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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크루 10기 합평회/글로 만난 사람들

글과 닮아 있는 작가님들

by 그리여

합평회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 떨리지 않아?"

"글쎄 별로 안 떨리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

"나이가 들면서 좀 무덤덤해지는 게 생기네.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낯가림이 심하니까 동병상련이랄까 막내가 걱정스레 물어봤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미 목소리가 떨리면서 나에게 머무른 시선에 쑥스러움이 더해져 얼굴에 열이 올랐다. 타고난 성향이 어디 가겠는가


그렇게 만난 작가님들은 모두가 친절하였고, 왠지 친숙하기도 하였기에 어색함은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저마다 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몸의 고통을 글로 잔잔히 쏟아내고 얼굴엔 생기가 흘렀다.

아픔이 밝음을 누르지는 못하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사심 없이 즐기는 이들을 만났다.

책과 글쓰기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어떤 일에 좋은 의미로 살짝 미쳐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게 얼마만인가!


책을 출간하면서 겪은 마음의 상처와 부담감과 성취감에 대해서 서로 긍정적인 정보를 나누고 공감하는 작가님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에겐 먼 일처럼 느껴졌고, 잊고 있었던 책을 만들던 과거의 내가 뜬금없이 생각났다.


90년대 매킨토시(Macintosh) 기반 전자출판(DTP, Desktop Publishing)의 등장은 인쇄 출판 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매킨토시와 PageMaker(1985년 출시), QuarkXPress(1987년 출시) 같은 전자출판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수작업 레이아웃, 필름 편집, 활판 인쇄 등)이 점점 사라지고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출판 작업을 컴퓨터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편집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되었으며, 이전까지 출판은 대형 인쇄소와 전문 편집자의 영역이었지만, 매킨토시의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DTP 소프트웨어 덕분에 소규모 출판사나 개인도 쉽게 책, 잡지, 브로슈어 등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가 증가하면서 출판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그 혁신의 중심에서 나는 매킨토시에 매료되어 열정을 쏟아붓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만나서 독학을 하면서도 알아가는 즐거움에 엄청 미쳐있었다.

작은 오차도 용납이 되지 않았고, 모니터 위에 펼쳐진 출판물을 보며 서체. 포인트. 자간. 행간. 오자. 레이아웃 이런 것들만 눈에 쏙 들어오던 날들이었다.


각종 광고와 사보, 텍스트를 받으면 호환하고 책 등을 편집하고 저장하여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충무로의 출력소를 오가며 필름, 인화지를 출력하기 위하여 파일을 맡기는 것까지 하였다. 출력소에 파일을 넘기면 오류가 많이 나기 때문에 확인하고 와야 안심이 되었다.

매킨토시 QuarkXPress 하나면 뭐든 할 수 있었고 열정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요구하는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기에 매일이 힘이 들어도 신이 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일러스트와 포토샵으로 밥 먹고 살던 그때를 기억하지만 지금은 버벅대며 겨우 사용하는 정도였다.

긴 공백에 난 설 곳을 잃었다.


남의 책을 눈 빠지게 쳐다보고 레이아웃을 잡고 편집하면서도 내가 직접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작가님들은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독서모임도 꾸준히 하시고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었다.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한 시간이었다.


어릴 때 읽었던 많은 책들이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하다. 그래도 읽었던 책들을 소장하고 더러는 이사하면서 도둑도 맞고, 주기도 하고 둘 곳이 없어 처리하기도 하였지만, 정말 아끼는 책들은 전리품처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보면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독서를 꾸준히 한다는 작가님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일이 바빠서 책은 거의 2.3년에 한 권 정도 겨우 읽었을 뿐이었기에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작가님들은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 분 한 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픔보다 남의 고통에 공감해 주고, 자신의 글에 녹여 담은 고뇌의 글들은 여운으로 남았다.


예술가방이라는 멋진 공간에서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며 차분해서 주목하게 되는 작가님들의 목소리... 머릿속의 생각들을 담백한 언어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고 격려와 애정이 쏟아지던 그 시간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10기 라라크루는 아픈 작가님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글을 써도 허기지고 안 써도 허기지는 듯이 보이는 작가님들이 남 일 같지 않아서 마음에 스며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한 줄 요약 : 지적(知的)으로 미쳐있는(좋은 의미) 글고픈 사람들을 만났다



#라라크루10기합평회

#라이트라이트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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