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약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2차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사적 책임과 도덕적 충격이 결합된 결과 유럽과 미국은유대인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가도 유대인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는 엄연한 사실이자 인륜에 반하는 범죄다. 이 부채 의식은 유럽과 미국의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대계 출신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은 이를 널리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1993>, 인생은 아름다워<로베트로 베니니, 1997년> 같은 영화들은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남겼다.
하지만 집단학살은 이스라엘만 겪은 비극은 아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1975년~1979년, 약 150만명~200만명>, 르완다 집단학살<1994년 4월 ~ 7월, 약 50만 ~ 70만 명>, 난징 대학살<1937년 12월 ~ 1938년 초 (약 6주), 20만명 이상>처럼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집단학살된 사건들도 존재한다. 또한 소련은 2차대전에서 약 3,000만명(군인 약 800만~1,100만 명, 민간인 약 1,500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 비극들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이들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무게감이나 문화콘텐츠 영향력이 약하고, 무엇보다 서구중심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정체성과 이방인
한달이 넘도록 지속되는 이스라엘·미국과 이란 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전세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오래된 질문을 하나 던질 필요가 있다. 왜 유대인은 오랜 시간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왔으며 유럽사회는 왜 유대인을 박해 했을까.
유대인 박해는 이스라엘 건국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중세 유럽은 기독교 중심 사회였고,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으며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신약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종교의 차이를 넘어 기독교 중심이던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1492년 스페인 유대인 추방 <알함브라 칙령>은 대표적인 사례다.
유대인은 유럽 사회에서 '이방인'이었다. 유럽과 중동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도 언어와 종교,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유대인들에겐 당연한 생활 방식이었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나 나라에서는 이질적이었다. 이런 유대인의 특성은 평화로운 상태에선 공존이 가능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된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유대인이 우물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
유럽의 유대인 탄압은 경제적 요인도 있었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 중심 사회였고 기독교는 이자를 받는 행위{고리대금업}를 금지했기 때문에 금융업은 기피 대상이었다. 반면 유대인은 공직에 진출하거나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수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했다. 이런 고리대금업은 유럽인들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차별을 당하는 모순적 위치였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에 등장하는 샤일록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이유 또한 유대인 차별과 박해의 중요한 이유였다. 왕이나 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질 때 유대인에게서 돈을 빌리고, 이후 빚을 없애기 위해 추방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이어졌다. 유대인은 위기 때마다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알함브라칙령>의 결과로 스페인 국왕은 유대인들 재산을 대부분 몰수했다.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유대인을 향한 차별과 박해는 근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결국 2차대전을 겪으며 히틀러에 의해서 유대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이어졌다. 히틀러는 독일의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를 독일 내부의 배신으로 규정하며, 그 책임을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게 돌렸다. 종교 차별이 인종 증오로 변하며 집단 학살(제노사이드)로 이어졌다.
유대인이 유럽과 중동에서 박해를 받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의 '선민의식'과 '유대인 고유의 정체성'은 유럽사회에서 이질적이었고 배타적일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는 정치적 위기나 전염병같은 상황에서 더욱 부각되었고, 유대인은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아슈케나짐과 마즈라힘
이스라엘 건국 이후 내부 구성 역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기 이스라엘로 유입된 유대인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뉜다. 유럽 출신 유대인인 아슈케나짐(Ashkenazim)과 중동·북아프리카 출신 유대인인 마즈라힘(Mizrahim)이다.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차별과 배제라는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슈케나짐이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에 따른 차별과 홀로코스트를 겪었다면, 마즈라힘은 중동 지역에서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이스라엘로 이주한 경우다. 이러한 차이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정치적 지형과 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마즈라힘 계층의 지지 기반이 현재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강경한 정책을 취하는 이유다.
국제사회의 달라진 시선
지금의 이스라엘·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과거의 중동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홀로코스트 피해국이라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우월성과 예외성은 국제 사회에서 더이상 용인 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피해자였다고 해서 현재 이란이나 바레인에 하는 행위는 용납할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X에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 "끊임없는 반인권적 행동에 실망한다" 라는 글을 올리며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전쟁 행위를 비판했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제 분쟁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발언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온 여러 국가 지도자들까지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와 군사적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홀로코스트 가해국인 독일 정치권에서도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는 전후 70년 동안 유지되어 온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라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우월성과 예외성이 시효를 다했다는 의미다. 인류가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를 통해 배운 교훈은 '유대인을 보호하자'를 넘어 어떤 집단에 대해서도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반인륜적인 전쟁 행위를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