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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저런 얼굴로 손주들을 보셨으려나

산책길에 만난 어느 가족을 흐뭇하게 보게 되더라

by 그리여

하늘은 유난히 맑고

구름은 솜뭉치를 흩어놓은 듯 보드랍게 가을가을한다

입체적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노라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이런 날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수목원 산책길에 나섰다.

물소리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만족스러운 날이다

'이 가을이 있어서 좋다'라고 기분에 도취되어 걸어가고 있는데,

내 앞을 걸어가시던 할머니가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손주인듯한 아이들을 반긴다

"아이고 금방 만났네! 금방 만났어! 반가워라"

하시면서 볼과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세상에 이보다 더 예쁜 아이들이 있을까'

하는 듯한 표정으로 연신 쳐다보시고 등을 툭툭 두드리신다


아마도 아이들이 앞서가다가 미쳐 못 따라오시는 할머니를 역으로 마중 나왔었나 보다

할머니의 활짝 웃는 얼굴엔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이의 엄마는 할머니의 딸인가 보다

"엄마! ㅇㅇ가 엄마보다 더 크네"

하고 흐뭇하게 쳐다본다

앳돼 보이는 소년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정스럽게 산책한다

그 옆에는 소년보다 조금 더 큰 누나가 앞장선다

다소 무표정해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게 향한 애정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 나이에는 어른들에게 감정을 보이는 게 서투를 수 있지

할머니의 웃는 얼굴은 가을하늘보다 더 청량해 보였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백세시대 일흔을 갓 넘기고 돌아가셨다

일흔이면 시골에선 청년이지

손주들 사랑에 애틋했던 엄마는

아이들이 시골에 오면 강아지, 병아리, 토끼 등을 사놓으시고

맘껏 뛰어놀게 하셨다

"서울 아파트에선 뛰지 못하니 실컷 놀아라"

만져보고 키워보고 체험하라고 늘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셨지

엄마의 사랑법이었다

아이들은 방바닥이고 마당이고 여한 없이 뛰어다녔다.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으리라


애들은 아직도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엄마도 살아계셨다면

저런 얼굴로 활짝 웃으시며 손주들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셨겠지

우리 애들은 늘 할머니가 귀엽다고 했다

그러니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할머니에게 다정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애들이 이렇게 자랐는데

엄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의 사랑을 조금 더 누려도 될 기회를 잃으셨다

항상 가족을 위해서 헌신을 하셨던 엄마는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셨다

더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그저 먼 산을 바라보고,

돌아가지 못하는 그 시절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수목원을 돌아 나오는데

여기에 엄마가 같이 없다는 현실이 또 이렇게 가슴을 턱! 하고 친다


#가을

#그리운엄마

#산책

#공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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