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옆집 어르신의 전화, 엄청난 걸 주셨다

호의는 삼겹살까지라지만....갈비찜과 잡채는 이웃을 향한 정이죠

by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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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설이 지났다. 방송과 언론에선 설과 관련된 정겨운 이야기들을 보도 한다. 하지만 이번 설도 내겐 예년과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명절이다.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 명절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설날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같은 건물 일층에 사시는 어르신이 전화를 주셨다. 아침 식사를 했냐고 물으시길래 식사 전이라고 했다. 어르신은 "갈비찜이랑 잡채 했는디 좀 먹을 텨?"라고 하셨다. 내가 주시면 감사히 먹겠다고 하니 어서 건너 오라고 하셨다.


IE003583497_STD.jpg ▲갈비찜과 잡채설날 아침에 같은 건물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이 갈비찜과 전, 잡채를 주셨다. 양도 푸짐해서 다음날까지 먹을 수 있을것 같다. ⓒ 김인철


어르신은 지난 설과 추석에도 손수 만드신 갈비찜과 호박전, 잡채를 푸짐하게 주셨다. 어르신과는 같은 세입자로 가끔 왕래를 하는 사이다. 평소에는 말벗이 되어 드리기도 하고, 집에 가구나 가전제품등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드린다. 몇 달 전엔 어르신 댁 주방 전등 스위치가 고장 나서 교체해 드렸다. 그날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옆집 어르신이 전화를 하시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총각, 지금 집에 있어?"

"네."

"큰일났네."

"왜요, 무슨 일 생기셨어요?"

"주방 전등 스위치가 꺼지질 않아. 총각이 와서 좀 봐줄 수 있어?"


어르신은 나를 총각이라고 부른다. 나이는 지천명이 넘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총각이다. 어르신 둘째 아들은 일을 하는 중이라 지금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어르신 댁에 가서 보니 주방쪽 전등 스위치가 딸깍거렸고 전등은 계속 켜져 있었다. 나는 어르신을 안심시켜 드리고 근처 철물점에서 새 전등 스위치를 사와서 교체해 드렸다.


IE003583499_STD.jpg ▲전등 스위치어르신 주방 전등 스위치를 교체한 후 고장나기 직전인 우리집 욕실 전등 스위치도 교체를 했다. ⓒ 김인철


고장 난 전등 스위치를 무사히 교체 하자 어르신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셨다. 어르신은 고맙다며 현관 문을 나서는 내게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오리훈제 두 팩을 건네셨다. 때마침 우리집 주방 전등 스위치도 문제가 있었다. 내친김에 우리 집 거실과 화장실 전등 스위치도 함께 교체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어르신이 주신 오리훈제를 구워 먹웠다.


IE003583759_STD.jpg ▲어르신 주방 전등 스위치를 교체한 후 고장나기 직전인 우리집 욕실 전등 스위치도 교체를 했다. ⓒ 김인철


이 집에는 1층 어르신뿐 아니라 지하에 사는 여성 1인 가구도 있다. 그 여성분과도 안부를 나누며 지내는데, 한번은 겨우내 얼어있던 보일러 배관(https://omn.kr/2bxr4"도와주세요" 다급한 여자 목소리에 나가보니)

이 터져 여성이 무척 당황해 하던 상황에서 응급조치를 해 준 일도 있다. 얼마 전에는 키우던 고양이에게 발톱을 할퀴어 급히 응급처치용 밴드를 빌려간 적이 있다. 전동드릴을 빌려준 적도 있다. 나도 몇차례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큰 일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이들에게는 순간 순간이 막막할 수 있다. 그럴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설 전날에도 어르신 댁에서 한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찬바람을 쐬며 일을 하다가 독감에 걸려서 일주일간 고생했다는 이야기, 그 일터에서 처음 본 사람이 내 외모를 지적해서 그뒤로 상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 누군가 내 자동차 뒷범퍼를 긁고 도망을 갔는데 범인을 잡지 못해서 속상해 하다가 자부담으로 수리했다는 이야기 등 어르신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주인 내외분도 세입자도 모두 좋은 분들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도울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지내고 있다. 이 동네에서 삼십년, 이 집에서만 전세로 8년 넘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을 달동네라고 부른다. 달동네라는 표현이 그리 달갑진 않지만 언덕이 높기에 달과 가장 가까운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 성남시 1인가구 회원들 11명과 함께 펴낸 에세이집을 집주인과 세입자 분들에게 한권씩 드렸다. 그 뒤로 주인 내외분이 나를 볼 때마다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작가라는 호칭이 조금은 민망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를 떠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개인 사정으로 지난해부터 명절을 홀로 보낸다. 그 뒤로 명절이 되면 마음 한편이 조금 허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어르신이 주신 갈비찜과 호박전, 잡채 덕분이지 조금 덜 쓸쓸하다. 호의는 삼겹살까지만이라는 말이 있다. 갈비찜도 마찬가지다. 어른신은 품이 많이 들어갔을 갈비찜도 주셨다.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고 배가 부르면 행복하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의 일상을 살피며 챙겨주는 이웃이 있다. 이렇게 또 명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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