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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도형이다

그림 그릴 때 사물을 보는 시선

by 그리여

난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리는 편이었다.

(지 자랑 아닙니다 그냥 그랬다는 거)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풍경화나 정물화나 인물화나 뭐든 그리려고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보이고, 그걸 다듬고 조합하고 직선 사선으로 연결하면 그림이 되었다.

삼각구도도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아마도 10세 전후로 그림을 가장 잘 그린 듯하다.

그림 그리기가 제일 쉬웠다.

나이가 들수록 붓 잡는 시간이 줄어드니 손이 굳어갔다.

안 그리니까 재능은 희미해지고 의욕도 꺾였다. 그림보다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모든 사물을 보면 아직도 도형이 먼저 보인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가 어우러져 있다.


삶에도 여러 도형이 존재하지 않을까


원만한 동그리로 사는 이가 있고

까칠한 삼각이로 사는 이가 있고

반듯한 사각으로 사는 이가 있고

찬란한 다각이로 사는 이가 있고


이런저런 삶이 뭉뚱그려져 동그란 지구가 사람을 담고 둥글둥글 굴러가는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도형은 아름답다.

도형과 숫자가 어우러져 일상의 곳곳에 찾아야 할 그림처럼 숨어있다.


오늘은 어떤 그림이 숨어 있나


펑펑 쏟아진 눈이 만든 절경 속에 동그라미가 숨어있다. 뽀득뽀득 뭉쳐서 눈사람을 만든다. 8이 숨어있다.


내 앞에서 달려가는 자동차에는 동글동글 굴러가는 바퀴 위에 직사각이가 올라앉아 있다. 많은 자연수가 숨어있다.


산등성이 꼬불꼬불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숨이 턱에 차오른다. 5가 끝도 없이 쭉 이어진다.


미끄러질세라 허리를 한껏 숙이고 걷는다. 바닥에 비친 내 그림자에 9가 숨어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눈꽃을 피우고 멋스럽게 늘어져있다. 고개 숙여 인사하듯 지나간다. 7이 숨어있다.

친절한 우리나라의 등산로에 놓인 계단을 투덜거리며 한 계단 한 계단 수를 세며 오른다. 헥헥 대고 다리가 무거워질 때쯤이면 숫자 세기를 포기한다.


일상은 이렇게 나에게 도형과 숫자로 다가온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고 그렇게 보였다.

숫자를 세다 보면 잡스런 생각이 잊히니까

오늘도 둥글둥글 살아야 되겠다.


먼 길을 가고 돌아오기가 버거울 때 무언가를 주저하고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주저앉을 때 다시 일어선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원이다.

원은 둥그니까 멀리 갔어도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오니까 다시 출발선상에 선다.

그렇게 생각하고 두려움을 떨치며 다시 일어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하고


세상만사 규칙이 있는 것은 규칙만 찾으면 수월한데, 내 머릿속은 답이 없는 일상의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규칙 없이 마구 엉켜버린다.

보이지도 않고 답도 없는 문제에 규칙을 찾으려니 머리만 아프지


삶은 규칙적이기보다 변화무쌍하다.

필요한 건 뭐? 순발력과 창의성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올랐다.

삼각점의 꼭대기를 동경하면서...

피라미드 같은 산의 정상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1+1=1

한 줄 요약 : 멀리 가서 돌아오기 힘들다고?

걷는 길이 원이니,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도형

#숫자

#원점

#일상 #다시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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