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와의 협업 시스템

내면 작업 27

by 사과와 돌멩이


25.05.03



환상 이미지(25.05.01)


10:00 나를 느낀다. 나를 보는 나의 시선. 괜찮아. 나의 열등아. 이상과의 괴리야. 지금도 괜찮다. 푸른 초목들과 천둥이 치는 지금 바깥 비가 내리고. 흐린 오전. 괜찮다. 이 상태 나로서 있는. 감각과 감정 모두 괜찮아지는. 자연이 되는. 변화무쌍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살아 있음의 살아 있음. 안에서 밖으로의 길이다. 거꾸로는 미로가 되는 길이다. 나선으로 들어와 안에서 곧게 뻗다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길이다. 존재의 미로. 팔이 8개다. 그 가운데서 금빛이 난다. 존재의 아우라가 금빛이다. 벽이 희미해지고 옅어져 마치 평평한 공간처럼 주변이 펼쳐져 있다. 기운이 더 이상 땅에만 붙들리지 않아 벽에 둘러싸이지 않을 수 있는. 싸여도 되는. 상태. 시선. 눈을 감고 뜨는. 아직은 하얀 공간이다. 내 안에 가부좌를 튼 금빛 아우라의 사람이 크게 있다. 그 가운데에 있다. 그 이미지가 갑자기 떠오른다. 바닥은 시멘트인가 대리석인가. 아주 가는. 작은 모래알의 흰. 모래. 하얀 모래. 너무 곱고도 시원한 하얀 모래. 난 나를 보고 있다.



꿈 #1 (25.05.02)


앞 꿈은 기억나지 않고, 마지막 꿈만 기억난다.


앞 장면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어떤 식당 정보를 알고 있는 걸 내게 공유해준다. 공덕역 쪽인 느낌이다. 그 식당의 장면으로 바뀌는데 마치 방송 화면을 보듯 하다. 그 식당은 몹시 특이하다. 식탁에 하얗고 큰 식탁보 같은(혹은 장례식장이나 회전을 빠르게 하는 식당에서 쓰는 그 하얀 비닐 식탁보 같은) 걸 까는데, 그건 마치 쌈싸먹듯 먹는 거다. 월남쌈의 하얀 면처럼, 만두의 피처럼 가느다랗고 얇으면서도 하얗다. 그걸 깔고 그 위에 밥과 반찬이 나온다. 장면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반찬과 밥을 덜어 그 하얀 쌈에 올려 그걸 먹기 좋게 찢어 싸먹는다. 무슨 고기 반찬도 보이고 대체로 잘 나오는 걸 보며 난 여기 밥이 잘 나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맛있어 보인다. 그러다 어떤 중년의 여자 손님이 왔는데, 처음 온 것이다. 그래서 주인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한다. ‘아 우리 가게 처음이시구나. 그럼 다음에 오시겠어요?’하며 뭔가 좋게 말하는데, 난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누구나 다 처음이었을텐데 알려주는 게 맞지 않나?’하고(거기서 이미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 온 중년 여자가 여기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물어보는 장면을 볼 때 나도 궁금했었다. 또 가격은 얼마인지도 궁금했었다. 근데 알 수 없었다. 뭔가 그 주인 아저씨의 반응이 나에게 ‘비싸게 구네’라는 인상을 주면서도 ‘아 이건 방송이라 뭔가 짜여진 대본처럼 한 건가?’하는 느낌도 든다. 그 후 어떤 장면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고 꿈에서 깼다.



꿈 #2 (25.05.03)


앞 장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성 같은? 궁전? 근데 분명하지는 않다. 그 지하의 어떤 보물을 마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도둑의 방법으로 얻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의 조력자가 한 명 있는데, 그 남자와 같이 모의를 한다. 그 남자가 좋은 수가 있다며 어떤 두더지 같은? 쥐 같은? 인간형, 근데 인간이 그런 포유류의 느낌이 아니라 이족 보행하고 말을 하는 면모이다. 그 두더지 조력자가 찾아오고 어떻게 해야 지하의 보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 계획을 말해 준다. 이들은 땅을 파서 지하로 굴을 내 그 곳의 보물을 가져올 계획이다. (정확히 순서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내가 어떤 땅굴로 몸을 밀어넣고 내가 직접 들어가려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근데 내 몸이 꽉 끼여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되는, 완전 황토색의 흙을 만지는 장면이 있었다) 이들은 일을 아주 잘하는 인상을 내게 준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고, 그 두더지 조력자가 어디서 쥐? 두더지? 동물들을 무수히 많이 호출한다. 이들이 지하로 굴을 내는 역할인 거 같았다. 본격적인 땅 파기가 시작되고, 일은 착착 진행된다. 이제 준비는 끝나고 계획이 코앞인데, 난 이 일이 까딱하다간 타이밍이 안 맞아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운이 좋아야 한다는 느낌. 그 뒤로 뭔가 아이들? 같은 어린 사람들을 맞이해 어떤 견학? 을 시켜주는 장면도 있었다. 내가 뭔가 전수하는? 알려주는? 그런 장면… 전반적으로 구체적인 장면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오는 인물들과 관계적 느낌이 모두 좋았다.






요즘 진짜 계속 뭔가 먹고 싶다... 당 중독인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또 꿈에서 먹을 것들이 자주 나온다. 꿈에서 그걸 보면 난 실제로도 땡기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며칠 째 빵을, 페이스트리 류의 촉촉하고 바삭하고 무엇보다 맛 좋은, 그 빵을 먹고 싶다... 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근데 근처에 그런 빵을 파는 곳이 없다. 몇 년 전 제빵 장인에게서 빵 디테일을 배워버려 맛을 알아버린 탓이 크다. 어제도 아쉬운 대로 편의점 빵으로 대체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매일 생각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새벽 2시에 깨고 말았다. 요즘 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 무의식 활성화 시기에는 어쩔 수 없다. 매일 새벽-아침에 감각 충전하러 산책을 나가다보니 밖 가게들이 모두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닌지라 매번 허탕이었다. 오늘은 또 비가 와서 잠깐만 다녀왔다.


무의식이 뭔가를 계속 하고 있다. 난 오늘, 다시금 '서두르지 말자'고 되뇌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전야제라 부른 불과 며칠 전부터 난 하루가 다르게 자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 오랜 열등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때 본 환상 이미지는 내게 뭔가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팔이 왜 8개인지는 상징으로는 선명하지만, 내 삶으로 보면 어리둥절이다. 또 정좌를 한 모습이라 불교쪽에서 왔나 싶지만 그 면모가 희미하다. 그저 팔이 8개, 정좌, 금빛 아우라만 감각될 뿐이었다. 아직 있는 그대로 보기엔 시기상조인 것이다.


내가 나의 열등을 얼마나 오래 굴려왔는지의 대가로, 내 기억과 날 구성하는 여러 체험 곳곳에 깃들어 있다. 그러니까 한 면모 갖고 작업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이 뿌리처럼 깊고도 넓게 퍼진 열등의 에너지는 나의 의식에 도착했을 때 조바심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끌려다니며 산 삶이 많은 만큼 더 깊어지는 건 덤이다. 그래도 임하고 있다. 특히 오늘 꾼 꿈에서 내가 마주해야 하는 건, 서두르지 마라는 스스로의 '앉기'. 이미 산책에서 나에게 들어온 상징들이 날 아래로 이끌고 있지만 나는 좀 더 진심으로 임해야 한다. 비가 떨어지고 있다. 바닥으로 하수로 정화 설비로 강으로 그러다 아주 느리게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아주 막대하게 위로 향하는 이 흐름. 지금 내가 왜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지, 그 중심은 나에게 있는 게 아니다. 감각 충전을 시작한 것도 이제 6일차다. 아무리 내 무의식이 나와 같이 협업한다고 해도 난 날 어기면 안된다. 두더지는 너무 사랑스럽다.


어제 '지연'이라고 부르는 나의 쓰기 시간을 다시금 가져봤는데, 확실히 잘 안됐다. 그동안 너무 성급하게만 해왔어서인지 2시간은 진짜 까마득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다. 임하되, 서두르지 말것. 인류가 종교라 부르는 그 위상을 나로서 나아가고 있다. 난 이런 의식과 행위에 어떠한 종교적 색채도 입히지 않는다. 난 종교를 믿지만 의존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누군가 종교를 믿으면 그 정신을 알아볼 수 있지만, 내 정신과 섞이지 않는다. 날 종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날 향한 믿음은 날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꿈 기록이든 내면 작업이든 이에 대한 글을 쓰면 자꾸 선禪 화법을 닮아가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지만. 그건 그거고다. 오늘, 임하되 서두르지 말것. 밖에서 안으로는 구획과 구분, 괴리와 미로가 펼쳐지지만 안에서 밖으로는 모두 펼쳐진 전체다. 나의 직관은 이걸 내 감각으로 느끼게 했다. 의식의 일은 단순하면서도 까다롭다. 참여할 수 있는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가. 머리로 내밀지 않고 몸으로 겪을 수 있는가. 크게 보면 이건 이성의 역할이자 일이라는 걸 알기에 마냥 모르고 있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랬다면 두더지가 날 도와주는 차례가 나타날 때가 아니었을테니.


나의 열등과 이상, 그리고 이로인해 길어지는 조바심과 몸의 기울임. 아마 옛날에는 이를 욕심이라 불렀겠지. 마음이 작은 구멍을 통과하려다 보니 날카롭고 뾰족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 상태다. 주위가 보일 리 만무하고 자신이 비춰질 수 없다. 그런 상태를 난 좋아한다. 더 이상 그런 상태를 열등하다고만 보지 않는다. 난 내가 통과한, 거쳐간 여러 면모를 다시 볼 수 있어야 하는 과업이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내 무의식이 알아서 도와주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 꿈 작은 엄마와의 화해는 진짜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내 무의식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그건 그거고다. 내가 나로서 산다는 그 책임을 진다는 걸 다시 배우고 있다. 난 원래 20대 때부터 또래에 비하면 매우 윤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윤리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무척 괴롭고 또 그들을 열등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고통 때문에. 어쩌겠나. 난 윤리적인 사람이다. 내가 날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난 윤리라는 말이 가리키는 영혼에 대한 자세가 이미 삶인 사람이다. 내가 나로서 산다는 건 날 다시금 받아들이는 과정과 동시에 타인을 다시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둘이 떨어져서는 될 수 없다. 말이 그렇지 결국 주체 입장에서는 그렇게 표현된 언어에 갇힐 만큼 까다롭지는 않다. 난 꿈에서 늘 누군가를 도와주고 해주고 한다. 그게 내가 스스로 포지셔닝하는 중재자다. 난 착하지도 않고 동정심도 부러 잘 느끼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이기심이든 이타심이든 그런 인간적인 언어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다. 난 다른 생명을 돕는 데서 날 본다. 내 꿈에서 빈번하게 늘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바지런히 하고 있는 날 보며 한번도 이질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번 내 열등을 다시 보며 내가 도달한 위상은 이렇다. 그 주고자 하는 마음을 이제는 나에게도 줘야 한다고.


이건 꽤 까다로운 태도로 느껴졌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다는 건 대체 뭘까? 내가 맛있는 빵을 먹고 싶다고 그걸 직접 사서 먹는다고 그게 맞을까? 이건 결국 내 환상 이미지가 보여준 그 시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로 보인다. 내가 나를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면 할 수 없다. 또 주는 나와 받는 나가 분명히, 그러나 분열이나 그런 시각적 개념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중 위상성이 선명해야 한다고 느껴진다. 일종의 중첩 상태다. 이 중첩을 배우고, 또 그런 시간으로 스스로를 할애하고 있다. 이 자기 작업이 언제까지 가열차게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두더지 너무 귀엽다 근데. 여튼. 이번 주는 나의 열등과 같이 보낸 시간으로 이 일지를 마친다. 다시 지연하러 가야겠다. 맛있는 빵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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