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시즌 2를 기대하며...
**오래전 글 서랍속에 넣어두었던 글입니다.
단 하나의 기쁨이었던 '시그널'이 끝났다. 열린 결말이다. 연출도 시나리오도 배우들의 연기도 무엇하나 흠잡을 게 없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의 개념만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시그널의 몰입도는 최고다. 십오 년 전 우연히 두 사람에게 시작된 과거와의 무전. 시간을 하나의 선형으로 살아야 하는, 살아 온 내 기준에선, 이런 설정은 개연성이 약할 수밖에 없는 판타지다.
그러나 명품 드라마 '시그널'은 그런 기준마저도 와르르 무너뜨렸다. 이유가 없는 우연은 없다. 한 사람의 간절했던 염원이 만들어낸 시그널. 그리고 무전이 시작되는 11시 23분. 이재한 같은 형사도 한두 명쯤은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미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거기도 그럽니까? 이십 년이 지났는데 뭔가 하나는 달라졌겠죠?"
과거의 이재한은 현재의 박해영에게 묻는다. 망설임 끝에 박해영은 변한 게 있을 거라고 말한다.
단...
"형사님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재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백골상태에서 다시 살았났다. 간절했던 염원들이 만들어낸 시그널. 박해영도 포기하지 않았다. 차수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염원은 누구보다 간절했으니까. 길 끝에서 멈춰야 하지만, 그러나 길의 끝에서 멈추지 않았던 그들. 하지만 기대했던 차수현과 이재한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차수현은. 서툴렀던, 아니 십오 년간 한결같이 품고 있었던 연인을 향한 기대를 안고 박해영과 함께 구불구불한 길의 끝에서 영원으로 향했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태양의 후예'는 화려한 영상미와 통통 튀는 대사가 재미는 있지만 볼수록 손이 오글거린다. 발끝에서 머리카락한올까지. 나의 모든 것들이 활활 타오르는 이십 대였다면 밤새 설레었을 장면과 대사들의 향연일진대...
"보고 싶었지 말입니다."
"그것은 비밀이지 말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도 초월해 버릴 것 같은 유시진의 포텐 터지는 '멋지심'과 불사의 '능력'은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니라 손에 닿지 못하는 공중 150미터 높이에 떠있다. 이재한의 까칠함, 그리고 츤데레는 차수현의 서늘한 눈 그림자와 그리움의 길 옆에 놓여있다.
이재한의 까칠함처럼...
나는 함부로 '친숙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친숙함, 친밀함, 상냥함, 매너. 이 듣기 좋은 수사들은 종종 상대방에게 강요와 희생을 요구한다. 시니컬함과 냉소. 엇나감, 그리고 의도된 무시. 날카로운 언사와 표정들은 불편하지만 때로 전자의 것보다 더 실용적이다. 그렇다고 냉소와 시니컬함을 항상 무기로 삼지는 않는다. 단지 나를 위한 방패로만 삼을 뿐이다.
무람없이 반길수 없는 사람을 만날 때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무표정은 그래서 가장 솔직함이다.
사는데 별 도움은 되지 않지만...
하나가 없으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나가 있으면 많은 것이 있다. 하나를 잃었고 하나를 보냈다. 박해영이 그랬듯이, 차수현이 그랬듯이, 그리고 죽음마저 불사했던 이재한이 그랬듯이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의 끝. 멈춰버린. 멈춰야 하는. 길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