언급할 때는 그녀의 눈물이 촉촉이 젖어서 한동안 인터뷰를 중단해야 했다. 해가 저물고 지상에 땅거미가 깔릴 무렵에야 인터뷰가 끝이 났다. 사위는 어두웠고 진눈개비는 굵은 눈발이 되어 크레인 난간에 겹겹이 쌓였다.
“그만 내려가겠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잠시잠깐 기자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카메라맨은 먼저 마스트 아래쪽으로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시선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던 행동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짧은 악수를 건넨 기자는 카메라맨을 따라 조심스럽게 마스트 아래로 발을 걸쳤다.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발을 디디며 서서히 사다리를 내려갔다. 그들이 거의 지상에 도달 할 때쯤, 크레인 난간을 딛고 있던 나는 있는 힘껏 발을 디디며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아주잠깐 하늘 위로 솟아오르던 나의 육체는 순식간에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유서는 쓰지 않았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나의 유서였다. 그렇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질문 했을 때 아내와 아이들에게 몇 마디라도 할 걸 그랬다.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아니 추락하고 있는 육체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몇 초 후면 산산이 부서져 버릴 육체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뛰어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던 심장소리는 육체가 부서지기 전에 먼저 멈춰 버린 듯 더 이상 귓전에 울리지 않았다. 극도의 황홀함과 쾌감이 뒤죽박죽이 된 채 저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 한꺼번에 솟아오르더니 다시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다. 구구구. 구구구.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비둘기 한마리가 깃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태는 왜 뛰어내리지 않고 목을 맸을까? 우습게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퍽.”
-8일자 OO 신문-
노사는 합의안이 가결됨에 따라 이날 오후 사측 대표인 임대호 회장과 노조측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노사 합의안 조인식을 가졌다. K건설 노조는 이혜선 위원장 대리의 주도로 15일 노조원 투표를 거쳐 노사 잠정 합의안을 가결시킴으로써 지난 3개월 전 K건설의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촉발된 파업이 완전 해결되었다. 노조는 5일 오전 노조원 932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반투표를 실시해 83.5%의 찬성으로 노사 합의안을 가결시켰다. 하지만 결과에 만족하기에는 그에 따른 희생이 너무 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K건설에서만 도기태, 양종찬 등 두 명의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몇 달 사이 자사의 근로자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임대호 회장은 조인식 내내 저자세를 유지했다. 임회장은 조인식을 끝낸 후에도 유족들에게 수차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동안 노조와의 협상을 주도했던 임대식 부사장과 박진용 부장은 해외 자금 밀반출, 폭력배 동원,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구속된 채 재판을 앞두고 있다. 새로 구성될 노조 집행부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열사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신청 기자(chs@oo.co.kr)
연주가 식당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각은 저녁을 먹기 전이다.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이다. 어머니와 여울이도 함께였다. 비록 병원이었지만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연유를 모른 채 불안하던 시간들을 잊게 만든다. 다시 복도가 소란스러워 진다. 오늘따라 나를 바라보는 연주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이따금씩 무덤덤한 표정 속에 감춰진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일뿐이다.
“여보, 다리 주물러 드려요.”
“괜찮아.”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바라보며 예의 그 얇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도 늘 그렇듯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내가 이 병실에 입원한 이후로 한 번도 크게 소리를 내어 웃거나 목 놓아 울어 본 적이 없다. 가끔씩 보이는 그녀의 엷은 미소도 웃는 건지 슬픈 건지 모호 할 때가 많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 다리를 주무르겠다고 그녀의 희고 가냘픈 팔을 걷는다. 나는 다시 괜찮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다리를 주무른다. 나는 또 괜찮다고 대답한다. 사실은 조금 불편했다. 아니 그것도 맞지 않았다. 이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연주가 다리를 주무르는지 팔을 주무르는지 알 수가 없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그녀는 나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지만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열심히 나의 왼쪽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지금 이렇게 생생히 살아 있고 언젠가는 다시 사랑스런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사이 의사 선생님이 간호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를 보자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던 연주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진다. 산소마스크를 떼자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와 연주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지난 2년 동안 참았던 오열을 터뜨린다.
<끝>
<소설 부문 심사평>
작가여, 문을 열고 들어가라
공선옥(소설가), 안재성(소설가)
올해 소설 부문에는 4편의 장편소설과 38편의 단편소설이 투고되었으며 그 중 장편소설 1편을 포함해 8편이 예심을 통과했다. 평론가 이명원 씨와 고명철 씨가 문학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예심을 통과시킨 이들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특이한 소재와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예년 어느 때보다도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좋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없어 대단히 아쉬움을 남간 해로 기록되게 되었다.
이복남 씨의 장편소설<진또배기>는 한 시골 아낙의 삶을 인습과 성의 측면에서 묘사한 작품으로, 구수한 전라도 토속 언어와 술술 쉽게 읽혀 나가는 이야기 전개 솜씨가 무난하였다. 그러나 다른 3편의 장편들과 마찬가지로 장편이 지녔으면 좋은 주제의식이 미약하고 전태일 문학상의 취지에 걸맞지 않아 제외되었다.
최종대 씨의 <병아리 소곡>은 한 시골 마을에 대형 돼지농장이 건설되면서 경비 같은 말단 직원으로 취직할 수 있게 된 사람들과 공사 소음으로 병아리를 잃게 된 주인공 사이의 사소한 이해 충돌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오랜만에 만난 농촌 이야기여서 반가웠다. 그러나 이웃 마을에 김 초시가 산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표현이나 병아리 몇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이 억지스러웠다.
양혜영 씨의<어부가>는 정부에서 어업을 포기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폐선 지원금을 받아 도시로 가고자 하는 부인과 갈등 속에서도 만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바다를 헤쳐 나가는 어부의 이야기가 사뭇 사실적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 생활의 기록으로서 더 의미가 깊어보였다. 다만, 상황 묘사 이외에 줄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가 없어 소설로서는 미흡했다.
김성진 씨의<실러캔스는 살아 있다>는 산재를 입고 입원한 노동 운동가의 모습을 담당 간호사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병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부분들이 좋았으나 간호사와 노동운동가의 옛 인연을 묘사한 부분과 갑작스런 자살로 끝나는 결말 부분의 설명이 다소 억지스러웠다.
노은희 씨의 <미스터리 샤퍼>는 고객으로 가장해 판매사원의 친절도를 암행 조사하는 미스터리 샤퍼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졌던 주인공이 서울역 앞에서 쪽방 생활을 하며 이웃들에게 좀도둑으로 몰리는 과정을 그린 소품이다. 아쉽게도 전태일 문학상의 위상에 맞지 않아 탈락하게 되었으나 다른 공모에 제출한다면 나름대로 무난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양희영 씨의<A동 209호>는 평범한 여성 노동자가 반장 직급을 얻은 후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작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쓸 수 없을 듯 구체적인 상황묘사들이 무척 재미있었다. 개인의 심리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 꽁트 성격의 소품으로서 수상작에 선정되지는 못했으나 추천작으로서 작품집에 싣기로 결정했다.
김인철 씨의 <깨어 있는 시간>은 몹시도 가슴 아픈 내용이었다.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세 사람의 자살을 부른 한진 건설 골리앗 점거 농성 사건을, 2년째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죽어간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묘사함으로서 깊은 감동을 주었다. 다만, 회사 측과의 교섭 장면이나 투쟁 현장의 묘사 등 주요 부분들이 사실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등 문학적 완결성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띄어 당선작이 아닌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장용돈 씨의 <비둘기들의 서식처>는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다가 회사 측의 손해 배상 소송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 한 후 철거민의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다시 싸움에 나서는 주인공을 묘사한 작품으로 출품작 중에 문장력이 가장 탄탄하여 당선작으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노동 현실을 너무 암울하게 보고 있는 점, 과거 동지들과의 재회를 비롯 어색한 부분들이 있다는 점 등의 결함으로 인해 우수작으로 한정 짓게 되어 아쉬웠다.
우리 본심 심사위원들은 소설 부문에서 당선작을 배출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워 문학상의 일반적인 관례를 깨고 예심 심사위원들과 심각하게 재논의를 하였고, 우수작으로 선정된 두 작가와도 장시간 통화를 해 보았으나 역시 당선작을 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시 부문 당선작이 없던 해는 있었으나 소설 부문 당선작이 없는 해는 처음이므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문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엄격한 심사 기준을 지킴으로써 보다 나은 작품의 질을 기대하려는 진심을 이해하고 양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예심과 본심 심사위원 모두의 치열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을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작품이 오늘의 노동 현실, 혹은 과거 노동 현실에 대해 피상적이고도 비관적인 관찰자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역사와 변화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주체적인 인간형, 혹은 주도적인 세력에 대한 정면 묘사보다는 피동적인 피해자로서 무능하고 무기력해진 인물들을 감상주의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 지난 몇 해 동안 응모한 작품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문학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은 역사 속의 숨겨진 역동성을 느끼기 보다는 변화의 주류에서 이탈한 개인의 나약한 감정이나 소외감을 표현하는 데 더 흥미를 느끼기 쉽다. 심하게 말하자면,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기 보다는,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쉬운 주변부에서 소재를 잡는데 더 민감한 게 작가 일반이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들의 조합주의적 한계, 비정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 두 차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민주와 세력의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를 맥 빠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은 여전히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리는 굳게 믿는다.
물론, 각개 인간의 삶은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측면을 골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작가의 자유다. 하지만, 전태일 문학상만큼은 현실을 보다 엄격하게 냉정하게 바라보며 보편적인 진리와 희망을 찾는 시선을 가진 힘 있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 약간 문학적 완결성이 떨어져도 좋고, 그가 노동자여도 좋고 학생이어도 좋지만, 적어도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읽고 믿는 사림이었으면 하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바람이었다.
결코 억지로 현실을 미워하고 희망을 선동하자는 것이 아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작가라면 더욱 용감하게 실제 현실에 뛰어 들어 역동하는 변혁의 힘을 발견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일 뿐이다. 제발 작가들이여, 문밖에서 서성이지 말고 과감히 문을 열고 들어가 역사와 정면으로 부딪혀 보자.
비록 당선작을 내지는 못했으나 올해의 예선 통과작 모두가 애정이 가는 값진 수확물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의미 있는 글들을 모두 모으고 손질하여 기념할 만한 작품집으로 출판하기를 희망한다.
<수상 소감>
글을 쓰는 내내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밤이 되면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소설 속에 내가 있었다. 매일 밤 실타래를 뽑아내듯 나의 영혼은 무수한 상상의 질료를 모니터 속으로 토해내었다. 그리고는 복잡한 퍼즐을 맞추듯 그 상상의 편린을 조금씩 맞추어 나갔다. 처음엔 소태를 씹은 것처럼 씁쓸하던 나의 글쓰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혈관을 관류하는 피가 되어 버렸다. 소설의 마침표를 찍던 날 미련 없이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선 뭘 했지? 호구지책을 면하기 위한 약간의 노동을 제외하곤 하릴없이 심사결과를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다. 수상 소식을 접하던 순간, 모골이 성연 했다.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두려움은 뭘까? 그것은 분명히 본상이 주는 어떠한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 그리고 수상 소식을 접함으로써 본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던 이 시대 노동 열사들이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뼛속 깊이까지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온 몸과 영혼을 던져 세상의 압제와 불의에 항거했던 그분들의 비감하고 치열했던 삶을 순진한 의식과 치기어린 상상만으로 표현 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그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썼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갚아 나갈 것이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문학적 자양분이 되어준 스토리문학관 식구들, 따뜻한 미소로 격려해 준 가족들과 어머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명예시민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 천막 속에서 불의를 부르짖던 서른한 살의 평범한 조합원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