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4
창궐한 지 약 2년 6개월 만에 코로나에 걸렸었다. 먼저 앓았던 사람들의 증상 자백에 비하면 의외로 앓을 만했다.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급사하는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아픈 걸로 따지면 역시 어릴 때 앓았던 때가 더 컸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로 몸이 허약했다. 시도때도 없이 코피가 난다던가 소아마비인지 뇌수막염인지 뭔가 중대한 병에 걸린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어릴 때라 그런 치명적인 정도는 알지 못했고, 그냥 존나 아파서 괴로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또 호기심이나 무모함은 어찌나 가상했는지 다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늘 다치기 일쑤였다. 잠수부 흉내를 내겠다고 입에 대나무 작대기를 물고는 책상에서 점프하다 수직으로 바닥에 꽂혀 목구멍에서 피가 줄줄 난다던가, 비오는 날 동네 애들이랑 축구하겠다고 집앞 동사무소 지하 뜰에서 놀다 미끄러져 바닥에 난 못에 머리가 뚫린다던가, 퇴근하는 엄마 기다린다고 퇴근길 어귀에서 팅팅볼 갖고 놀다 어디 담에 넘어갔는데 그거 꺼내려고 담 넘다 철제 방범용 창살에 팔뚝이 뚫려 엄지 만한 구멍이 뚫린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엄마는 아픈 나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어릴 때부터 별별 시도를 다 했지만(민간요법 중 '자라 따기'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돈까스 사준다고 엄마 따라갔다 자라 따인 기억이 있다), 단 한 번도 그 걱정이 나의 자유를 월담하지는 않았다. 맞벌이 가정이었기에 '일을 해야 한다'는 부모의 의무가 나의 개인 시간을 보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근무 시간에 방치되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관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지도 않는, 내 기준에서는 건강한 부모님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고통에 노출되는 일들과 더불어 혼자가 되는 시간이 많았다. 농촌 출신에 책임감이 막대한 부모님의 핏줄인지 형성된 인격인지 그 연원은 콕 집을 순 없지만 여하간 나에게 사람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준 것은 맞다. 그래서인지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자일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긍정할 만한 가치의 상像을 간직하고 산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무척이나 닮았다. 둘 다 혼자 살 줄 알고, 자기 자신을 감당하는 걸 넘어 일체하는 1인분으로 산다. 누나랑 나는 이 둘이 얼마나 닮았는지 매번 새삼스럽게 배운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플 때 자신이 낳은 6남매에게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자식들도 자기가 아플 때 자신의 엄마에게 그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괜시리 걱정끼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인데, 그 핑계의 근거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 기인한다. 일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19년도에 한창 서울에서 혼자 지내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뜸 누나한테서 연락이 와서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보니 별일 아니라며 병원에서 꿀 빨고 있다고 너스레 떨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누나를 통해 알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나한테 단 한 번도 안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한 적이 없다. 그런데 좋은 소식도 없는 거 같다.
아빠도 자연사로 자살하기까지 어찌나 고집스러웠던지 생각해 보면 끈질기다는 게 뭔지 새삼스러워진다. 처음에는 21세기 젊은 인간답게 개인주의적으로 해석했지만, 20대 중반부터는 그런 알량한 가치관으로 보기에 나의 기성세대는 꽤 단단하고 강인했다. 그들은 삶 그 자체로 자립과 독립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살아내 보여준다. 그렇다고 자아나 자의식, 개성, 개인 따위로 함몰되지도 않는다. 기성에게서 그런 걸 찾으려고 하고 따져 묻기를 멈추지 않는 인간은 오직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상태일 뿐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개성들을 부모에게서 발견하려고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저 나의 만족에 머무를 뿐 죽은 아빠도 살아 있는 엄마도 개성 따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개성이나 자아나 정체성 따위에 집착하고 발견하려고 하는 건 비유적으로 확실히 질병이라는 생각을 갖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아무리 책을 통해 그런 자각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주변 현실에서 그런 실천적 삶을 비추어 보지 않으면 헤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의식에 대한 관심과 집착을, 나아가 정체성에 대한 구축 욕망을 자극하는 건 오늘날 만연해 보이지만 그 자장의 구조를 알아보거나 그 안에서 일종의 자유의지를 구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소위 '대중적 욕망'은 만연해 있는 현상들을 한꺼풀 덧입힐 때 효과가 있을 뿐, 그 이상 이하로 진전되면 인식되지도 않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다뤄지기 일쑤다. 요즘 읽고 있는 [현대의 침몰]은 오늘날의 도시 현상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고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해 보여준다. 확실히 21세기 도시 서울에 사는 인간들의 행태나 가치관, 감정 표현, 삶의 추구 등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지금의 젊은 인간들과 소위 기성 세대 간 차이가 꽤 뻔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 책에서 한 사례로 나오는 인물이 있는데, 그 인물은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자유'란 것을 삶으로 살아냈다. 그는 당대에 수많은 비난을 받기도, 찬양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예언적 인물이 되어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그런 '자유'를 불경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내세워 집착하면 집착했지, 그 자유를 말하지 않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다.
예술가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요구와 더불어, 도시에서 예술 활동을 할 때 이 '개성'의 문제가 더욱 적나라해진다. 예술가가 입는 옷, 자신을 꾸미는 꼴, 말과 글 등으로 그가 남들과 다른, 독창적이라는 힌트를 주고받는 게 일종의 관습이다. 이 기저에는 도시에서 만나는 수많은 익명들에 대한 경험이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내는 과정이 도시에서 어떻게 모양나냐에 따라, 개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 자극되고 이와 더불어 신체에 대한 집착도 가담된다. 위의 책에서 19세기 파리에 사는 인간들이 의복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 남에게 두드러지지 않게 되면 누구든지 남과의 쉬운 연결을 맺을 수 있다. 도시에 물질적인 대변동이 일어났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은 군중들 속에 뒤섞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보다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연결될 수 있게 조장되었던 의복의 동일시가 이제는 옷 입는 걸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흐른다. 여자들은 노출을 더욱 적나라하게 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유행으로 소개되는 사례에서는 여자들이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하기 위해 벗기 시작하고, 가슴에 구멍을 뚫어서 방울 같은 걸 달면 더욱 아름다운 가슴이 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고, 여기에 더해 부러 물에 적셔서 축축한 상태로 극장에 가고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는 식이었다. 그 유행이 만연하던 시기에 파리에서는 폐결핵 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제발 그렇게 젖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고(...)
의복의 대량 생산과 더불어 다양한 요인들이 이런 현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사는 이상 사람들이 이렇게 '개성의 문제'에 노출되고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걸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익명화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무관심도 심화되지만 덩달아 무관심으로의 자기 노출 또한 강화된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갈 때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고민하는 일, 그리고 그 고민의 기저에는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를 감추고 또 감춤으로써 전면에 드러내는 '스타일'이라는 표현. 정작 표현되는 건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한정되지만 그 누구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렇게 입지 않는 욕망의 은폐. 패션이 개성의 문제와 결부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자존감이니 자신감이니 하는 따위의 자아 감각들을 맛보기 시작한 이상 결코 의심되기가 쉽지 않은 무늬만 논리가 내세워진다. 이런 행태들을 분석하려고 했던 몇몇 기성 세대 학자들의 글 속에는 심리 문제와 더불어 인격적 폐해, 가치관의 위기 등으로 귀결시켰지만 정작 도시를 지탱하는 각종 요인들의 종합으로 풀어내지지는 않고 도리어 개인의 의지 문제, 취사 문제, 욕망 문제로 돌려버리고 만다.
도시에서의 '길거리'란 세넷의 분석대로 공적 영역의 사생활화다(그래서 숱하게 욕망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사생활의 공간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집밖의 공간을 농도 옅은 사적 공간으로 누리고자 한다. 백색 소음이라는 핑계를 들며 카페를 사적 공간으로 쓰는 것(나는 이 생활을 어느덧 10년째 하고 있다. 스타벅스에서도 일한 적 있는데, 그 기업은 '카페'라는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브랜딩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소위 '개성이 강한 사람', 공공 장소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게 가하는 '여기가 늬집 안방이냐?' 식의 비난 등등. 기성 세대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오늘날 젊은 인간들에 비하면 꽤 구분되어 있었기에 저런 기율紀律들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가정에서 하는 행동과 바깥에서 하는 행동의 엄격한 구분을 둘러싼 표현들이 오늘날에는 '자기 맘이지,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더해 자기계발의 다양한 버전들이 '나'에 더욱 집착하고 매달리게 만드는 근거로 주변 사람과 타인, 기성 세대의 언행들을 불쾌하고 모욕적인 것으로, 때로는 착취와 억압,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눈치보지 말고, 내 삶을 살자'고 주장하고 또 정당화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개인주의자들을 양산하려고 하지만 이에 대한 폐해나 비판적 책임은 '합리성'으로 떠넘기는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도리어 합리성을 위축시킨다. 사실 개인주의를 둘러싼 양상들을 관통하는 가장 난처한 모순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언행-사람됨의 일체감을 더욱 엄격하게 벼리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잣대는 익숙하게도 타인에게서 더욱 강화된다.
자의식이나 정체성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시기의 주된 문제의식은 주변 관찰, 현실, 타인에게서 신념과 가치관을 유대 맺기가 버겁다는 것이었다. 17년도를 기점으로 이 집착을 내려놓기로 했을 때, 무방비가 된 나는 도시의 영향들에 속절없이 지배되고 만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증축할 때 가장 요긴하게 준거로 삼았던 건 다름아닌 '고통'이었다. 고통은 평등해서 모두가 각자의 몫으로만 할당된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기준이 될 수 있고, 또 아픔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자의식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수행'적 삶이기도 하다. 이 방면에서 현실적으로 모범적인 상을 보여주는 이가 나의 어머니다. 나는 이 시기를 보낼 때 늘상 배우는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었는데, 17년도에 실족하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파본 적이 있어서 아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작가들이 유대를 맺는 명제 하나는 '고통이 위대한 스승'이라는 문구다. 고통은 우리를 배울 수 있게 낮추고, 또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하지만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즉 '건강'이 찾아오면 이 상태는 소실되고 끊임없는 상기의 수행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그 교훈을 삶에 새길 수 없게 된다. 의도적으로 이 수행을 중단하는 순간, 삶은 주변 환경에 완전히 맡겨지고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된다. 나는 이 고통을 여러 어휘로 표현하려 애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부채감, 무기력, 무감각, 강박, 불안, 분노 등으로 명시화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고통의 가장 큰 지분은 '무감각'인데, 가치관이나 신념에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부여할 수 없게 되어 현대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빨려들어가는 무방비의 무력감이다. 나는 근 5년 동안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코로나를 앓고 나서 나는 이 '배움'을 다시 만회하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도시를 알아보고 현대를 알아보는 시도들이 어떤 도움이 될지 확신은 없지만, 도시의 영향들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떼어낼 수 있을 거란 신중함이다. 나는 여전히 시집을 읽어도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예술에 대한 흥미가 거의 소진되었다. 개성이 강한 사람, 세련됐든 속물적이든 자의식을 표출하는 사람, 감각 세계관 관찰 등의 어휘에 '자기'를 넣는 사람 들을 마주하면 기운이 빠진다. 식상해진 건 분명 나 자체인데, 아무것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상태에다 온전히 책임을 묻기에는 기력도 없다. 혼자는 위험하다, 혼자는 위태롭다, 혼자는 불가능성이다 따위의 문구를 자백해도 어떻게 혼자가 아닐 수 있는지 못배우고 있다. 문제는 혼자라는 거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사私史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필요는 인지한 상태에서 그 방법을 배우지 못해 패배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그게 가능할까? 최저 생활로 살아가는 시민으로 그게 가능할까? 혼자가 그게 가능할까?
도시의 영향들을 인식한다는 건, 자기 삶 속에서 그런 영향들의 흔적을 살핀다는 뜻이다. 돈이 돈으로만 여겨질 때는 꽤 손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삶과 돈이 결부된다고 생각할 때는 무척이나 경직된 가치관으로 다뤄지기에 이에 대해 도움을 받는 사유는 찾기가 버겁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에 대해 재산과 소득, 유산 혜택을 연결지으려고 하면 돈 그 자체는 의뭉스럽게 하나의 개성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마치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혹은 주된 이유가 아닌 것처럼, 때로는 개별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도시라는 공간에서 '선택'이 돈으로부터 무관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의미와 가치를 돈으로부터 떼어내려는 강박이 하나의 코드로 자리해 있을 때, 학자들이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실천'이 과연 상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코드의 연결은 특히 기계 기술에서도 나타난다. 세넷이 분석하듯,
... 사려깊은 사람들은 기계사회가 도시문화의 표현도구(의복)를 지배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가까운 모든 벗들—사회분해, 소외 기타 등등—이 재미있게 될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체가 기계의 제표현이기 때문에 자기 신체로부터 분해(열)되는 것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하는 행위와 사고가 어떤 영향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현실화'는 분명 방해받고 있다. '자기들의 육체가 기계의 제표현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런 인식은 모욕적이거나 엉터리라고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나'에 대한 집착이 가로막고 있는 이런 영향 관계가 돈을 포함해 다양한 요인들을 파편화하고 있다. 세넷이 활용한 비유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도시는 거대한 상자다, 그 안에 유리창을 계속 넣어 깨지고 조각난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져도 계속 우겨 넣는다. 도시의 친절함에 나 자신을 반사시켜 바라보기를 멈추면 '혼자'는 추락해 그 파편들에 찔릴 뿐이다. 내가 만회하고 싶은 건, 그 파편들을 이어붙이려는 걸까. 아니면 박히고 아무는 걸 반복해서 피부가 두꺼워지기를 바라는 걸까. 무감각의 고통은 아직도 할말이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