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시간에서, 책임의 시간으로.
오래전에 어슐러 K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내용은 짧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밝고 건강하며,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아간다. 시기와 질투, 전쟁과 고통도 없다. 축제는 끊이지 않고 웃음이 넘쳐나며,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자라난다.
하지만 거기에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오멜라스의 한가운데 지하 깊은 곳 어두운 방. 창문조차 없는 그 공간에 한 아이가 갇혀 있다. 아이가 갇혀 있는 지하실 방은 오물과 썩은 냄새로 가득하다.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그 아이의 불행은 오멜라스의 행복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이다. 즉 그 아이가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야만 오멜라스의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아이는 밤이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지 "으어어, 으어어"하는 신음 소리만 낼뿐이며 점차 말수가 줄어든다. 너무나 야윈 아이의 장딴지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는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곪은 상처로 가득하다.
-p.14,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 잔혹한 진실을 알게 된 오멜라스의 사람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아이의 불행을 외면 한 채 오멜라스에 남거나 조용히 떠난다. 이 짧은 단편의 주제는 단순하다.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지난 3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
나는 이 작품을 다시 읽었다. 지난 3년 동안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오멜라스는 전체의 행복을 위한 한 아이의 희생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반대였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지하실 방의 고통받는 아이였다. 깊고 어두운 지하실 방에 갇혀 있던 아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12.3 내란 이후 지난 6개월간 우리는 매일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대한민국은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고 따르는 자들만 행복한 또 다른 오멜라스였다.
윤석열의 집권 3년은 대화도, 타협도 실종된 시간이었다.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국민과의 소통조차도 단절한 채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했다. 윤석열은 국회를 무시하고 ▲채해병 사건 등 수많은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정 집단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반민주적 태도는 국민 다수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겼다.
실패한 12.3 내란
급기야 윤석열은 영구집권을 위해 '12.3 내란'을 벌였다. 시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과 계엄군의 소극적 태도, 국회의원들의 재빠른 계엄해제결의안 통과로 내란을 막을 수 있었다. 만약 그 내란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현실을 살고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수천 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며 국민들은 <오멜라스 지하실의 아이>처럼 끊임없는 고통과 절망에 시달렸을 것이다.
또한 김건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논문 표절, 허위 경력, 대통령실 사적 이용 등 여러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도이치모터스는 수십억 원대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연루자로 지목되었음에도 여전히 검찰 소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국민에게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도 오멜라스라는 도시가 존재하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 도시의 지하 감옥에는 누가 들어가야 할까? 나는 가장 먼저 윤석열과 김건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며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린 이들이다.
내란의 시간에서 책임의 시간으로
4월 4일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민주적 선거 절차에 의해서 6월 3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출범 직후부터 야당은 물론 국민과의 소통을 이어나가며 윤석열이 망친 국정을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좌절됐던 세 개의 특별검사팀도 드디어 출범했다. 이른바 ▲내란 특검, ▲채해병 특검, ▲김건희 특검이다. 그동안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은 트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답답하다. 수많은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윤석열과 김건희는 여전히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잘못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지지자들을 앞세워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이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언론인, 군인, 경찰, 정치인들은 고발을 당하거나 좌천됐고, 심지어는 감옥에 갔다. 공정과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큰 허탈감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그들의 권력 아래서 특혜를 누리고 책임을 회피해 온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복수가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에서 무너졌던 규범과 법치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나는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그 세력들의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그들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다고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속 진실을 마주한 이들이 결국 오멜라스를 떠났듯, 우리도 내란의 시간에서 책임의 시간이 된 이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정의를 향한 길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 길만이 지난 3년간 우리가 겪은 좌절과 불안, 공포를 끝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