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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Jan 27. 2024

창업을 한다는 것: 창업의 민낯

네메시스 왕성호 대표님과의 대화

CES는 그야말로 기술을 필두로 한 산업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 테슬라와 같은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전세계의 기술 기업이 CES를 위해 모여든다. 투자자, 언론인, 컨설턴트들과 기업인, 엔지니어 간에 가장 활발한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좋은 기회로 바이오 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스타트업 네메시스의 왕성호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왕성호 대표님은 네메시스가 두 번째 창업이고 CES 참가 경력은 15번이 넘는 만큼 스타트업 생태계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셨다. 






필자: 안녕하세요,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이나 창업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표님의 창업 스토리가 궁금하네요


왕성호 대표님: 저는 박사 학위를 따고 국내 반도체 대기업에서 일했어요. 그러다가 회사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나갈 사람은 나가달라고 했는데, 그때 옳다구나 싶어 나왔죠(웃음). 박사 과정할 때 실험실 후배, 그 친구가 소개한 사람 한 명, 옛날에 회사에 있을 때 소개받은 사람 한 명, 이런 식으로 한 명 한 명 붙기 시작한 거였어요. 처음 멤버 세 명이 괜찮았어서 순조롭게 사람이 구해졌죠. 

사업이 처음에는 사업이 꽤나 잘 됐어요. 그런데 9년만에 완전히 망할 뻔 했어요. 그 후에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하더라고요. 100억원 언저리에서요. 제 힘으로는 회사를 더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서 회사를 매각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국내 대기업 임원들에게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했는데 다들 그런 걸 검토하는 부서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미국에는 IB, 그러니까 investment banker라고 해서 M&A를 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가 있어요. 거기에 계약을 했더니 3~4개월만에 나스닥 상장 기업 2개에서 사인까지 한 계약서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때 안 팔았으면 망했을 거예요. 반도체 공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필요한 투자금은 점점 커지는데 그 정도로 큰 규모의 투자금을 받기는 어려웠으니까요. 그렇게 회사를 팔고 나서 첫 번째 회사 초기 멤버 10명 중 4명이 다시 창업을 한 거예요.




필자: CES를 여러 번 오시면서 미국 기술 산업의 변천사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미국 스타트업들이 그렇게까지 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왕성호 대표님: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선순환이에요. 그리고 선순환의 동력은 M&A라고 봅니다. 왜 M&A가 선순환인지 궁금하실 거예요. 네 가지 요점으로 정리해서 말해볼게요. 첫 번째로 창업자. 제 지도교수님이 버클리를 나오셨는데, 버클리, 스탠퍼드의 일류 학생들은 취업 대신 창업을 한다고 했어요. 구글 같은 빅테크에 취업을 하더라도 몇 년 일하다 나와서 창업하고, 7년 정도 고생하다 대기업에 회사 팔아서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을 받죠. 그렇게 계속 창업을 해 나가며 한두 개는 말아먹고, 두 세개는 애플, 구글에 팔아서 통장을 두둑하게 채운 다음 그 돈을 후배들에게 다시 투자합니다. 


필자: 그러면 한국과 비교했을 때 창업자 입장에서 미국이 더 유리한 점은 무엇이 있나요?


왕성호 대표님: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변호사가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왜 직업 선호도 1순위인가를 뜯어보면 우리가 갖고 싶은 세 가지를 다 가지기 때문이에요. 직업 안정성, 사회적 지위, 그리고 금전적 보상. 왜 우리나라는 옛날에 창업을 하는 것을 터부시했을까요? 옛날에는 창업을 할 때 대출을 하면 사장이 개인 인감 도장을 찍어야 했어요. 그 얘기는 회사가 망하면 사장이 바로 신용 불량자가 된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미국은 횡령, 배임 같은 거에는 철저한데 성실하게 경영한 사람이라면 말아 먹더라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열 개 투자해서 두 개 성공하면 대박이 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물론 의사, 변호사도 좋은 직업이지만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일론 머스크 같은 연쇄 창업자예요. 


필자: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세 개의 요점을 이어서 듣고 싶습니다.


왕성호 대표님: 두 번째로 투자자 입장에서 얘기해 볼게요. 한국 회사에 투자한다고 하면, 열 개 투자했을 때 하나는 코스닥 가고, 한두 개는 망하고, 나머지 7개는 좀비 회사가 돼요. 그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회사들입니다. 회사 문 닫으면 회사의 부채가 사장 이마에 붙으니까 사장은 신용 불량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 없으니까 가까스로 연명하는 거죠. 그래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열 개 중 하나만 회수를 할 수 있게 돼요. 미국 얘기를 해볼게요. 미국도 똑같이 열 개 투자하면 하나밖에 나스닥 못 가요. 한 두개는 망하고요. 하지만 나머지 6-7개가 인수 합병된다는 게 차이예요. 이렇게 회수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투자금 규모도 커지고요.

세 번째로는 임직원 입장에서 말해볼게요. 우리나라 M&A의 문제는 경영권 인수라는 건 사장 지분만 산다는 건데, 회사 가치가 500억이라 하면 40%인 200억만 주고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직원들 입장에서는 내 통장에는 돈이 하나도 안 들어왔는데 사장은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이상한 사람이 사장이라고 와서 회사는 점점 망가져 가는 거예요. 미국은 주식 인수를 해요. 주식 인수는 100%를 사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임직원 통장에 돈이 다 꽂히는 거죠. 직원들 입장에서 M&A가 된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 되는 거고요. 정리해서 말하면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면 망하면 가산탕진까지는 가지 않고, 잘 되면 대박이 나는 거예요.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도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거예요.


필자: 전에 창업하신 후 대기업에 회사를 매각한 분께 M&A 된 거면 성공적인 엑싯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냥 똑똑한 개발자 한꺼번에 데려오려고 그런거죠.”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과 대비되네요. 그러면 마지막 요점은 무엇인가요?


왕성호 대표님: 마지막은 국가 입장입니다. 반도체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엔비디아는 공장도 없는데 시총이 1300조예요. 우리나라 정부 예산이 올해 650조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지요. 엔비디아 시총의 10분의 1인 기업이 생긴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나라에 130조의 가치가 얹어지는 거예요. 더 이상은 전통의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지 않습니다. 테슬라, 페이스북, 구글 같은 회사가 먹여살리죠. 전통적인 대기업이 백 배 천 배로 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규모로는 그 정도의 성장세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전통적인 대기업도 잘 하는 게 중요하지만, 여기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백 배 천 배 클 수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필자: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통찰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스타트업 생태계의 큰 그림을 본 것 같은데요, 스타트업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하는 것에 정말 동감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CES를 둘러보니 구글과 같은 대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압도적인 기술력과 자본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약간의 두려움도 들었는데, 스타트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왕성호 대표님: 2016년 알파고가 혁명을 일으켰죠. 그런데 알파고를 만든 게 순수히 구글의 실력일까요? 알파고의 뒤에는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라는 영국의 인공지능 회사가 있습니다. 구글은 비싼 값을 주고 그 회사를 샀고, 좋은 멤버들이 팀 전체로 들어와서 알파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예요. 이처럼 대기업은 모든 것을 직접 하기보다는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혁신을 만들어나갑니다.


필자: CES에 와서 스타트업들을 보니 창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는데요, 그 중에서도 기술 창업이 확실히 경쟁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 창업을 할 때 CEO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이 있을까요?


왕성호 대표님: 사장의 역량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미국 500대 기업 CEO를 조사해봐도 성격과 역량이 가지각색이고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성공했구나 싶은 것들은 있었어요. 첫 번째로 팀. CEO가 기술을 다 알 필요가 없고, 오히려 너무 알면 안 됩니다. 좋은 CTO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해요. 투자자들은 사장만 보는 게 아니라 팀을 봅니다. CEO는 리더십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어느정도 사교성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고, CTO는 실제로 그걸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자: 그런데 좋은 CTO를 만나려면 일단 좋은 CEO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왕성호 대표님: 저는 그걸 기업가 정신이라고 봐요. 막연하게 멋있는 말이 아니라, 어느정도 성공을 했는데 갑질하고 그런 사람들, 자기 돈은 다 챙기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은 챙기지 않는 건전하지 못한 기업가들 많잖아요, 그런데 그건 기업가 정신이 없는 거거든요. 자기가 그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미션이 없는 거죠. 분배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잘 세워야 해요. 그것에 대한 철학적인 기반이 없으면 굉장히 휘둘리게 돼요. 대표가 휘둘리는데 함께 하는 사람이 그런 것을 믿고 따라가기 어렵죠.


필자: 그렇다면 대표님의 운영 원칙이나 철학이 궁금하네요.


왕성호 대표님: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 철학이라는 말을 쓰는 게 조심스러웠는데(웃음). 저는 주주 자본주의보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합니다. 주주 자본주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로부터 나온 개념이에요. 밀턴 프리드먼은 뉴욕 타임즈에 이렇게 기고했어요. “기업이 국가에게 져야 할 유일한 책무가 하나 있다. 그게 뭐냐, 돈을 많이 버는 거다”. 무조건 자유 시장 경쟁을 해야 경쟁 속에서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는 논리예요. 장점은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술이 발전했다는 건데,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낙수 효과는 없었다는 겁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주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자들, 주주, 임원, 직원, 사회, 고객사 등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인 배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이러한 시스템을 사업에서 풀어나가려고 노력합니다. 




필자: 합리적인 분배에 대해 고민하는 경영인이라니, 오늘 대화를 나누며 단순히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걸 넘어서 인생 수업을 받은 기분이네요. 마지막으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왕성호 대표님: 창업을 하고 예상대로 되는 건 시간 가는 일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별 이상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걸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중요해요.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망할 것 같으면 그냥 나가버리니까요. 회사 비전이라는 걸 어떻게 전달할지도 고민해야 해요. 사장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회식에서 직원들이 취해서 “사장님 저희에게 비전을 주세요”라고 할 때예요. “우리 지금 고생하지만 다같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자”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감동받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비전은 이런 거예요. “우리 회사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는데, 3년 뒤에 코스닥 갈거고, 이 정도 매출 내면 코스닥 갈 수 있다. 이 정도 기술이면 그런 매출 낼 수 있다. 그게 우리 목표다. 우리 목표가 달성되면 너 통장에 X억 원이 꽂힐거다.” 숫자가 중요해요. 숫자가 바뀌어야 비전이죠.

창업을 하면 본의 아니게 공부를 많이 하게 돼요. 좋은 일만 있지도 않을거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는 상황도 생길거고, 투자자들은 경멸하는 말도 많이 할 거고, 문전박대도 많이 당할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끈기있게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두 번의 창업을 경험한 50대 창업자의 연륜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창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터무니없는 환상도 없는 담백하고 진솔한 대화 속에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배웠고, 그래서 더 여운이 남았다. 다시 한 번 귀한 시간을 내 주신 왕성호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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