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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Feb 12. 2024

앤젤 투자자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어할까?

앤젤 투자자 Jerry와의 버스챗

CES는 수많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 제품을 선보이는 행사라는 의미도 크지만, 전 세계에서 다양한 산업군의 사람이 모인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특히 학생 신분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허들이 굉장히 낮아진다. CES 기간 내내 타고 다닌 셔틀 버스는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호텔에서 전시장까지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곤 하는데 보통 버스에서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기술 기반의 제품’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기도 하다.




Jerry Heikens: Jerry는 TIE socal angels라는 캘리포니아에 기반한 VC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How we met: CES 두 번째 날 아침, 셔틀 버스 정류장에는 전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와 친구는 베네치안 호텔로 가고 싶었는데, 줄을 서있다가 라스베가스 컨벤션 센터로 향하는 줄로 잘못 갈아탔다. 황급히 베네치안 호텔 행 셔틀 버스 줄로 돌아갔는데 줄은 그새 더 늘어나 있었다. 그때, 줄을 바꿔 서기 전 우리 뒤에 서 계시던 분이 “Come in front of me ladies, I remember you were in front of me.” 라고 말씀해주시며 자리를 내 주셨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친구가 배지의 “Angels”를 보더니 “저 분 앤젤 투자자인가봐”라고 귀띔해주었다. 앤젤 투자자? 마침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와 초기 투자에 관심이 있던 터라 “Are you here for investments?”라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 베네치안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스타트업과 투자에 대해 열띤 문답을 주고 받다가, 명함을 주고 받고, 결국 금요일 아침에 커피챗까지 하게 되었다.




나: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TIE socal angels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Jerry: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는 앤젤 투자사로써 자금 지원을 해줄 뿐 아니라 인큐베이팅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Plug & Play* 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Plug & Play는 이미 초기 창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리소스들을 갖추고 있고, 스타트업끼리 네트워킹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었기 때문이죠. 대신 그들은 발굴한 기업에 투자할 투자자가 필요한데 우리는 이러한 점을 만족시켜줄 수 있어요. 우리는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LGBTQ+, 흑인, 이민자, 여성 등의 사회적 약자(social minorities) 창업자들은 투자를 받기 위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비즈니스로 풀어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TIE socal angels는 이들이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교류하고 지원도 받으며 사업을 성장시키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미디어에도 좋은 뉴스거리이기 때문에 결국 창업자도, 이를 육성하는 TIE socal angels도 윈윈할 수 있습니다.

(Plug & Play: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전문기관으로, 페이팔, 드롭박스, 랜딩 클럽 등의 유니콘 기업을 초기에 발굴하고 투자하였다. 현재까지 35개에 달하는 유니콘 스타트업을 육성한 미국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인큐베이터 중 한 곳이다)


나: 사회적 약자 출신의 창업자의 성공적인 사업을 돕는 커뮤니티 운영을 하다니 정말 좋은 취지인 것 같아요. TIE socal angels에서 추구하는 투자의 방향성을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Jerry: 보통의 VC들은 10%정도의 성공률을 보이며, 10%의 유니콘이 VC에 돈을 가져다줘요. 우리는 80~90%의 성공률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니콘을 바라지는 않아요. 세 개의 회사만 3배 정도의 수익률로 엑시트에 성공하면 우리는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한 회사에서 대박을 내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회사가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를 바랍니다. 많은 투자사들은 오직 투자 회수만을 목적으로 투자하지만 우리는 그것보다는 회사의 성장 자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회사가 고르게 성장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나: 그렇다면 앤젤 투자자로 수많은 기업에 대해 투자 결정을 내리실텐데,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Jerry: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실 우리는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 등을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아요. 그런 것들 보다는 창업자를 중요하게 봅니다. 그 창업자가 열정적인지, 능력이 있는지, 그런 것들 말이에요. 만약 창업자가 유연하면서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템이 중간에 바뀌더라도 잘 해낼 거니까요.


나: 창업자 자체를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것이 흥미롭네요. 그러면 스타트업 피칭을 많이 보실 것 같은데, 어떤 창업자가 매력적이게 느껴지나요?


Jerry: 제가 LA로 옮기고 처음으로 참가한 피칭에서 3일간 매일 10개의 스타트업 피칭을 봐야했어요. 첫 날에 발표한 두 번째 회사의 발표가 끝나자 저는 그 창업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투자 받고 싶다면 발표를 할 때 가장 신나 보여야 해요. 피칭을 외우지도 말고 읽지도 마세요.” 라고요. 창업자는 그런 것 없이도 아이템과 회사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회계를 포함해서 말 그대로 모든 것이요. 피칭을 외우거나 읽으면 절대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없어요. 자신만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러가 되어야죠.


나: 어떤 발표든 외우면 안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이 가네요. 앤젤 투자자로 투자를 하다보면 잘 모르는 전문 분야의 회사를 심사할 때도 많을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평가를 하나요?


Jerry: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어요. 제 동료 레비는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예요. 레비는 오랜 세월 엔지니어로 IT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해서도 잘 알죠. 저는 경영 쪽으로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지 등을 판단해요. 저는 레비에게 AI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비즈니스 모델의 타당성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할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기술은 그가 평가할 거니까요. 요즘에는 AI가 확실히 화두가 되고, 모든 기업에서 AI를 외치고 있죠. 그만큼 옥석을 가리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에 구글, MS 등 유수의 빅테크 기업에서 연사를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하며 꾸준히 동향을 익히고 있어요.


나: CES에서 구글 바드(Bard)를 보니 빅테크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분야든 압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경각심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Jerry: 아까 했던 얘기와 결이 비슷할 수도 있는데, 대기업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모든 걸 스스로 개발하지는 않아요. 대기업은 훌륭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들을 사들이죠. 제 친구 얘기를 해볼게요. 회계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보편화 되었지만 각종 법적 절차를 포함한 HR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회사를 세웠어요. 고작 18개월 후에 그는 자기 회사를 큰 HR 회사에 4백만 달러에 매각했어요. 그는 회사 지분의 80%를 소유한 상황이었고 M&A가 되었을 때 그 절반을 직원들에게 나누어줬어요. 그는 모회사에 합류된 후에도 이사회에 있으며 팀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24개월은 이사회에 남는 게 일반적이고, 또 권장하는 바이기도 해요.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나: 지레 겁을 먹을 뻔 했네요. 그렇다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한 마디 부탁드려요.


Jerry: 많은 스타트업들은 customer-market validation의 중요성을 간과해요. 어떤 창업자의 아이템이 괜찮아 보여서 사용자 수가 얼마나 되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직 안 해봤다고 하는 거예요. 숫자로 제시해야 해요. 많은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좋아한다는 말은 부족해요. ‘X명의 사용자가 있고, 그 중에서 Y명의 사용자는 우리 제품을 아주 좋아하고, Z명의 사용자는 우리 제품에 A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라는 식으로 제시해야 하죠.  Customer-market validation을 통해 마켓이 충분히 큰지, 유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 매출 목표는 어느정도로 잡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잣대가 필요해요.


나: 만약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Jerry: 뭐든 찾아야해요. 아이디어밖에 없다면 영화관에 가서 설문조사라도 해보세요. 제품을 소개하고 사용할 생각이 있는지, 얼마까지 지불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적어도 150~200명한테  물어본다면 자신만의 데이터가 만들어진거죠.


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읽은 것과 정확히 같은 말을 하셔서 놀랐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한국 기업들이 부족한 네트워크를 보완할 수 있는 팁을 주실 수 있을까요?


Jerry: 해외 진출을 돕는 정부 에이전시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에이전시를 이용하면 여러 피칭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죠. Plug & Play처럼 여러 국가에 지사를 둔 AC를 통해 진출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예요. 아무튼, 모든 스타트업들에게 행운을 빌어요!




2023년 하반기에 경영전략학회 활동을 하며 스타트업, VC, AC 업계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프로젝트를 하며 인터넷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에 대해 현업에서 일하는 분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 듣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미국 시장을 조사하며 Pitchbook을 비롯한 각종 증권사 자료를 참고하고, 전반적인 생태계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익힌 덕을 이번 대화에서 톡톡히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학생인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시간을 내어 경험을 공유해주고, 언제든 다시 연락하라고 말해준 Jerry의 친절과 풍부한 경험, 겸손에서 참된 어른의 품격을 느꼈다.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내공을 기반으로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다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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