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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별 헤는 밤. 쏟아지는 별 중 하나가 되었다

by 그리여

소금강산에서의 밤하늘은 별이 쏟아져서 보는 이의 감성을 간지럽히고, 괜한 설렘에 잠을 설치게 한다.

반짝이는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경이롭다.


가 어떠한 사연으로 그곳에 머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산을 오가다 만나면 반갑게 차를 한잔 마실 뿐이었다


그는 어느덧 그곳이 좋아져서 떠날 수가 없었고,

주인보다 더 오래 산장을 지키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그는 말했다.

집안에서 억지로 정해준 정혼자가 있는데,

도저히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사람 마음이 억지로 되지 않는다고

그의 정혼자 역시 그를 향한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그녀를 만났다

밝고 귀여운 그녀는 그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어렸다

그녀는 그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다

어떠한 이유로 이 소금강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산장에서 며칠을 묵었다

그 또한 왜 왔는지를 묻지 않았다


꽃처럼 어여쁘고, 해처럼 밝은 그녀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도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저 별처럼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를 본 것이 기적이었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둘은 서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절로 감정이 가슴깊이 스며들었나 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도 그들의 눈에는 그저 둘밖에 안 보이는지 서로를 챙겼다

마치 '왜 이제 만났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산 저산 같이 돌아다니며, 종일 종달새처럼 조잘대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진 거다

웃음이 많고 해처럼 밝던 그녀가 없는 산장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왜 갔는지 그도 알 길이 없었다.


한동안 그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건 어두운 터널을 홀로 지나는 맘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도 그곳을 떠났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곳에서 혼자 견디기 외로웠나 보다 짐작해 본다.

별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다시 그곳에 왔다

몹시 지친듯한 표정으로 외로움이 짚게 깔려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났는데 그는 말했다

"그녀를 찾아갔어 그런데 그 집안엔 발을 디딜 수가 없었지. 문전박대당했어"

그녀는 어느 부잣집의 외동딸이었다 한다.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얘기를 그는 덤덤이 풀어놓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재혼을 하셨는데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를 몹시도 미워했다고 했다

무작정 집을 나와 평소 좋아하던 산으로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만난 것이었다

마음이 허했던 그녀는 그의 순수함에 이끌려 한없이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의 이른 새벽,

아버지는 그녀를 찾아냈고,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가출할 생각만 하고 집에 맘을 붙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녀를 집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는 어찌어찌하여 그녀를 찾아갔다.

한 번이라도 그녀를 더 본다면 숨을 쉴 것만 같은 절박함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무섭게 화를 내고

"나이가 어린애가 방황하면 타일러서 집에 돌려보내야지"

하시곤 문을 쾅!! 닫으며

나이도 많고 마땅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감생심 자기 딸을 넘보았다고 불같이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틀린 말도 아니니 발길을 돌릴 수밖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그저 묵묵부답으로 앉아있다

"이제 무엇을 할지 모르겠어 그녀를 몰랐던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 같아"

뭐라 위로를 해야 될지 몰랐다.


침묵이 숨에 턱 와닿을 것만 같은 순간이 흐르고,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듯이 그는 입을 열었다.

"일단은 직업을 가지고 다시 그녀를 찾아가 볼까 해"

그는 그런 마음을 굳히고 산을 내려갔다.

한동안은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그의 부고장을 받았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장난인가? 아닐 거야

공허한 물음만이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그는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알려줬다

유언장에는

'미안하다. 잘살아보려고 했는데 힘들더라. 그녀를 못 만나는 삶은 의미 없다.'

라는 식의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는 열심히 일했고, 매일 그녀를 찾아갔지만 못 만나고 힘없이 돌아왔다고 한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말수가 줄어들어가는 그를 보노라니 가족들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혼자랑 결혼하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마음을 붙이고 살 거란 생각에 억지로 맺어주려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그를 더 힘들게 한 걸까


드라마는 역경을 이겨내고 맺어지는 해피엔딩이 많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더 잔인하단 생각이 드는 건 그의 죽음을 봐서 그런가.

어쩌겠는가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다들 견디고 살아가는 게지

그는 그조차도 힘에 부쳤던 것인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였나

마음이 아팠

눈발이 휘날리던 어느 겨울날 그의 장례는 한없이 초라하게 치러졌다

허전한 마음에 그가 즐겨가던 계곡으로 가서

친구들과 한잔의 맥주를 기울이며 그를 애도했다

그가 좋아했던 계곡의 바람이 그날따라 유난히 매서웠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그런 선택이 이해되진 않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무엇이 그를 등 떠밀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차를 마시다 문득 생각이 났다.

지금은 편안할까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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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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