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종일 배가 쌀쌀 아팠다. 배가 아파서 별로 먹지 않았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또 배가 아팠다. 거의 굶은 것이나 다름없는 토요일을 보내 놓고도 일요일 오전 내내 화장실을 들락였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이거구나 싶었던 것은 오른쪽 옆구리와 배의 아픈 부분을 관통한 등의 통증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는 통증이었다. 통증의 부위와 정도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맛도 아니고 아는 통증이라니.
몇 해 전 짧은 여행을 잘 다녀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간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원래 뭘 그렇게 잘 소화시키는 타입이 못된다. 더 예민했던 젊은 날에는 거의 매일 체해있었고 체할까 봐 잘 먹지도 않았다. 이제는 둥글둥글 못 먹는 음식도 없고 아주 심난한 일이 아니고서는 끼니도 잘 챙기는 편이지만 여전히 소화는 매일매일의 숙제다. 배가 아픈 일이 자주 있어서 조금 아픈 것은 대수롭지도 않은데 그날의 통증은 그러니까 생전 처음, 출산을 두 번이나 한 사람에게도 아주 낯선 것이었다. 아무래도 병원을 가야겠는데 이를 못 닦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지금 이 상황에 그게 대수인가 싶으면서도 이를 닦겠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칫솔을 쥔 채로 비명을 지르고 실려 나왔다. 상상도 못 한 엄청난 통증이었다. 처음에는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맹장이 터졌나 싶었고,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는 온갖 사례들을 떠올리며 부디 대수롭지 않은 병이기를 기도했다. 곧장 응급실에 갔고 염증 수치가 아주 나빠 입원을 해야 했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원인은 끝까지 못 찾았고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그때 큰 아이가 막 초등학교 일 학년에 입학을 했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수치가 떨어지질 않고 황달이 와서 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도 너무 어린아이들을 두고 온 것이 목이 메어 혹 내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너무 아프고 슬픈 생각을 많이 했다.
종종 체하거나 한 번씩 크게 탈이 나 며칠씩 고생을 해도 그때처럼 아팠던 일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는데 일요일,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이 기분. 어 나 알아. 아는 통증이야. 하고 깨닫는 순간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었다. 눕지 말고 앉아보라며 남편이 내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워 일으킬 때 나는 그날 칫솔을 쥔 채로 지르던 것과 똑같은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방으로 뛰어왔다. 다른 것은 잘도 잊어버리고 사는데 나쁜 모양으로 각인된 마음의 무늬는 닮은 시간이 출렁일 때마다 점자처럼 읽히고 만다. 어린아이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파 부재했던 며칠이,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한 마음의 무늬로 남아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눈을 더 크게 뜰 수 없을 만큼 뜨고 발을 종종거렸다. 남편은 당장 응급실에 가겠다고 난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에서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 것은 내가 이미 '아는' 통증이라는 점이었다. 익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이렇게 하면 덜 아프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일요일 저녁에 코로나로 반만 열린 응급실에 찾아가는 것은 별로 좋은 결정이 아니다 싶었다. 필요한 검사라면 월요일 오전이 지나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교수님의 얼굴은 그 이후인 데다가 망할 코로나 시기에 남편을 보호자 이름으로 자유롭게 들락이게 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또다시 집에 두고 가야 하니 나만 조금 더 참아보면 좋겠다고 미련하게 생각했다. 아무 진통제나 우선 먹고 남편이 아픈 등을 살살 어루만져주니 조금 잦아드는구나 싶어 져 그렇게 하기로 했다.
검색창에 여러 가지를 검색해 본다. 어떤 날 문득 지워지지 않은 검색 목록을 읽어내리면서 내 의식의 흐름과 흐름을 이끌어가는 집요함이 대단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 날 밤의 검색은 더 그랬다. 결국 검색이라는 것은 읽고 싶은 것을 읽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우아하고 이성적으로 오른쪽 등 통증, 상복부 통증으로 시작해서 췌장 통증, 췌장염 증상, 같은 것을 보다가 오른쪽 등이 아파요. 하고 나보다 더 일찍이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에게 지식인들이 대답해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들을 읽었다. 그러다가 체념한 듯 만성 췌장염 치료, 췌장염에 좋은 음식들, 췌장염 명의 따위를 찾다가, 아니 나는 도대체 왜 또 췌장이 아픈 거야. 뭘 잘못한 거야. 하고 좌절하며 이유를 찾고 싶어 졌다. 얼마 전부터 먹기 시작한 오메가 3. 역시 냄새도 맛도 이상하더니 췌장에 안 좋은 것이었나 봐. 오메가 3와 췌장을 엮어 검색해본다. 아니네 췌장에 좋은 거래. 뭐야 좋은 걸 먹었는데도 왜 아픈 거야. 하고 개탄했다. 검색에서 발 지압점 그림을 찾아낸 남편이 내 발의 안쪽 가운데를 꼭꼭 누른다. 꼭꼭 누르던 여러 점 중에서 딱 한 점이 눌리는 순간 어제부터 딱 거기가 찌릿찌릿 계속 아프더라. 했더니 남편은 마치 방금 전에 자기가 무엇을 먹고 왔는지를 알아맞힌 선무당을 본 것처럼 놀라 나를 본다. 거기가 췌장이지 뭐야. 마치 용한 점괘를 내놓듯이 내가 말하자 남편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또 맞춘 나는 더 슬퍼졌다.
선생님께서 내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고는 (아직 많이 아팠지만 다행히 참을만하게 잦아들었다.) 이미 아플 거 다 아프고 온 것 같네요.라고 하셨다. 췌장염이 스스로 가라앉기도 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막 아플 때 응급실에 가지 않은 것이나 밤새 끙끙 앓았던 것 따위는 조금도 억울하지 않고 오히려 진심으로 안도했다. 피검사를 하고 결과가 부디 나쁘지 않기를 기도하며 집으로 돌아와 다시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누웠다. 누워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결과가 나쁘면 입원을 할 수도 있었기에 간단한 입원 짐을 꾸려놓고 큰 아이를 불러다가 여러 가지를 일러두었다.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냉장고를 비우고 반찬을 만들고 내가 부재하면 돌볼 길 없는 사소한 것들을 하나라도 더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이들 손톱을 깎이고 잠깐씩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입어야 하는 옷들을 서랍 위쪽으로 꺼내 두고 공부할 것 꼭 지켜야 할 것 들을 약속하듯 아이들에게 당부하며 속으로 울었다. 그러다가 다시 아파지면 침대에 새우처럼 누워 쉬었다. 다행히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괴롭고도 면밀한 검사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검사 수치가 좋았고 의사 선생님 말처럼 아플 만큼 아팠으니 약을 먹으며 쉬면 된다고 했다. 수납을 할 때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그래도 나아져서 다행이에요.라고 얘기해주셨는데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원 앞 토스트 가게에서 아이들에게 줄 토스트를 잔뜩 샀다. 현관에 고개를 들이자마자 묻지도 못하고 섰는 아이들에게 엄마 괜찮대. 하고 얼른 얘기해주었더니 환호를 하며 방방 뛰었다.
2학년 둘째 아이가 쓴 일기에서. '오늘은 4교시라서 좋지만 국어가 두 개 있어서 기분이 무. 즉 원점의 기분이다. '라고 쓴 문장을 읽은 일이 있다. 원점의 기분이라니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녀석에게 기분은 수학처럼 =을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더하거나 빼서 상쇄가 가능한 숫자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나도 좋거나 싫은 기분을 더하거나 빼서 원점의 기분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어렵다. 나에게 기분은 '묻힌다. 혹은 묻는다.' 같은 느낌이다. 즐거운 일이 생겨 좋은 기분이 묻었는데 싫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그 기분이 덧 묻는다. 이미 묻어 있는 기분을 다 가릴 만큼이 아니라면(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나는 여러 기분들이 얼룩덜룩 묻은 채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내가 떠나고 몇 년쯤 뒤에 남편이 재혼을 하면 덜 서운할까.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첫째가 너무 커버려서 재혼이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년쯤 뒤면 괜찮을까 3년쯤 뒤에 라면 아이가 진짜 사춘기에 접어들것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가 이 일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 너무 어린아이들이지 않나. 아직 젊고 괜찮은 내 남편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다가 늙는 것은 또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에 나서기 전 싱크대 앞에 서서 혼자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었다. 무슨 상상을 거기까지 했나 싶지만 그 아침 내 상상은 거기까지 가 있었다.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약 꾸러미를 들고 돌아와 큰 병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산뜻하게 원점의 기분이 되지는 못했다. 진하게 눌러 적었던 글자를 다행히 지우개로 지워낸 조금 구겨진 종이처럼 앉아 얼룩덜룩 묻어있는 기분 중에서 기쁘고 감사한 것을 떠올리려 애썼다.
글 ㅣ pommesoupe. 김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