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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Jan 22. 2024

주체의 부담

내면 작업 10


24.01.22



꿈 #1


나는 무리와 함께 있다. 고등학교 친구가 섞여 있고, 우리는 재수를 한 것처럼 어딘가에 1년 늦게 합류하는 정황이다. 합류하는 곳에는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이미 와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한 교수가 나타나고, 우리는 어떤 과제?처럼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나는 어떤 두려움을 마주하지만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문제는 2차 방정식의 증명 문제였다. 꿈에서 방정식을 해독하는 과정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둘과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무척 활발히 했고, 나와 남은 무리들은 다소간 이해하는 데 벅찬 느낌으로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방정식이 의미하는 건, 시간의 조건부에 따라 수행해야 할 과업량이 한 측면으로 수렴할수록 급증하는 그래프를 가리켰는데, 대충 해석해내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할 때의 한계'를 증명해내는 걸 의미하는 방정식이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증명해낼까 고심했다. 최대-최소의 접근으로 풀어야 할까? (꿈 속에서 나는 칸토어 논문을 공부할 당시 접했던 어떤 유명한 미적분 정리 증명을 스치듯 떠올렸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공굴리며 진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먼저 와 있던 고등학교 친구는 약간의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보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다가 꿈에서 깬다.


꿈 #2


시골 외갓집에서 나와 사촌동생, 엄마 그리고 어떤 멋진 중년의 남자가 있다. 엄마는 우리 먹으라고 엄청 많은 고기(버팔로 윙? 립? 같이 양식 비비큐 따위의 서구식 양념 고기 메뉴였다)를 내놓았다. 사촌동생도 뭔가 자기가 요리를 해내는 장면이 있었던 거 같다. 거기서 나는 어딘가로 접속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게임 속 세계? 같지만 꿈 속에서 게임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가는 길이 험난한데, 어떤 난관을 뚫고 중간에 도박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봤다. 상세히 기록하지 않아서 나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희미한 꿈 #3


기록하지 않아서 거의 잊어먹었다. 꿈에서 나는 하강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보드? 같은 걸로 내려가는 경기에서 무척 자신감 찬 상태다. 첫 경기에서는 거의 날아다니듯 순위권이었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자신감있게 경사를 타고 내려가다가 문득 나이 든 중년의 여자를 만나는데 그 여자는 무척이나 평범한 어떤 아줌마 같다. 그녀는 경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러나 실력이 무척이나 출중한 베테랑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녀가 나에게 무슨 삼?을 같이 먹으라고 조언을 했다. 나는 꿈에서 인삼? 산삼?을 말하는 건가? 싶은 느낌이었다. 조금 내려가다가 내가 이후에 뭔가를 먹기 위해 과도를 챙겨야 해서 다시 올라갔다가, 가방에 칼을 넣으면서 혹시나 내려가다 넘어지거나 뭐가 어떻게 돼서 이 칼에 찔리는 사고를 방지하고자 가방 깊숙히 칼을 단디 챙긴다. 약간의 염려를 갖고서 다시 경사를 타고 내려가다가 꿈에서 깬 거 같다. 나더러 한 게임 케릭터처럼 '잘 쏜다'고 칭찬하는 목소리를 한 여자에게서 들었던 거 같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평온하고 안전했다.






요근래 내면 작업으로부터 멀어졌었다. 1월이 되고 나서 뭐 하나 끝장을 보자는 심산으로 미뤘던 게임을 과도하게 했던 탓일까. 어머니의 간병 시절도 이제 끝자락에 다다르고, 슬슬 삶을 재건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시화시키고자 무의미의 깊은 늪을 극복하기 위해 게임을 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직 거쳐야 할 허들이 높은 느낌이다. 사회적인 인식 때문인지 명확히 분간가지는 않지만, 철학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게 마냥 편안하지가 않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조금 다루고 넘어가는 게, 내 주체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느낌을 받기에 오늘은 좀 다뤄야겠다는 비합리적인 동기를 느낀다. 그 전에, 꿈과 융에 대한 기록을 마저 하고 싶다. 


 꿈에서 아니마가 나오는 건 이제 비일비재해진 거 같다. 요즘에는 '도박장'과 '외갓집'이 자주 나온다. 도박장에서는 내가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어떤 결과값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몇 주 전에 꿨던 도박장 꿈에서는 포커 게임? 블랙잭?에서 홍진호를 이기며, 행운의 여신이라고 상징화된 한 아니마에게 보상을 받았었다. 이후 나오는 도박장에서는 별다른 전개는 없고, 그런 장소에 도착하는 가벼운 전개만이 나타나고 있다. 외갓집과 엄마는 요즘 자주 나온다. 꿈에서 엄마는 정말 한결같이, 늘 안정적인 인격인데 실제 엄마의 모습과의 괴리는 거의 없고, 또 내가 엄마를 어떻게 여기는지,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거의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다만 '외갓집'이라는 장소가 요즘 왜 갑자기 나타나는지 잘 모르겠다. 근래 실제 현실에서 이를 연상시킬? 혹은 암시할 만한 이벤트는 전무했다. 다만 나의 지식이 부족한 탓에 이 상징 이미지가 와닿지 않을 뿐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다. 


 꿈에서 수학 증명 문제를 풀어야 했던 건, 나의 오래된 두려움을 보여주는 거 같다. 나는 유년 시절 수학을 무척 좋아하고, 또 자신있어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쯤이었을까? 학원 대표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갔을 때 그 자신감이 산산히 부서지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난생 처음 보는 '증명' 문제에 나는 완전히 뇌정지가 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력감에 허덕이며 수험장에서 나왔던 거 같다. 같이 올림피아드에 나간 친구는 총 두 명이었고, 우리 셋은 친해서 같이 게임을 하고 놀거나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 그중 한 친구가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꼈었다. 이후 수학에 대한 나의 자신감은 현저히 떨어진 채 이전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채로 지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도 왜인지 수학 동아리에 들어갔었는데, 늘 '증명' 문제에 무척 까다로워했다. 학교에서는 이런 증명을 문제로 다루지 않는데, 꼭 이런 올림피아드 따위의 경시 대회에서는 증명 문제만을 내는 거 같았다. 이런 걸 잘 푸는 애들은 왜 이렇게 잘 푸는 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왠지 나만 뒤쳐지는 기분을 늘상 받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자신감-두려움의 심리적 문제 측면에서 나에게 필요했던 건 옆에서 그런 문제를 풀 수 있게 지도해줄 수 있는 교육의 경험이었다. 실제로 나의 부모님은 일반적인 의무 교육에 지원을 해주고자 했지만, 실질적인 교육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분들이었다. 그들 또한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나 할까. 20대에 들어서서 자발적으로 여러 학습을 자행해 온 나의 이력을 보면, 나의 가정 환경에서 내용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거의 전무했다. 수학의 '증명' 같은 보다 원론적인 접근에 대한 것도 언어 추상에 특화된 나의 정신 기질에 비추어 봤을 때, 여기에 맞춘 교육 방식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 어린 나이에 그래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경험을 했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나의 이런 이력 때문에,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줘야 하는 입장에 있을 때 늘 이런 개별 정신의 특이성을 섬세히 파악하려는 안테나를 발동시키게 된다. 재능이나 천부적인 능력 따위를 제하고,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특징적인 정신 성향에 맞춰 배울 수 있을 때 가장 조화롭고 편안하다는 걸 믿는다.


 여하튼, 이런 배경이 있기에 어제 꿨던 수학 증명 문제 꿈은 나에게 이제는 스스로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내라는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꿈 속에서 나는 직면하고 맞서려는 태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가장 최근에 다루고자 했던 내면의 과제 중 하나인 방황도 꿈 패턴으로 나타나는 '어딘가로 당도해야 하는' 양상이 부분적으로 연결된다. 나는 이런 꿈의 배열 속에서 은근히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하지 않아 현실의 내가 방황하고 있는 걸 꿈이 그대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요해에 도달했던 건, 보상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묻는다. 진실로, 나는 방황을 하고 있는 게 맞는가?


 어쩌면 나는 방황하고 있는 모양새를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진실로 방황하는 게 아닌... 방황한다는 걸로 무마하고 싶은 현실의 안주는 없는지. 꿈이 반복해서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어딘가로 가는' 양상은, 내가 실질적으로 전심을 다해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견인한다. 나는 방황조차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못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려움은 분명 하나의 열쇠라는 직감이 든다. 몇 가지 이력들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방황을 하고는 있지만, 고된 방황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 이전에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스스로 해내는' 두려움이다. 실패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내가 직접 부딪히고 있는가, 바로 이 문장이 현재 내 방황이 보여주는 진실로 여겨진다. 나는 여태 나의 방황에 직접 부딪히지 않고 있었다.


 즉, 주체의 부담을 짊어지기 싫어 어영부영 지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융을 더 읽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 과정은 절대 여기서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울려 온다.


… 책임지울 만한 사람도 없고, 가르쳐주고 개선하고 벌주어야 할 사람도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이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요구를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꿈의 이마고들의 주관 단계에서의 해석이 결코 등한시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또한 그 과정이 양쪽 어느 한 방향의 지나친 편중과 과장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P. 199


 나는 유년 시절의 나처럼 더 이상 나약한 주체가 아니다. 소심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내성적으로만 스스로를 감추는 주체가 아니다. 이 현실을 다시금 재각인해야 하는 건, 내가 스스로를 향한 시선과 태도를 흐트려놓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자발적으로 두려움에 스스로를 내어놓을 수 있으며, 무의식과 대면해 어떤 견딜 수 없는 이탈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견뎌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 표현'이라는 알 수 없는 수행에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 이런 것들로부터 도망친다 한들, 내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융 말마따나 책임지울 만한 사람도 내세우지 못하고, 가르쳐주고 개선하고 벌 줄 수 있는 사람도 구하지 못한다. 나는 일찍이 모든 걸 스스로 시작해내고, 또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어느 순간 균형을 잃은 채 자꾸만 외부 현실에서 구하고 의존하도록 변하고 말았다. 이 교묘한 변용이 어떤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이제는 하나둘 선명해지지만 지금의 내가 되살려야 할 건 바로 내 안의 두려움이라는 불이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가. 사실, 그토록 두려워하는 그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닌가. 서서히 잠식해 가는 실존적 죽음. 자살도, 소진으로 말미암은 죽음도 아닌 그저 무용하게 사그러드는 불씨. 돌멩이나 사과처럼 순응하는 생의 순환도 아닌, 그저 허황에 매달린 채 자신의 목을 걸고는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의자의 단차를 낮추는 비겁한 죽음. 이런 부정적인 묘사는 나에게 잊어선 안 되는, 잃어선 안 되는 소중한 그림자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나에게 그런 비겁함은 삶에 있어 무척이나 필요한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모습이라는 걸 말이다.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떠한 힘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이 있는 꽤 기묘한 상태다. 무언가를 가치있게 여기고, 무언가의 가치를 박탈하는 그런 방식으로 힘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상태다. 나는 이런 상태를 일상의 준거로 삼아보고자 한다. 20대 때에는 이런 상태가 마냥 추구되지는 않았었다. 소위 명상이나 기도 따위로 간신히 가닿은 상태가 일상의 범람하는 자극으로 인해 너무나 쉽사리 오염되어 무의미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또 홀로 고고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한들, 바깥의 변화무쌍한 세계와 동떨어지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인가?에 대해서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 아니 기만적으로 보였다. 이런 회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는 초연한 정신 상태로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 비열함인지를 하나의 정언명령처럼 달아두고 거둘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태가 이율배반을 필요로 하는 현실과 사실 다른 게 아니라면. 마찬가지 이런 이율배반을 필요로 하는 게 바로 정신의 정체라면. 현실과 마찬가지로 정신 또한 이율배반의 바로 그 상태로 견지해야만 재편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내가 두려움과 함께 걸고 싶은 도박은 바로 이런 도박이었다. 지금까지 망치기만 했던 이 상태로부터 리셋하지 않고 이어서 진행한다는 게, 과연 어떤 현실인지 나는 겪어야만 한다. 이 정당성을, 결국 나는 게임으로 우회해 다시 배웠다. 게임은 애초에 망했으면 다시 시작하라고, 좆망이면 내다 버리라고 권유하는 시스템으로 기획된다. 이 혐오스러운 구조로부터 애시당초 과감히 등지지 못하고 계속 마음이 이끌렸던 건, 바로 이런 전향에 도달해야 됐기 때문 아닐까. 나는 게임 중독자로 살았음에도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 기획자, 게이머-유저들의 정신 상태들을 혐오하고 부정적으로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적인 투사, 희망이라고는 일말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 가학성으로 현실을 잔인하게 지워버림으로써 '재미'라는 기만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 이도, 게임을 하는 이도 하나둘 저급해지는 레이스를 '게임 산업의 부흥'이라고 부른다면, 그것들에서 돈과 벌이를, 취미와 향유를 누리는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도 주지 못하겠지만. 이율배반은 이런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게임을 싫어하면서도 결국 타락하고 나니 게임을 '통과'해야만 했던 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투사를 벗기지 않고도 안전한 의미화를 유도해낼 수 있는, 마치 절개하지 않고도 절제 수술을 가능케 하는, 그런 마법같은 치유가 세상에 실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싶은 세계, 만나고 싶은 세계, 살았노라 고백할 수 있는 세계는 결국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심리의 세계다. 나는 물질의 세계를 부정할 마음이 없지만, 물질의 세계를 교묘히 심리의 세계로만 다루려는 현실로부터 다소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무수한 사람들의 투사에 휩쓸리고, 또 '초자아' 따위의 검열관으로 스스로를 옭아맨다 한들, 결국 나는 부담으로 짊어져야 한다는 걸 더욱 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식이 확장될수록, 투사 또한 확장된다. 투사를 나에게로 거둬들이는 작업은 평생에 걸쳐 끝나지 않을 거 같다. 그만둘 수도 없다. 실제로 그만둔다고 방치한 꼴이 지금의 모습이다. 그만둔다는 건 현실과의 불화에 스스로를 무능하게 방치한다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거둬들인다는 건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주체의 부담으로 짊어진다는 것이다. 선택지는 이 둘뿐이다. 나는 아무리 살아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될 일인데 말이다. 결국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불수의적 삶이다. 삶이 곧 불수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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