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투표는 내가 지킨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진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아니, 지난 6개월은 내 생에 가장 길고 두렵고 불안한 나날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모두가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밤에 느닷없이 벌어진 내란 사태였다. 내란 사태 이후 수백 만이 넘는 시민이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하지만 1차 탄핵은 성립조차 되지 않았고 2차 탄핵소추안은 찬성 204표로 힘겹게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내란 사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한없이 기다려야 했던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체포 실패, 구속 취소... 지난 6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21대 대선을 치르고 있다.
나는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월 29일 오후에 투표를 했다. 투표 용지를 받아 들고 기표소에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울컥했다. 지금까지 한 표를 행사했던 그 어느 선거보다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는 내 손이 떨리고 설렜다. 투표 용지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자리에 도장을 있는 힘껏, 그리고 조심스럽게 눌렀다.
내 투표는 내가 지킨다
'부정선거'는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란세력들은 끊임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이 모인 공정선거 지킴이 '시민의 눈'은 혹시라도 대선 이후에 발생할지 모를 논란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거 감시 활동 등을 벌이기로 했다.
▲사전투표함 지킴이 명찰. 채팅방에 올라온 시민의 눈 공정 선거 지킴이 이미지를 편집 후 인쇄했다. ⓒ 김인철관련사진보기
'시민의 눈' 등에 따르면, 사전투표함을 지킬 사람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지역은 사정이 좀 나았지만 사람이 적은 지역은 지킴이가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자, 사전투표 지킴이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색을 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성남에서도 시민의 눈 단톡방(오픈채팅방)에서 사전 투표함 지킴이를 모집하고 있었다. 시민의 눈 오픈 채팅방에 가입을 하고 지킴이를 신청했다. 내가 사는 성남 중원구 선관위를 지정했다.
시민의 눈 지킴이를 하기 위해 2일 사전투표함이 보관된 중원구 선관위로 향했다. 오후 6시가 조금 안되어 그곳에 도착했다.
▲시민의 눈중원구 선관위. 선거 전날 시민의눈 사전투표함 지킴이 분들과 밤을 새우며 투표함을 지켰다. ⓒ 김인철관련사진보기
선관위는 1층이었다. 선관위 출입구 옆 한쪽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네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그분들이 나를 보더니 무척 반기셨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부정선거부패방지대(부방대)'였다. 그들도 시민의 눈처럼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분들도 내가 시민의 눈 지킴이임을 알고 당황했다. 이 시간대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신청한 인원은 나 포함 세 명이었다. 조금 지나자 지킴이 한 분이 오셨다. 처음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이내 다른 지킴이 분들도 오시며 분위기가 한층 밝고 좋아졌다.
오랜 시간 지킴이를 해야 했기에 시민의 눈 단톡방에선 선관위의 화장실이 어디인지 공유하는 얘기가 나왔다. 지킴이를 먼저 하셨거나 하고 계시는 분들이 직역별 선관위 위치와 화장실 위치를 공유했다. 다행히 중원구 선관위는 가까운 곳에 있어서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계엄의 밤, 생생한 이야기
사전투표함 지킴이라고 해서 딱히 바쁘거나 힘든 일은 없었다. 선관위 출입구 근처에서 혹시나 모를 수상한 사람들이 있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사전투표함 지킴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2.3일 계엄의 밤에 국회로 달려갔던 분들이 다섯 분이나 되었다. 부부가 함께 죽을 각오로 국회로 갔다는 분, 남편을 등 떠밀다시피 보냈다는 분,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국회로 달려갔다는 분 등 각자의 사연에 감동했다.
나는 당초 계획대로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오후 6시~10시까지만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앞서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하셨던 분들이 이날 새벽엔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신청한 분이 1명 밖에 없다고 했다. 새벽 2시~6시를 신청한 분도 올지 안 올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시간이 길진 않았다. 내친 김에 내가 지킴이를 아침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정이 되고 새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신청하지 않은 분도 지나가다 들렸다며 먹을거리를 사 오거나 그 자리에서 배달을 시켜주셨다. 중원구, 수정구, 분당구 사전투표함이 있는 장소의 인원과 상황을 공유하며 지킴이가 없는 곳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지원을 가기도 했다.
피곤한데 피곤하지 않았다
지킴이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소속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양했다. 윤석열 내란이 지속되는 동안 아프리카에서 NGO활동을 하다 4월에 귀국하셨다는 분도 있고, 한 분은 미국에서 인문학 박사를 공부하다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하고 오신 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같이 계엄의 밤에 분노했고 윤석열이 탄핵되고 파면하는 순간에 환호했다. 또, 예상치 못했던 윤석열 구속 취소 등에 불안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모여, 사전 투표함 지킴이라는 목적으로 한 공간에 있었다.
3일 새벽 5시가 조금 안 되어 선관위 직원 한 분이 출근을 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사전투표함을 지키는 책임의 시간을 보내고 진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권리의 시간이 밝았다. 시민의 눈 지킴이 활동에 조금 일찍 참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해서 마음 뿌듯하다. 오랜만에 밤을 새웠다. 피곤한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단 하룻밤의 인연인 데다 이름도 모르고, 하는 일도 소속 정당도 다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지킴이 분들과 밤을 지새웠다. 생각이 올곧고 좋은 분들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밝은 아침이 왔다. 지난 6개월 너무 잔인하고 길었다. 내 생애 중 가장 시간이 가지 않는 6개월이었다. 이제 그간의 악몽에서 청신하게 깨어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