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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와 포옹사이

tvN드라마 '미지의 서울'... 버스정류장의 그녀

by 김인철

요즘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미지의 서울은 상처를 안고 서울로 상경한 청년 ‘미지(박보영 분)’가 낯선 도시에서 삶의 의미와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고시원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미지는 우연히 만난 ‘호수(박진영 분)’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각자의 과거와 현실이 갈등을 일으키며 관계는 위기를 맞고, 결국 진정한 연대와 사랑의 의미를 묻게 된다.


'미지의 서울'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미지와 호수는 어색하게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악수와 포옹사이, 그 애매한 거리에서 자꾸만 헷갈려한다. 서로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하는 장면이 설레면서 웃겼다.


미지의 서울_tvN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늘 일정하지 않다. 처음 만난 사람과는 어깨너머로 인사를 하고, 그보다 조금 가까워지면 악수를 한다. 조금 더 마음이 열리면 가볍게 등을 토닥이고,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면 포옹을 나눈다. 이 모든 거리의 변화는 단지 몸의 스킨십이 아니라 마음의 연결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간관계란 이 '악수에서 포옹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가까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직장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이 노출되고, 너무 멀면 동료간 협력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동료들끼리는 적당히 웃고, 적당히 고민을 공유하고, 적당히 거리를 둔다. 그러나 가끔은 그 '적당함'의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정말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 날, 옆자리 동료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이 관계가 ‘악수’ 이상으로,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에 다문다.


연애는 이 관계의 거리를 가늠하기가 더 어렵다. 처음에는 손끝만 스쳐도 설레고, 눈빛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무너지듯 허물어진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사소한 다툼에도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있을 때, 서로에게 안기며 포옹을 한다. 하지만 연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그 포옹이 당연해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배려를 무디게 만든다.


오래전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썸을 타던 여인이 있었다. 악수에서 포옹으로 넘어가려던 순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어색한 손짓 하나만 남긴 채 돌아서야 했다. 그날 깨달았다. 모든 관계는 악수에서 포옹 사이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은 포옹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친구 사이의 거리는 늘 유동적이다. 어릴 땐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좋았던 친구가 성인이 되면 몇 달에 한 번 안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깊은 친구는 그 사이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포옹'의 거리에 도달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어제 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거리를 유지해 준 '신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관계를 악수에서 포옹으로 넓히려다 실패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아니면 상대가 마음의 문을 닫았던 걸까. 그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관계는 점프해서 넘어설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그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배려와 공감이 필요하고, 때로는 기다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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