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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GRE! (1)

유학 준비의 시작인 그 녀석

by pomme

갑작스레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산은 GRE였다. 사실 학부는 Industrial Engineering이기 때문에 공학 쪽으로 쭉 간다면 GRE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에 대한 소망을 결심으로 바꿔주신 선생님이 내 성향을 고려했을 때 Business 쪽을 추천해주셨고, GRE가 optional이라 하더라도 준비할 수 있으면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셨다. 일명 '지X이'라고도 불리는 악명높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험 준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하지 않고 시작했다. GRE를 시작하고, 홈 GRE unofficial 점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까지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Industrial Engineering이라는 애매모호한 학문에 대해 미적지근했던 내 마음은 Business라는 대안을 만나며 명확하게 정리되었고, 시간 있을 때 망설임 없이 GRE를 시작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Engineering School들이 GRE를 보지 않고 있지만 Industrial Engineering은 GRE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 GRE를 준비한다면 "어떻게 공부하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GRE는 '미국 대학원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굉장히 한정적인 집단이 보는 시험이라 정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TOEFL은 독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GRE는 가능하면 학원을 다닐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유는 크게 1) 생소한 단어가 많다는 것 2) 시중에서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 3) 정확한 답을 제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1) 생소한 단어가 많다


TOEFL과 달리 GRE는 대학원을 준비하는 "미국인"들이 보는 시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단어도 흔히 아는 뜻이 아닌 다른 뜻이 나오고(betray를 여태까지 배신하다는 단어로만 알았지 드러내다라는 뜻이 있는지 알았을까...), 특정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읽히는대로 술술 푼다면 틀리기 십상인 시험이고, 독학을 할 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선생님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2) 시중에서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


GRE 책들은 대부분 선생님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들이라 현장 강의를 수강해야만 구매할 수 있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는 ETS 공식 문제집 외에는 특별히 없다. 그런데 ETS 공식 문제집으로만 GRE를 대비하는 것은 기출문제 없이 EBS 교재만 풀고 수능을 대비하는 느낌이랄까... GRE는 외울 단어가 많기로 악명 높은데 개인적으로 학원 선생님이 제공해주신 자료는 나의 공부 범위를 확연히 줄여준 소중한 알짜배기 자료였다.


3) 정확한 답을 제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GRE는 문제 은행 식의 시험이라 정해진 풀 내에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ETS는 기출 문제를 공개하지 않지만 kmf(https://gre.kmf.com/)라는 중국 사이트에 들어가면 중국인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기출 문제를 가져와서 올려놓는데, 확실한 정답은 ETS 말고는 몰라서 추측적인 답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카더라'의 홍수 속에서 정확하게 답을 제시하고 설명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한정적일 때 학원을 탐색하고 어떤 선생님이 맞을지 가늠하는 것도 상당히 고민이 되는 일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먼저 미국 유학을 간 지인이 YBM GRE 버벌 수업을 추천해줘서 따로 찾아볼 필요 없이 바로 시험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YBM에서 김여진 선생님 수업으로 GRE를 시작한 것은 천운이었지 않았나 싶다. 내가 느낀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은 핵심만 짚어주는 단어 수업, TC/SE 문제를 정확한 논리로 설명해주시는 것, 그리고 빈출만 모아놓은 RC 자료이다. 시험에서 나오는 뜻으로만 정확하게 단어를 알려주시고, 그냥 풀면 헷갈릴 수밖에 없는 SE 순서쌍을 정리해주신 게 특히 도움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었던 12월, 1월 초를 지나고 GRE를 준비하면서, 나는 되려 좋은 관성을 되찾았다. 체력 관리를 위해 거의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집 앞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했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단어를 외웠다. 수업에서는 항상 첫 줄에 앉아서 이해가 되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막히는 부분에서는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었고,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그런 표정들을 읽으시고 다시 설명을 해주시곤 했다. 단어를 외우고 그날 수업한 내용을 복습하면 5시 반에 시작한 하루가 어느새 끝나갔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바라던 미국 유학의 첫 단추라고 하니 의욕이 계속 샘솟았다.


거의 2년 전에 다닌 토플 학원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좋은 인연을 만났는데 GRE를 공부하면서도 좋은 사람들을 몇 만났다. GRE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뚜렷한 목표가 있고, 간절함도 큰 만큼 다들 정말 열심히 한다. 유학이라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도 행복했고, 사극에 관심이 있어 사학과에 입학했다가 3전공까지 하게 된 Y씨, 늘 밝고 단단한 태도로 함께 수업을 듣는동안 좋은 영향을 많이 주신 J씨, 수업에 못간 날 필기를 보여주신 H씨 등 우연한 계기로 대화를 시작하여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은 더 감사할 일이었다. GRE라는 힘겨운 싸움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료들이 생긴 느낌이었달까? 특히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있더라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는 않은) 학교에 있다가 유학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니 더 힘이 나는 것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힘이 되었던 것은 단어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라는 구절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단어까지 공부하고 난 후에 마주친 이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왜 하필 이 문장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험 일주일 전, 6개월동안 수학과 담을 쌓은 후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과정을 시작하니 수업도 어렵고 연구실 프로젝트도 버거워서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어지러울 때 딱 이 구절이 생각났다. 왜 이 구절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또다른 곳을 찾아 헤맬 뻔 했던 마음이 편안하게 정리되며 시험 준비에 온전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GRE가 어려운 시험인 것도 맞고, 중간에 지칠 수도 있다. 그러나 GRE를 시작했다면 유학이 더이상 희망 사항이 아니라 결심으로 굳어진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든 유준생들을 응원하고,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나 스스로 또한 굳센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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