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말고 사람과 놀고 싶어
밥을 먹다가도, 친구를 만나도, 차를 타도, 길을 걷다가도 핸드폰을 보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질 날이 없다. 집에서도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서로 각자 보고 싶은 유튜브영상을 보거나 인스타에 빠져서 핸드폰을 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보다가 재미있는 게 나오면 서로 공유하면서 잠깐 즐기지만 그것 역시 온라인에서 즐기는 것일 뿐이다.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당근에서 경도(경찰과 도둑)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자매가 의기투합하여 퇴근 후에 하필 엄청 춥다고 한 금요일에 시간이 맞아서 참여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얘들아 그게 뭐야?"
"엄마 요즘 유행하는 놀이야 당근에서 모집해서 놀고 헤어지는 거야"
"와 그런 게 있어?"
"응 기계 하고만 놀다 보니 지쳤는지 누군가 시작했는데 유행이 됐어"
"사람하고 놀고 싶은 거구나"
"응 그런가 봐 그래서 궁금하고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해서 가보려고"
"추운데 퇴근하고 가려면 힘들겠네"
"괜찮아 다음날이 주말이고 오랜만에 사람들과 논다고 하니까 너무 궁금해"
"근데 모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
"많은 곳은 엄청나"
"어떻게 모집하는 거니 규칙이 있어?"
"동네마다 다르고, 경찰 도둑 구분하는 것도 모임마다 다르고, 17세 이상도 있었고, 미성년자 안된다는 방도 있었고, 만나는 시간대도 모집하는 방마다 달라. 약간 번개모임 같은 거라서 정해진 게 없어. 근데 우리가 한 경도는 17세 이상. 퇴근 이런 말도 없이 그냥 8시 이후 동네공원이었어"
"그렇구나 위험하지는 않겠지"
"건전하게 놀고만 헤어지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가끔 혼자 오는 사람은 왕따 비슷한 거 당하기도 한대. 도둑이라고 서 있는데도 아무도 안 잡아준다나 봐 그러면 그냥 슬그머니 집에 간대. 그래서 우리는 같이 가려고"
그렇게 첫째와 막내가 참여하기로 약속을 하고 퇴근 후에 모임장소를 갔다. 오후 8시에 시작하고 오후 10시 30분쯤에 끝났다고 하면서, 현장분위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보내주었다.
11시 넘어서 막내가 들어왔다.
"재미있었어?"
"엄마 너무 힘들어. 재미는 있는데 애들이 너무 빨라서 못 잡겠어 이제 안 갈 거야. 10대를 20대가 쫒으려니 따라다니기 벅차"
"많이 왔어?"
"50명 정도 왔는데 고등학생 비중이 많아 보였어 애들이 기운 넘쳐서 팔딱팔딱 뛰어다녀. 언니는 사교성이 갑(최고)이야. 벤치에 앉아있는 모르는 애한테 가서 경도하러 왔냐고 물어보니, 그 애는 참여는 하고 싶은데 혼자 와서 망설이고 있었대. 그 애를 데리고 또래애들 무리에 넣어주고 놀게 해 주더라고. 언니가 친화력을 발휘하는 동안, 나는 혼자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서 그냥 쭈뼛쭈뼛하고 있다가 언니가 와서 다시 신나게 놀았어"
"공원이니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경찰과 도둑은 어떻게 구분했어?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도둑은 파란 청테이프를 등에 붙이고, 경찰은 야광봉을 들기로 해서 괜찮았는데,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가 힘들었어. 난 도둑 한번. 경찰 한번 했는데 숨찼어"
첫째가 지금은 방을 나왔는데, 당근에서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 안에서도 일정을 만들어서 할 사람만 모집해서 몇백 명 모여도 일정 만들면 그 일정에서도 모집인원만큼만 채팅방 참여해서 그 사람들에게만 장소랑 시간 준비물 공지를 하고 계속 운영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기계랑 놀다가 지쳐서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에 응답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아마도 다들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목청 큰 골목대장이 "노올자" 하고 크게 부르면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서 골목을 북적북적 채우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였다.
저녁을 먹고 밤에 나오게 되면 몰래 나오느라 부모님과 눈치작전을 펼치다가, 방문 앞에서 살금살금 기어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여기저기 숨느라 정신이 없다. 너무 잘 숨으면 아이들이 찾는 걸 포기하고 그냥 들어가 버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나 여기 있어!" 하고 소리쳐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서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집에 가는 아이도 있었다. 모든 놀이들이 단체놀이여서 모이면 무조건 재미있고, 날은 금방 어두워지곤 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놀았다. 놀아도 놀아도 아쉬운 시절이었다.
아무리 핸드폰이 좋고 인공지능(AI)이 발전하여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해도 '온기'가 없으니, 사람을 온전하게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만이 가지는 섬세한 감정을 어찌 기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듣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지만 신선했다. 이런 건전한 놀이가 잘 운영되어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웃음이 동네 공원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이 그리운데도 무서워서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언제부터인가 삭막한 사회분위기에 밖에 나가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금기시해 왔다.
나 또한 아이들이 경도하러 간다고 했을 때 괜찮을까 걱정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첫째는 경도를 다녀온 후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경험했지만 제삼자의 느낌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동네에서 모임 인원을 구하다 보니깐 또래 위주로 모임을 한다면 동네 친구들 만들기 좋을 거 같았고, 요즘은 핸드폰톡으로만 친구들을 만나는데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밖에서 뛰어논 기억이 오래되었는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면서 놀기에 좋았어. 대신 너무 몰입하면 다칠 수 있으니 그건 조심해야 할 거 같아.
지나가던 학생들도 끼고 싶어 하는데 와서 말 거는걸 눈치 보고, 말을 못 거는 거 보고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 원래 경도가 모르는 사람들이 막 껴서 같이 노는 건데, 노는걸 눈치 보면서 못 껴서 논다는 게 아쉬움. 아마 거절당할까 봐 그럴 거 같긴 한데,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을 말하는 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해.
다들 다치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던 때가 그리워서 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의도가 어찌 되었든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노는 건 역시 즐겁다. 이렇게 뇌 빼고 걱정 없이 놀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어"
첫째가 경도한 소감을 말하는데 나도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정말 우리는 무얼 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을 보면서 놀 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핸드폰이 없으면 뭐 하고 놀까?
우리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뭐 하고 놀았을까.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도 시간은 늘 빠르게 흘러갔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는 시간이 많았고 온기를 느끼며 만나는 자리에는 언제나 웃음과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랬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핸드폰의 자리를 사람이 채우던 시절이었다.
요즘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 노는 것보다 여럿이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런 재미를 모르고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빠르게 바뀌고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곳이 많아졌다 해도 고유한 인간의 감성을 어찌 흉내 낼 수 있을까. 결국은 사람인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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