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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Sep 16. 2022

만회 일지 3

https://www.youtube.com/watch?v=u7K72X4eo_s



22.09.16


순탄치 않았던 치료가 끝났다. 또 다시 상처가 벌어지는 걸 느끼며 나는 도대체 뭘 위해 치료를 자행했는지 생각했다. 건강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잘 살고 싶다의 구체적인 현실 이미지를 위해서? 아니면 불안과 두려움, 스스로를 감당하는 데 너무 많은 삶을 갖다바치고 있다는 데 따른 부채감과 무력감을 완화하기 위해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 와중에도, 나는 나 스스로를 책망했고 내가 하지 못한 나의 노력들을 찾기 급급했다. 슬프고 외로웠다. 이 버릇이 나를 좀먹는 걸 알면서도, 혼자인 나는 늘 내가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더 할 수는 없었는지 나의 불가능성들을 가능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심리에 시달린다.


한동안은 이런 심리가 나로 하여금 변화하도록, 관계에 있어서 더 나은 상황들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와 너라는 불가능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도약의 힘이라고 믿었다. 누가 좋든 한 명이라도 하면 된다고, 너는 하고 나는 안 하고 따위의 무능력의 욕구불만을 최대한 배제했다. 그럼에도 만약 실패한다면, 내가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스스로를 거둬들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나는 뭐가 맞는지 더 이상 믿음을 갖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서서히 잠식되듯, 아무런 확신의 기대도 할 수 없어졌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그 누구에게서도 믿음이 가는 조언을 받지 못한 채 지금껏 굴러왔다. 90년대에 태어나 도시에서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사실에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나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합리적인 태도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이해가 투사나 전이, 상대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걸 경고하고 거부를 내비췄다. 자기 일이 아닐 때는 누구나 그렇게 안전하다고 믿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별로 진정성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나 그런 관계를 필요로 한다고 믿는 게 내 입장에서 더 현실 같았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내 안에서 포용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확장된다는 것이었고, 철학을 읽는다는 건 그 과정에 있어서 최대한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책 속에 담긴 개념이란 필히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개념이 창안되고 활용되는 것이라고. 만나는 사람들의 근심 걱정 우려 들을 진정성있게 들을 수 없었던 건, 그들은 그런 문제에 자기 삶을 바쳐가며 책 한 권에 담기 위해 쏟아부은 적도 없이 그들의 노력을 싸잡아 말한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불가능한 꿈이 있었다. 행복한 사전이라고 국내 개봉된 일본 영화가 나의 꿈과 닮아 있었다. 그는 사전을 만들면서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더디고 느리더라도, 자기 삶의 대부분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결국 삶이 곧 책인 그런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연애를 시작한 이래로 줄곧 내 또래들은 관계를 늘상 가볍고 함부로 다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고유한 의미를 조심스레 찾아가는 그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낭만이 깊었던 것이다. 관계에 서툴고 관계에 취약한 사람들은 현대라는 이름으로 온갖 합리화를 꾀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방식이 얼마나 허약하고 깨지기 쉬운지만 보일 뿐이었다. 쳇바퀴 굴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크게 보면 매한가지라 하더라도, 쳇바퀴가 길고 긴 여정이라는 감각으로 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서 관계에 대한 태도가 왜 이렇게 허약해지고 말았는지 나는 굳이 책을 찾아볼 마음이 없었다. 그건 내 삶이었고,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심심찮게 들리는 각종 인간군상의 면모였으니까. 차라리 어떠한 기대와 희망도 내던지고 당장의 충동과 욕구 충족에 쌍심지 켜는 게 인생 덜 손해보는 거라고. 지금 당장에 혈안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지금을 희생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방식을 완전히 혐오하고 거부하는 게 맞다고. 사실 나도 꼰대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우리는 우리고 그들은 그들이라는 연속의 절단을 굳게 믿으며 공부를 할 때마다 마주하는 나이 든 사람, 죽은 사람들의 관찰과 고민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인류라는 건, 유산이라는 건 늘 이런 방식으로 굴러가나 싶다. 아무리 받아들이지 못해도,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제때에 그걸 이해할 수 있게끔 기회가 주어져 있다. 20대 초반부터 나는 나의 한계를 긍정하며 언젠가 이 한계를 넘어서 못 보던 걸 보게 될 거란 확신을 기반으로 그때의 나를 내던지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아프고, 어디까지 상처를 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두려움과 불안이 극심해지더라도, 나에겐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불가능은 여실히 왜 문자 그대로 불가능인지를 보여주고, 혼자는 얼마나 지독한 시련인지의 서사를 써내려갔다.


사람이 계속 실패하고, 어떠한 노력도 거부당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의미도 결국 희미해져갈 때 종국에는 그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게 된다. 허튼 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 자기 상승에의 이념을 강력히 스스로 덧입힌다 한들, 끊임없이 '그래 지금이 바닥이다, 비로소 심연이다' 어떤 고고함을 획득하려 한다 해도, 그 몸부림의 역설은 끝날 수 없다. 세상 일에 면밀히 관심을 갖다 보면, 이런 고고함에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확고한 혼자가 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욕구불만을 드러내든, 그들의 선택과 과정에는 꽤 유의미했던 진화의 확률이 적용되어 있다. 우리는 오늘날 확률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정작 확률의 주관화는 받아들이기 버거워 한다. 사람들의 이기심 앞에서 확률은 늘 '남이 아닌 나'의 욕구다. 100만 분의 1의 확률로 진화된 개체의 종 유지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확률이라고 나타난다면, 자기 자신은 그 중 1이라는 믿음을 가져가려고 하지 압도적으로 무수한 실패에 스스로를 위치지우지 않는다. 끝내 사라지고 마는 어떤 존재에 스스로를 수용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꿈이다.


나의 꿈은 이상과 낭만이라는 불가능에 맞서야 했고, 불가능한 확률이라는 오해에 맞서야 했고, 종국에는 이 모든 문제가 '나의 문제'라는 누명에 맞서야 했다. 그래서 하나씩 맞섰다. 20대 통틀어 관계에서 한 작업이라곤 늘 그랬다. 이상과 낭만을 걷어내고, 불가능이 아니라 가능의 여정이며, 서로의 문제를 우리의 형성으로 가져갈 수 있음을 계속 시도했다. 그 시도의 연쇄 속에서 안타까운 건, 나의 상처를 내가 지켜주지 못할 망정 도리어 외면함으로써 계속 노력하려고 했다는 것이며, 끝내 나를 위한 선택을 함에 있어서도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다는 소외감에 지독해지고 마는,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처지였다. 나는 돌아갈 집도 없고, 위로와 위안을 받을 친구도 없고, 나를 지지하고 긍정해줄 목소리도 없었다. 나는 그 처지를 언어로 채웠을 뿐이었다. 그런 삶을 산 사람들에게서, 죽은 사람들에게서 위로와 용기를 받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혼자 받으며 살았을 뿐이었다. 오늘날 이런 얘기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상처가 많은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나는 늘 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요구되었고,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었다. 이런 상황의 당사자인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됐든 이 감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연대성이 보장되어 있다. 나도 이 연대성을 믿었고, 여전히 믿는다. 그럼에도 이 연대성이 어떤 눈을 가리게 되는지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은 언어로 인해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으면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조금이라도 벗어났다 싶으면 다시 시도해보자는 의지가 곧장 재생한다. 이 방식을 자기파괴적 충동이라고 보는 세속화된 관점이 만연한 이상, 나는 그들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몇몇 학자들이 이런 만행으로부터 그런 자아들을 옹호하기 위해 마련한 용어들은, 오늘날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다. 개념은, 고통을 덜어낼 때에야 유효한 법이다. 나는 프로이트의 고통을, 그가 마주한 환자들의 고통을 긍정한다. 어떤 반동으로 그런 개념들이 형성되고야 말았는지 부정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나면, 그 개념들은 도리어 고통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관계 속에서 단계가 와해되고 사라진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평등이라는 역동적인 절대 원칙에 포섭되는 순간 불가능성과 가능성은 전복되고 만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이 단계에 와 있다. 일찍이 혼자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와 노력이 아무리 바깥에서 함부로 다뤄진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그 방식이 나를 살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서야, 드디어, 혼자를 놓아줄 수 있게 될까. 그동안 나를 살 수 있게 해준 그 관계 방식, 나와의 관계를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걸까. 눈물이 난다. 그동안 공부한 모든 내용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때가 됐다고. 이제 넌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너무 슬프다. 치료의 끝이 애도라니.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몇 주 전부터 기이한 직감이 줄곧 떠올랐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보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아빠이길 바랐다. 지켜봐주고 있는 게 아빠야? 나도 모르게 속으로 물었지만, 당연히 어떠한 응답도 들리지 않는다. 들렸으면, 계속 들렸으면 나는 곧장 정신병원으로 달려갈 인간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치료란, 지키는 일이었다. 소중하게 여겼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시도였다.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만회라는 이름으로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건, 기나긴 방황 속에서 잃어버린 실마리를 다시 붙드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이자 잊어버린 마음이었으며, 아픔과 상처로부터 기인한 마음이 아니라 언어를 그만 놓아주는 마음에 기인한다는 걸.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17년도와 함께 나에게 도착한 그 강렬했던 현실이, 나에게 책을 그만 읽게끔, 스스로 매달리기를 중단하기를, 자아의 함정에 빠지지 말기를 자신의 삶으로 경고했던 선배들의 조언들이 감당하기 힘든 상처였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면서 언어를 놓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 기본기를 배웠음에도, 거진 10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런 언어를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모양이다. 이 애도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 시와 언어가 이렇게 멀다는 걸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다. 나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고 있다. 치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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