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떠오른 어릴 적 기억 하나
곧 있으면 설이다. 설이지만 난 혼자다. 가족이 있지만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지난해부터 연락을 하지 않는다. 설을 앞두고 있으니 어릴 적 겪었던 무척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8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고 술을 좋아하셨다. 술 때문인지 간이 좋지 않았다. 돌아가실 때도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어머니가 홀로 삼 형제를 키워야 했다. 할아버지가 홀로 삼 형제를 키워야 하는 며느리를 위해 할아버지가 사시던 큰집 옆 다 허물어져 가는, 마당도 없는, 문 열면 바로 길가인 흙집 한 채를 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할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다 쓸어져 가는 흙집 값을 달라고 하셨다. 집 값은 당시 시세로 쌀 스무 짝이었다. 어머니는 동네 허드렛일과 농사일등 날품으로 우리를 키워야 해서 돈이 없으니 집 값을 주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쫓아와서 집 값을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 피우다 할아버지가 쫓아오면 이웃집으로 도망 다녔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어머니에게 집 값을 달라고 쫓아왔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피해 도망가셨다. 그런데 그날은 할아버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곡괭이를 가지고 와서 나와 형, 동생이 자고 있던 안방 문을 확 열더니...
할아버지는 커다란 곡괭이로 방바닥을 사정없이 찍어버렸다. 방바닥 가운데가 깊이 파였다. 자고 있던 나와 형이랑 동생은 춥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그때 찬바람이 휙 하고 방으로 몰아쳤다. 사십여 년 전 겪은 일이지만 아직도 그 찬바람이 생생하다.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안 보이고 우리 삼 형제는 놀랍고 무서워서 펑펑 울었다. 할아버지는 곡괭이로 방구들을 마구 패대며 집 값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쫓아와서 왜 집 값을 안주냐고 난리 난리를 쳤다. 한참이 지나서 어머니는 결국 할아버지에게 집 값을 주셨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