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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Dec 12. 2023

모험

내면 작업 3


23.12.12



어제는 잠을 좀 많이 잤다. 일어났더니 어머니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근 4달 째다.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약이 누적돼 더 힘들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기는 했었다. 9월부터 어머니를 간병하며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만하면 견딜만큼 잘 견뎠다는 걸 알기에 어머니의 눈물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미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항상 그랬듯,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머니의 정신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몸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또 내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각자의 분수를 벗어나지 않는 이 애뜻한 배려가 미안하다. 융의 용어를 빌리면, 내가 지금 느끼는 어머니는 내향 감정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깊고 치열한지 본인 스스로도 당혹스러워 한다. 여기에 내가 사회문화적 이해도를 덧붙여 어머니를 이해하는 방식이란, 6남매의 장녀이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3~40년간 책임으로 도맡아 왔다는 걸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표현해내는 데 무척이나 서툴지만 누군가 표현의 길을 터준다면 순환이 일어난다는 걸... 고작 이런 단순한 사실을 알아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어머니라는 사람으로서의 장단점을 고스란히 거울로 전환시켰다. 어머니의 표현 부재는 곧 나의 표현 갈망으로, 자신의 감정을 먼저 꺼내지 않음으로 인해 그런 '감정'을 느끼려고 발악하며 발달시킨 나의 민감도. 나의 개인적인 기질과 성향이 맞물려 성장한 지금의 나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내용에만 관심과 흥미가 끌리기 때문에 노력하는 이상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요 며칠 큰이모와 누나랑 같이 있을 때도 표현하지 않았던 눈물이 나와 만나자마자 터진 건 아니다. 나의 일평생 지켜본 어머니는 그저 자신의 감정이 나올 때가 언젠지 본인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게 맞다. 저녁에 누나한테 엄마가 울었다고 말했더니 놀라 했다. 사실, 누나도 나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나는 집에서 중재자 역할로 살아가는데, 누나한테 엄마를 이해시키는 일이나, 엄마한테 누나를 이해시키는 일을 주로 한다. 사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단 사실 하나가 지금 떠오른다. 우리 집에서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단 걸. 왜 나는 그런 걸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 난데없이 기묘하다.


 어제는 작업을 거의 못하고, 종일 엄마를 보조하느라 하루가 다 갔다. 항암 치료 초기에는 면역에 무리가 가지 않는 환경 조성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을 썼다.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를 최대한 활용해 신체에 침입할 여러 요건들을 미리 예방하는 일이 포함된다. 먹는 것부터, 숨쉬는 것, 지금까지 검증된 신체 항상성을 위한 여러 조치들까지. 그리고 초반에는 음식도 건강하게 신경써서 해주고, 또 주변에서도 몸에 좋다는 것들을 보내주려고 마음을 써주셨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누적될 수록 환자의 몸이 변해간다. 입맛이 변하는 게 가장 큰데, 잘 먹던 음식도 이제는 불쾌하게 느껴지고 여러 상황에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간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면역 유지를 위해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 쉽게 말해 골고루 먹이는 걸 시도해야 하는데 환자가 이에 응해주지 않는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맞서고 있고, 간병인은 이를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환자의 정신과 신체가 서로 호응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해야, 정신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항암 3차부터는 이제 요리도 직접 하지 못한다. 환자가 뭘 먹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늘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야 하고, 하나라도 먹을 수 있을 때 먹을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게 최선이다.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섭고도 강력한 힘이라는 걸 새삼 배운다. 간혹 자식들이 노부모의 사라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버선발로 방방곡곡 '오직 그 음식'을 찾으러 분투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입맛에 대한 이야기는 어릴 적 '초밥왕'이라든가 '식객' 같은 만화 속 에피소드를 통해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입맛을 잃어버려 괴로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어제 울면서 했던 얘기도 입맛 얘기였다. 얼마나 힘들면 우실 정도였을까, 헤아려지는 건 명확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한다. 감정의 깊이는 오롯이 공감될 때 승화될 수도 있지만, 그런 감정이 바깥에 나와도 안전하다는 걸 깔아놓을 때 억압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정신을 지킨다는 건 이런 것이다. 언어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나도 티가 나지 않더라도 본인도 모르게 그런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또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게' 진행되는 일이다. 나의 간병은 어머니의 무의식을 간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어제 자기 전, 적극적 명상 작업을 했다. 이번에 마음을 먹고 한번 시도했는데 처음이라 확신까진 아니어도 성공한 것 같다. 어제 했던 명상 내용이다.





적극적 명상


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나를 세운다. 무의식을 만나러 가기 위해 복장은 갖추지 않고 나체로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선 떨어질 준비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다이빙을 준비하는 선수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한발자국 앞으로 뛰어내리면 떨어질 거라는 걸 느낀다. 심호흡을 하고 뛰어든다.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을 느끼다가 어느새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몸에 힘을 빼기 시작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간을 360도 돌린다. 즉,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그래서 사방이 중력인 것처럼 공간을 돌린다. 그러자 나는 떨어지면서 고정된 상태로 있는다. 이윽고 앞에 하얗게 빛나는 구멍이 나타난다. 나는 거기로 들어간다. 하얀 공간에 도착하자 나는 '누구 없어?'라고 말을 건다. 그러자 동그라미의 갈색인 뭔가가 나타난다. 정확한 형체는 기억나지 않지만, 갈색 원반으로 둥둥 떠 있다. 나는 그 대상에게 '널 보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갈색 원반이 '나도 그래'라고 말해준다. 나는 신이 나서 무슨 말을 할까 공굴린다. 이런저런 말을 걸어봤는데 묵묵부답이다. 살짝의 조바심. 그러다 갑자기 갈색 원반이 하얗게 굳은 어떤 석고상, 인간 형체를 한 동상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그 순간 나는 머리 꼭대기 저 위에서, 살짝 사각으로 있는 어디선가 나를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여기서 꺼내려는 어떤 흡입력을 느낀다. 나는 갈색 원반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얗게 굳은 동상을 그냥 지나치기가 왜인지 미안해서, 알록달록한 꽃다발로 치장을 해줬다. 그리고 따라나서려다가 '안되겠다'는 느낌과 함께 흡입력에 몸을 맡겨 그 공간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다시 처음에 있던 어두컴컴한 공간이다.


 왠지 설렌다. 이런 건가? 적극적 명상이라는 건. 나는 다시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리고 추락. 이번에는 붉은 광경이 펼쳐진다. 용암, 화산 속 같다. 강렬한 검붉은 색 공간이다. 나는 다시 '누구 없어?'라고 말한다.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다시 흡입력을 느끼고 빨려들어갔다. 다시 원상태.


 이번에는 떨어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기로 한다.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왠지 설렜다. 그러다가 초록색 테두리를 한 사각형이 나타났다. 사각기둥 위에 얹혀진 느낌으로 장식된 사각형, 왠지 신전 앞에 있을 법한 사각 기둥이다. 이윽고 하나 더 기둥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얼굴이 반쯤 먹혀 없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나는 말을 걸어보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다가 그가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낀다. 나는 선택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에게 잡아 먹힐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잡아먹히기로 한다. 그의 입이 거대해지며 나를 허리까지 한입에 베어문다. 나는 씹힌다. 그리고 나는 그의 몸 안에 흡수된다. 나는 그와 동화된다. 나는 얼굴이 반쯤 먹힌 남자로 걸어다닐 수 있다. 그러나 내 몸 위에 그의 몸이 있는 느낌, 마치 인형옷을 입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나는 탈피를 하듯 그를 벗어낸다. 그리고선 나의 피부가 점점 보라색이 된다. 용의 비늘 같은 껍질이 피부에 돋아난다. 나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즐긴다. 


 이후 이런저런 무의식적 이미지를 만나다가 잠에 들었다. 상도동이 또 나왔다. 




적극적 명상 내용에 대해서 지금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나마 '반인반수'의 상징? 하지만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무의식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기분이 들어 다행이다. '빨려들어가는 느낌', 그것은 내가 무의식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감각이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겪었던 그 체험은 내 삶에 엄청난 미스테리였는데, 드디어 그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거 같다. 당시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간혹가다 구석진 모서리나 벽지의 무늬를 보면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때 나를 내맡기면 왠지 내가 지워 없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일렁여 무서웠다. 그런 경험을 몇 번 겪다가 한번은 그래, 끝까지 맡겨보자는 식으로 그런 빨려들어감을 받아들였다. 이 행위는 꽤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환하게 불 켜진 곳에서 눈을 뜬 상태로 어떤 무늬를 보면 임의로 이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때 느낀 감각을 '무한의 감각'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으며, 이후 고등학생 때 미적분을 배우면서 이런 원형의 연결을 찾고자 '무한'에 강한 이끌림을 받기도 했다. 이런 원형 감각과의 조우가 밑바탕이 돼 20대 초중반에는 친구와 함께 수학 세미나를 같이 하기도 했다. 나의 중대한 관심사는 역시 '무한'이었고, 그래서 칸토어 논문을 공부했었다.


 살다보면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 고백 속에 이런 무의식과의 조우 체험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꽤나 미스테리한 경험이고, 또 여러 인간들이 그런 소재들을 갖고서 '공포'라는 이름으로 창작물을 만들기 때문에 대체로 '무서운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간이 자기 정신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나처럼 내면에 관심과 흥미가 많지 않더라도, 인류 모두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이질감에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면에의 관심과 흥미가 많은 사람들은 이를 탐험하거나 탐구하고 싶어 하며, 그래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발견해낸다. 이성 사용자로서 이에 대한 일등공신은 '융'이라고 생각된다. 융보다 더한 공헌을 한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사람에겐 각기 다른 성향에 따른 완숙도가 있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고, 내향인에 걸맞는 완숙도를 추구하며 또 발달시키고 있다. 나는 인간 내면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갈고닦고, 또 그런 일이 사회 인정으로부터 다소간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수행해낼 의지가 있다. 내향적 성향이 완숙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본인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결국 갖은 분투를 극복해내며 자기 안에 범인류애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의 사투는 곧 각기 다른 인간 존재의 있는 그대로를 재배치하는 싸움이다. 초반에는 투사-보상 작용으로 온갖 외부 대상들과의 사투로 펼쳐진다. 저 새끼가 감히 나를? 이라는 분개와 모욕, 세상에 대한 환멸과 멸시, 경멸, 혐오와 냉정으로 온 세상이 얼룩져진다. 내향성의 시작은 보통 이렇게 외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자신의 내향성을 자극하는 원인이자 이유라는 걸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철학 공부를 쇼펜하우어로 시작했던 건 이런 영향 관계가 작용한 결과였다. 내가 그에게서 배운 건, 심리와 언어가 별개의 사태라는 것, 의지와 세계가 별개로 작동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투사'라는 말을 몰라도 투사라는 걸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보다 세상을 극복하는 걸 선택했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여러 내향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었고, 반면교사가 될 수 있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극복했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물론 그가 도달한 경지는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정말이지 끝까지 밀고 나간 위대한 여정이긴 했다.


 내향인의 완숙도가 있는 만큼, 외향인의 완숙도도 있다. 무의식에의 탐험과 자기 극복은 상대적으로 내향인들에게 유리하고 또 쉽게 추구될 수 있다. 외향인들은 바깥 사물들과의 교호 작용에 쉬이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무의식적 영향을 자꾸만 바깥으로 투영하고 또 바깥에서 해소하려고 하는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몇몇 학자들이 인간 일반을 대상으로 '내면'을 강조하거나, 성찰을 필수 사항으로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의 주장은 옳을 수 있고, 타당할 수 있지만 그 주장이 '진리'가 되어선 안 된다. 돌려 말하면 그들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관점이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이거나 마땅히 그런 메시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겨냥되지 않고 '모든 사람 혹은 일반 사람'으로 불필요하게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 만약 어떤 인간이 '사람들은 이런 게 필요하다'며 특정 행위를 모두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는 성장이 필요한 인간이며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주장하는 것이다. 외향인에게 내향 활동을 도덕화할 수 없으며,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고 있는 내면 작업도 외향인이 하는 스타일과 분명 다를 수 있으며, 또 외향인에게는 때론 불필요할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날 도시 인간들은 한 개인이 자기 정신 안에서 기괴한 이미지를 마치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끼고 다루고 있을 때 소위 '정신병자' 취급한다는 걸. 나는 외향인이 아니기에 이런 사회적 인식을 극복하는 데 앞장 설 자신이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의 무의식적 연상을 이해시키고, 또 그것이 악마화되지 않을 수 있게끔 설득하는 걸 '감히 내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런 인식을 극복하는 데 앞장 설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수고로운 정신 작업을 대신 해줄 만큼의 용기와 의지가 있다. 나는 여태 인류사가 이런 방식으로 흘러 왔음을 안다. 각자는 각자 본분에 맞는 역할을 할 뿐이고, 그것이 때로는 최악의 결과가, 때로는 최고의 결과가 스펙트럼처럼 맞물리며 지금까지 굴러온 것이라고. 내가 여태 공부하고 추적한 여러 텍스트들 속에서 우리의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건 정신 영역에 한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어쨌든 애송이에 불과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어디까지 완숙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조력하지 않는 이 척박한 책상 앞에서도 지금까지 왔다. 어머니와 누나는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건 왜일까? 내가 이해되어야 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현실을 처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해되어야 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남들이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라고. 융은 일찍이 이 비밀을 깨우쳤던 거 같다. 아직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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