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1
20대에 비하면 1년이라는 시간이 가속화된 게 느껴진다.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말하는 이 시간 감각을 막상 체감해 보니 뭔가 구멍이 송송 뚫리는 기분이다. 회고해보면 작년 딱 이맘때에 새 출발을 위한 준비를 다짐했던 시기였다. 1월부터 4월, 그러다 시 작업에 뭔가 조바심이 생겨 5월부터 6~7월이었나. 그후 또 시간이 흘러 10월부터 지금까지. 올 한 해를 작년에 직관했던 '믿음의 해'로 살았나, 돌이켜 보면 무의식에 한해 그랬다고 할 수 있다.
꿈을 통한 나의 무의식적 작업의 추이는 근래 들어 뭔가 대단히 수상하다. 어떤 변혁을 꾀하는 듯한 일종의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가령 최근 연달아 꿨던 전쟁-재해 꿈은 나로 하여금 생존 감각을 불러 일으키며 대처 능력과 주도적 능력을 상기시켰고, 또 내 안의 막대한 에너지를 내가 아직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했다. 현실의 의식적 1년 회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나의 무의식적 1년 회고도 할 수 있게 됐다.
2025년 나의 정신적 여정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건 마침내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25년 5월 4일, 나의 첫 만다라 체험은 내 정신에 깊이 각인되었고, 이후 새로운 여정에 임하게 된다. 시간 순으로 보면 먼저 1월 13일 경 노량진이라는 나의 유년 공간에서 무의식적 존재들과 함께 이동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꿈을 꾼다. 전후로 이어지는 꿈의 흐름은, 내가 제대로 된 여정을 떠나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이것저것 시험해 보는 형국이다. 새로운 동네로의 이사라든가, 배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좌초된다거나, 낯선 지역에서 낯선 인물을 만나 여러 모습을 관찰한다거나 등등. 아니마는 항상 나타났지만 2월 13일에 꾼 꿈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그랜드 마)도 나타나 젊은 여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그러나 동네는 현실에 사는 나의 동네에서) 내용이었다. 이후 아니마는 이제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명이 보통 애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면 다른 한 명은 낯설거나 내가 현실에서 만났던, 그런데 내가 통합하기 버거워하는, 나의 열등함을 건드리는 성향의 여자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대개는 갈등 정황을 자아냈고, 그때마다 난 현실의 나로서 꿈 속에서 임했다.
그러다 4월 20일께 뭔가 본격적인 무의식적 작업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난 무의식적 보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보상들을 꿈에서 취하기 시작했다. 매우 희귀한 노란 거북이를 잡는다던가 창조적 생산을 내 친구와 한다거나, 혹은 관계 회복을 돕거나 또는 내 여자를 위해 먹을 걸 구하러 갖은 애를 쓴다거나 협업 등등. 기록을 보면 4월 21일부터 시작된 무의식 작업은 아주 활발히 이어져 5월 4일 만다라를 보기까지 매우 많은 걸 했다. 흥미로운 건 만다라를 보고 난 뒤 곧장 남성의 폭력성을 다뤄야 하는 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남성의 폭력성 꿈은 대체로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여자에게 연루된 남자의 폭력으로 나타났다. 난 여자를 돕거나 남자로 하여금 그 폭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돕거나 피하거나 하는 식으로 대처할 뿐이었다. 2년전이었다면 맞장구 치듯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했을 텐데 말이다. 과거 내 안의 폭력성이 꿈의 무의식으로 나타날 때는 보통 매우 기분 나쁜 남자가 꿈에 나타나 날 향해 먼저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난 그에 정당방위라는 명목 하에 더한 폭력을 가하는 식이었다. 즉 내 입장에서는 먼저 말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계속 참다가 결국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로 판단되면 더 이상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마 제일 강렬했던 폭력 꿈은 한 마을에 있었는데 다른 부족 남자가 침범해 우리 마을에 무력 행사를 하자 무기를 들고 적들을 도륙했던 꿈이 제일 쌨다. 난 남자의 집단적 폭력성을 매우매우 거부하는 윤리관을 갖고 있다.
또 별개로 과거 여자친구의 얼굴로 나타나 관계를 회복하는 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보통 이때 같이 등장하는 현실에서 친구였던 남자(내가 세속적으로, 열등하게 생각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도 이제 보니 내 꿈의 단골 손님이다. 보통 사회적, 현실적, 소위 '일반 사람들의 세상'을 상징으로서 입고 나타난다. 얼마 전에는 이 친구의 차를 몰고 모녀 2명을 집에 데려다주다가 차 사고를 내서 전전긍긍한 꿈이 있었다. 여튼 낯선 아니마의 등장은 꾸준했다. 처음 보는 아니마나 평소 안 나오던, 현실에서 만난 적이 있던 여자와 섹스를 한다거나, 하려고 하거나 등등 꿈에서 나타나는 아니마는 꽤나 주기적으로 나와 섹스를 하려고 한다. 보통 꿈에서 나는 그런 섹스를 잘 하지 않고 미루는 경향이 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나중에 하자거나 이따 하자거나 하는 식이다.
여튼 만다라 이후 5월부터 꿈이 활발해져 틈나는대로 기록을 이어왔다. 어딘가로 가는데 헤매거나, 돕거나, 해주거나 등등. 다만 미묘하게 늘 치유와 회복의 정황들이 이어졌다. 뭔가 상징들도 자주 나타났다. 중간에 폭력적인 여자가 나타나는 꿈도 6월에 들어서 꾸기도 한다. 곧 이어서는 상징적 보상을 받는 꿈도 꾼다. 하지만 또 폭력적인 공간에 갇혔다 탈출하는 꿈도 꾼다. 현실로 굳이 비유하면 과거 일본의 731 부대가 저지른 듯한 인체 마루타 공간이랄까. 꿈에서 부당하거나 부정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난 늘 이를 바깥 현실에 고발하거나 알리려고 울분을 토해내곤 한다. 그렇게 연속으로 꿈을 꾸다 1주일 잠잠하다 다시 강렬한 꿈을 꾸는 식의 반복이 7월 7일께까지 이어진다.
이후로는 2주 정도의 간격을 두고서 꿈을 꾸다 다시 잠잠하다 다시 강렬한 꿈을 꾸는 식으로의 주기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특히 8월 중순부터 시작된 '무의식적 공간'의 꿈은 이전까지는 내가 그 공간에 갇혀 뭔가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휘말리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자율적으로 모험하고 탐험하는 감각으로 그런 공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슬금슬금 '아직 내가 할 수 없는' 감각의 정황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해 주려고 하는 데 조리 도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거나, 뭔가 구비되어 있지 않아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아니마가 날 향해 러시아로 초대하는 꿈도 여러 번 나타났지만 난 '아직 갈 수 없다'고 유보하는 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월까지, 중간중간 남자 아이들이나 동생들, 여자들, 아빠 등 내가 관계 회복을 위해 혹은 포용하거나 보듬거나 뭔가 해주거나 하는 양상은 계속 이어진다. 또 10월부터는 갑자기 남성의 폭력성을 다루는 문제가 나의 이성적 규율 위에서 통제되고 핸들링이 되는 정황으로 전환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느낌이라면 10월부터는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전환된 느낌이었다.
또 현실에서 타인의 무의식적 열등감이 내 정신에 들어와 꿈에서 이를 방어하고 제거하는 참 재밌는 꿈도 꾼다. 정신적 접촉이 일어나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의 꿈을 꿀 수도 있다고, 융의 책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참 신기했다. 워낙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하는지라 바깥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 일반 사람들의 정신적 열등함을 마주할 일이 많아져 좀 고생할 거란 예감도 들었다. 작년 여름이었나. 한 친구의 정신적 열등함이 내게 들어와 내 무의식이 이를 잡아먹었던 꿈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막 경찰에게 성적 수치심을 고발하며 엄청난 원한 감정으로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의 감정 반응으로 마무리하는 꿈이었다.
11월 말부터 이전 현실의 여자들과 관계가 회복되는 꿈이 더러 나왔다. 그러다 박쥐 매미 꿈도 꾸고 최근 전쟁 관련 꿈, 막대한 에너지 꿈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정신적 상황을 보면, 내 안의 거대한 힘을 기존의 나로서 제대로 다룰 수 없기에 내가 새로이 이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하는 숙제를 느끼고 있다. 보통 꿈에서는 구조, 차체, 규칙 등으로 상징화돼 나타난다. 차체 비유가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데, 난 20대부터 만들어온 차체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이 차체로는 내 에너지의 가속화를, 순간적인 제로백을 감당할 수 없어 주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는 사실 갑자기 이런 게 아니고 꽤 오래됐는 데 내가 이제서야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근래 꿈은 내게 계속 '새로운 차를 타야 해'라고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래야 내 안의 에너지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다만 내 안의 무의식적 존재들은 날 계속 도와주고 있다. 새롭고 낯선 음식을 먹여준다거나 맛보게 하거나 체험하게 하는 식으로 슬금슬금 훈련시키듯 해주고 있다. 최근에 한 어부 아저씨가 먹여준 낯선 메기의 버터 샌드위치는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난 그걸 엄마와 누나에게 맛보여주려고 세팅하다 접시 준비가 되지 않아 기다리게 하다 꿈에서 깬다.
올해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더라. 이제 책이 점점 더 재미 없어지는 나이가 되는 걸까? 올해 읽은 책은 다음과 같다.
정보의 우주 - 나가하라 야스히토
생명력 전개 - 임승유
오늘 사회 발코니 - 박세미
지각체계로 본 감각 - 제임스 깁슨
원시인의 정신세계 - 뤼시앙 레비브륄
시작법 - 차호지
스키드 - 윤지양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 이브-알랭 부아(확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도시의 동물들 - 최태규
시각 끝 너머의 예술 - 폴 비릴리오
리듬분석 - 앙리 르페브르
창조성의 발명 -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포스트휴먼 지식 - 로지 브라이도티
12월에는 이전에 읽으려고 번역해 둔 헤일스의 '비의식' 책이 갑자기 국내 번역되어 산 뒤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 손이 잘 가지 않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앞 부분 조금 읽었는데, 역시 히사오 선생과 히로시 선생의 통찰이 옳다고 느껴지는 내용이라 비판적으로 읽을 만 해 보였다. 비의식에 대해 헤일스가 잘 다루고 있는 듯한 인상은 크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도 읽어야 보이는 게 있으니 만약 배울 점이 있다면 추후에 리뷰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2025년의 책은 없다. 다 그저 그랬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브라이도티의 책과 '읽은 기억'이 나는 몇 권 뿐이다. 새롭게 배울 점이 있었던 책은 아쉽게도 없었다. 읽는 즐거움이 있었던 책도 없었다. 책을 거의 안 읽은 수준이니 당연하다. 20대 이후로 이렇게 책을 안 읽은 적이 있었나. 좀 기분이 좋다.
내년인 2026년은 기대가 된다. 왜냐하면 슬슬 진짜 차체를 바꿀 심산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쓴다는 감각을 뭔가 되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집 완성은 여전히 내 삶의 주요한 목표지만, 단 하나의 목표는 아니게 됐다. 난 처음 시를 쓰게 된 이후부터 줄곧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데에 세간의 흐름과 별개로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젊은 청춘의 시절에는 그에 맞는 시간성이 있다 보니 조바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성급함이 청춘의 특권인 건 20대 초반부터 동의하던 정신 감각이었다. 다만 그것보다도 지금 중요한 건 내 정신의 운용이다. 다가오는 2026년은 왠지 거북이 등껍질이 떠오른다. 이 상징이 내겐 그동안의 고립 생활의 청산을 의미한다. 차체를 바꾼다라. 안 그래도 거지 같은 라미 만년필을 버리기로 했다. 이 녀석 마르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새롭게 짝이 된 만년필과 함께 과연 내 에너지가 꺼내질 수 있을까. 히사오 선생이 말한 '넘어서기'의 벽이 느껴진다. 아주 얇은 막이 하나 있다. 이 막은 너무 위태로워서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져 뚫릴 것만 같다. 그 막에 기대 어떤 진동을 느끼는 요즘이다. 퇴행도 좀 실험적으로 했다. 20대 초반에 만들어 쓰던 '정신'을 이제 나이에 맞게, 수준에 맞게 바꿀 때가 온 거 같다. 거북이 등껍질의 이름은 충동이다. 이 충동이 과연 어떻게 굴러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