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과 두 소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

by 김인철

신호등 앞에 서있다. 신호등은 항상 나를 멈추게 한다.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라면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추는 게 당연하지만 가끔은 그대로 직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신호등은 붉은색이다. 신호등을 건너면 바로 도서관이다. 신호등이 아파트 단지 입구인 데다 경사가 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


pixabay


세 명이 붉은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넌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여학생 둘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신호등은 여전히 붉은색이다. 맞은편에서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던 나를 여학생 한 명이 힐끔 쳐다본다.


두 소녀는 이 상황이 조금 민망했는지...


"이 신호등은 한 번도 파란색으로 바뀐 적이 없어."

"맞아, 맞아. 한 번도."


다른 여학생도 맞장구를 치며 나를 비껴가더니 둘 다 까르르 웃는다. 설마, 그럴리가. 이곳이 호그와트의 마법학교가 아니라면 신호등이 한 번도 파란색으로 바뀌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건 너희들이 항상 붉은 신호에서 길을 건너서 그런 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삼초 뒤 붉은 신호등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며칠간 소금을 뿌린 듯 속을 뒤집어놓던 한 사람과는 오해를 풀며 산뜻한 작별을 했다. 갑작스럽게 건강이 염려되던 이는 아직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적이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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