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26일)부터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를 방송하고 있다. 나는 오징어게임 시즌 1을 보지 않았다. 예능이나 영화 드라마 등 미션을 수행하는 식의 서사는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내 영혼을 공명 시키거나 설레게 하는 서사는 영국 SF드라마 '닥터 후'처럼 상상력 플러스 예측불허다.
이번엔 마음먹고 오징어게임 시즌2 정주행을 시도해 보았다. 시즌2 1화는 나름 흥미로웠다. 이번엔 정주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공유의 딱지치기 내기는 살벌했고 시즌1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 이정재의 공포스러운 표정은 살아 있었다.
이정재는 시즌1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쓸 정도로 제2의 오징어게임[살인게임]을 막으려고 했다. 이정재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의 서사와 연기력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2화 중간까지 보다가 시청을 포기했다. 왜냐면,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밖의 현실이 이미 오징어게임이라는 사실을 더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징어게임 시즌1보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 극적이고 스펙터클하다.
대한민국은 한 달이 다 되도록 전 국민이 24시간 오징어게임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현실의 오징어게임에선 온갖 영화의 장르가 뒤섞여 있다. 첩보, 코미디, 오컬트, 액션. 미스터리, 스릴러, 누아르, 갱스터, 서스펜스 등 온갖 영화적 장치가 현실에서 24시간 전국에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
지금은 전 국민이 오징어게임의 주인공과 조연, 그리고 단역배우들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실전을 벌이고 있다. 현실의 오징어게임에서 배우와 관객이 따로 없다. 모두가 배우이고 주인공들이다. 이정재처럼 선두에 서서 악과 싸우는 선과 조력자가 있고, 공유처럼 악의 세력과 그들을 추종하는 졸개들이 있다. 이러니 시즌2가 아무리 연출이 좋고 스토리가 훌륭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명품이더라도 밋밋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드라마에 몰입하려 했지만 너무 밋밋해서 몰입이 되지 않았다. 폭탄이 터지고 팔이 잘리고 목이 잘리고 총탄이 온몸을 난사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디스플레이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총탄이나 폭탄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서 나를 다치게 하거나 죽일 일은 없다. 백만에 하나라도 현실의 오징어게임에서 선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