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임실 장터 피순대국, 치즈테마파크, 실상사에서 지인과의 짧은 만남

by 김인철

정우영 시인이 템플스테이중 임실 장터에 가서 피순대국을 꼭 먹어보고 오라고 했다. 순댓국은 내 영혼의 음식 중 하나다. 임실 피순대로 검색을 하니 개미집과 도봉 집 두 식당이 나왔다.


1591082767682.jpg 임실 장터 전경

남원에서 삼십 분 정도를 달려 임실 장터에 도착했다. 식당은 장터 안에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방송도 많이 나왔는지 출입문 앞에는 KBS, MBC, JTBC 등 방송사의 로고가 보인다.


아침을 거른 탓에 허기가 진다. 개미집으로 들어갔다. 피순대 국밥 특대를 주문했다. 김치와 깍두기가 먼저 나온다. 깍두기를 한입 베어 물었더니 시큼하다.


1591084240317.jpg 임실 장터 피순대국


순대국밥에선 꼬릿 꼬릿 한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난다. 순대는 적갈색을 띤다. 평소 먹던 순대와는 빛깔이 다르다. 밥이 말아진 빨간 국물엔 기름기가 둥둥 떠있다. 국물은 소금을 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간하다.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겁다. 한참을 입을 벌리고 호호거렸다. 부속물은 쫄깃쫄깃하다.


1591084241555.jpg 피순대 국밥

부추를 넣고 청양 고주도 넣어 칼칼함을 더했다. 순대국밥 한 그릇 속에 프랜차이즈에서는 결코 맛보기 힘든 세월의 맛이 묻어난다. 부산의 돼지국밥, 나주의 곰탕, 임실 장터엔 피순대국 나만의 맛지도를 하나 더했다.


1591082776011.jpg 임실치즈테마파크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찾았다. 임실과 치즈. 모차렐라, 까망베르, 체다 슬라이스. 이탈리아나 스위스의 한 평원에 어울릴법한 치즈와 임실의 조합이 다소 낯설다. 평일이라 테마파크 방문객은 많지 않았는데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여행객이 많았다. 일부 체험관을 제외하면 관람료는 무료다.


1591082778117.jpg 임실치즈테마파크 전경


언덕을 넘어가니 동물농장의 양들이 우리 안에서 떼 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리 안의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다. 순한 양들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방문객들에게 풀을 더 달라고 입과 코를 벌렁 인다.


치즈테마파크를 나와 차를 남쪽으로 달렸다. 목적지는 실상사다. 먼 곳에서 내려온 지인 두 분이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어긋남과 곡절이 많은 만남이다. 실상사는 봉축법요식을 막 끝내고 사람들은 한가로이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화엄사의 웅장함과 귀정사의 소박함과는 다른 경치와 멋을 담고 있다. 게다가 실상사는 평지에 있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수월했다.


1591084242722.jpg 실상사


몇 번의 곡절 끝에 실상사 입구에서 마침내 두 분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강산이 한번 하고도 절반은 더 변했을 오랜 인연이다. 경내를 거닐며 오랜만의 소회를 나누었다. 입구 정면의 전각 앞에 마련된 조그만 아기부처를 씻기며 소원을 빌었다. 황금이나 물욕이 아닌 사는 동안 부잡스러운 마음을 평안히 해 달라고.


IMG_4082.JPG?type=w773 실상사 부처상


두 분도 아기부처를 머리부터 씻겼다. 소원을 묻진 않았다. 말을 하는 순간 부정을 탈 수도 있으니. 순대국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출출하진 않았지만 사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메밀면을 먹기로 했다. 먼 길 올라가는 나를 위해서. 비빔메밀과, 메밀면, 그리고 만두를 하나 시켰다. 메뉴를 고르던 중 메뉴판에 '메밀 추가 사리'가 있다. 주인에게 '메밀 추가 사리'가 뭐냐고 물으니.


IMG_4072.JPG?type=w773 실상사 전경


식당 주인이 사람 좋은 웃을 지으며 자신이 오래전 경험한 일화를 말해준다. 예전에 깊은 산사에 묻혀 살던 오빠를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를 하려고 친구들과 한 식당에 왔는데 오빠는 이것저것 메뉴를 보더니 고심 끝에 '사리' 하나 주세요 하더란다. 사리 주세요. 사리 주세요. 사리. 사리라고? 같이 온 사람들 모두 빵 터졌단다. 사리라는 메뉴가 있던가? 세속의 삶을 벗은 지 오래되어 빚어진 해프닝이다. 식당 주인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우리도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IMG_4097.JPG?type=w773 실상사


실상사에서는 한 시간 남짓 머물렀다. 나는 성남으로 올라가고 두 분은 남원에서 하루를 더 머물 예정이다. 지난 일주일간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웠을까? 초록이 물든 한갓진 곳에서 먹먹한 귀와 탁한 시선이 정화되는 무위의 시간들. 염증에 시달리던 몸은 한결 가뿐해지고 내 몸무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웠을 마음의 짐들이 솜털처럼 가벼워진 건 분명했다. 오면서 세웠던 계획 두 가지는 실행을 못했지만 그보다 소중한 인연과 자연의 풍광을 접하고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


성남에 거의 도착할 무렵 문자가 하나 왔다. 귀정사에 머물고 있는 상진 씨다.


"안녕하세요. 주신 책의 소설을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인연이 되어 뵐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씩 내 아방이는 휘황찬란한 도심의 야경 속으로 빨리듯이 들어간다.


2020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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