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후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아, 홀가분하다. 어제는 모처럼 두발 뻗고 편하게 잠을 잤다. 지난밤 푸른학교 졸업식 및 문화제 열세 번째 이야기를 끝냈다. 지난 두 달 동안 문화제 준비과정은 참 드라마틱했다. 사실 문화제 기획 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극적이었다. 문화제는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기획과 준비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이번 문화제에 신흥동은 그동안 했던 '오케스트라'대신 연극 형태로 준비를 했다. 또한 나는 문화제 기획단장으로 기획단 선생님들과 함께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해야 했다. 푸른 학교 뮤직비디오 (립덥-사랑하기 때문에)도 그렇게 해서 찍었다.
문화제 며칠을 앞두고 신흥동 푸른학교에서 겨울 캠프를 열었다. 시작은 화려했지만 마무리는 무척 당혹스럽게 끝났다. 캠프를 진행한 이래 가장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날 새벽 사건의 주동자들은 2주 동안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마무리를 했다. 선례를 이렇게 남겨 버리면 후배들은 어떡하라고. 문화제를 며칠 앞두고서 두 남매가 가출을 했다. 두 남매는 입학 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아이들과 금방 친해졌다. 두 남매는 재능이 많았다. 아이들은 두 남매를 동경했다. 이번 문화제에서도 두 남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문화제를 며칠 앞두고 두 남매가 가출을 해버렸다. 새아버지와의 갈등이었다. 오빠는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어머니와는 계속 통화를 했다. 이틀간 두 남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문화제에 올라갈 정자동 밴드 악기 시스템을 점검하려고 밖에 나왔는데 오빠가 돌아왔다. 동생은 없었다. 내일 다시 오겠다며 나갔단다. 수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문화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오빠가 들어왔다. 연습을 생활복지사 선생님께 맡기고 우리는 3학년 교실로 들어갔다.
"밥은?"
"친구네 집에서 먹었어요."
"동생은?"
"친구랑 같이 있어요."
"집엔 안 들어 갈거니?"
"지금은 들어가기 싫어요."
"새아빠 때문에?"
오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동안 새아빠와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삼자의 입장이었다. 그의 고통과 힘겨움을 내가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만만치 않았던 그의 시간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문자 두 통이 연달아왔다. 문화제에 쓸 리플릿과 현수막 시안을 확인해 달라는 대표님이 보낸 문자였다. 열린 교실에선 아이들의 연극 연습이 한참이었다.
여기는 이렇게 심각한데 저기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퍼진다. 구청에서도 문자 한 통이 왔다. 요청한 서류 빨리 내란다. 자꾸 늦어지면 나중에 불이익이 있을 거란다. 지금 이 순간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지금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내일이면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만나지 않을 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는 어떤 거부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래 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지금 같이 있어요."
남매의 어머니는 오 분도 안 돼서 오셨다.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떨궜다. 아들도 눈물을 떨구었다. 모자간의 대화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나. 그 어색함을 눈물을 떨구고 있는 모자에게 화장지를 건네는 것으로 모면한다. 내일이 푸른 학교 문화제인데. 확인하고 챙기고 준비할 거 참 많은데. 눈물은 정화의 과정이다. 그동안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쌓였던 앙금이 풀리는 순간이다. 두 모자의 눈물도 결국엔 그랬다. 처음의 섭섭하고 노기 어린 어머니의 눈물은 그 짧조로운 정화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다시 아들을 염려하는 따듯한 어머니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오빠는 이런 정화의식을 예상했을까. 그렇다면 이곳은 그것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을까? 나는 성스러운 정화의식을 진행하는 사제로써 그 역할에 충실했나? 그러기엔 내 복장은 청바지와 빨간 후드 티. 너무 캐주얼했다. 옆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검은 담요라도 뒤집어써야 했을까? 모든 정화의식을 마친 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딸이자 여동생을 데리러 두 모자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날 저녁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 동생 문화제 댄스 팀 어떻게 해요?"
"어떡하긴, 당연히 참가해야지."
이로써 문화제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의도하지 않았던 모자간의 정화의식도 잘 마쳤다. 어머니도 나도 오빠도 여동생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여하간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기획단장인 나는 한 번도 문화제 꿈을 꾸지 않았다. 다만 나는 다른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 문화제 당일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이제 내일이면 본 푸른 학교 문화제 본 공연이 시작된다. 지난 일 년의 마무리는 문화제로 모두 정리된다. 나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의 꿈속에서 푸른 학교 문화제가 펼쳐질 성남 구 시청 시민회관 대강당을 누비고 있다. 지금은 밤 열 시. 꿈일까 생시일까? 나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의 꿈에서 서성거리는 걸까? 그때 문자가 한 통 울린다. 구청이다.
"급식 신청 금액이 틀렸어요. 반려할 테니 다시 작성하세요."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무대 설치, 리허설, 본 공연. 나는 누군가의 꿈속이 아니라 실제로 문화제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문화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도 구청이다.
"1월 급식 식단표 날짜 하나 틀렸네요. 서류 반려할 테니 다시 작성하세요."
"아. 식단표 날짜 하나 틀렸다고요. 다시 하라고요 틀렸으면 당연히 다시 해야죠. 그래도 날짜 하나 때문에."
2012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