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는 매미 소리는 배터리가 다 되어가는 시계의 초침 소리를 닮았다. 애처로운 듯 하지만 의외로 집요하다. 정말로 다 닳아버려서 작은 초침 한 칸을 옮길 기운조차 없어도 제자리에서 안간힘을 다 해 째깍 소리를 내고 마는 시계처럼, 불편한 순간을 모면하려고 억지로 얼굴을 펼 때 기어이 꿈찔거리고 마는 속눈썹처럼 집요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송충이는 무척 무섭지만 의외로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내 경우에 송충이는 언제나 어깨나 팔 위에 자기 마음대로 툭 하고 떨어져 '깜짝 놀람'의 감정을 먼저 느끼게 했다. 그래서 제 감촉을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음에도 무섭다. 그 예측할 수 없음이 무서움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나를 콱 쏘지만 않는다면 가슬가슬한 몸을 쓰다듬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살짝 만져만 보겠다는 마음이 전달되지 않아 만약 제가 나를 콱 쏘아버리면 어쩌나. 나는 쏘인 부분이 부풀고 아파 며칠 괴로울 텐데 그 순간의 놀람과 무서움을 못 이겨 어쩌면 너를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는다면 너를 동강 내거나 짓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너는 송충이 나는 겁이 많은 사람, 겁이 많은 쪽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송충이는 만져보지 않는 편이 역시 좋겠다.
여름이 찾아오고 나서 자주 맥주를 마셨다. (사실은 거의 매일 마셨다.) 맥주를 마시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그 한 캔이 그날의 가장 큰 기쁨일 때가 있다.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가감 없는 순수 그 자체의 행복을 느꼈다. 아아 너무 좋아서 멈출 수가 없더라니.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두 가지 숫자인 나이와 몸무게는 일일일캔이 버겁다고 말해주었다.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또 며칠은 맥주를 마시지 않고 아직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늦저녁을 땀을 내며 걸어 다녔다.
이 시간에 동네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좀 멋있다. 대개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쯤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들인데 내가 매일 나와 걷는 것이 아닌데도 늘 그 길에 있어 눈에 익는다. 그들은 오래 그리고 매일 걸어서 생긴 다리의 잔근육을 가지고 있다.
글씨를 정말 잘 쓰는 사람을 명필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보다 숙필熟筆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숙필가의 필체가 명필가의 것처럼 수려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매일 오래 써 온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잔근육은 무시할 수가 없다. 아. 나에게도 저런 잔근육이 있었으면. 매일 맥주를 마시는 대신 매일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씩씩하게 걷다가 집이 가까워오자 다시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의외로 맥주는 죄가 없다. 죄는 내게 있지.
@pomme sou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