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작업 36
26.02.13
26년 들어 꿈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꿈을 꿨을 때 기록을 좀 해야 한다고 느껴지면 휴대폰 메모로 적어 놓고 정리를 아예 하지 않았다. 오늘 마침 손목도 아파 하루 쉬어가자고 생각했기에 그간 꿈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26년 1월부터 지금까지의 약 1.5개월간 꾼 꿈의 방향성은 의식적 자아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과거 자아를 지탱하는 여러 가지와 결별하는 꿈이 나타났고, 그 후 새롭게 전학을 가는 식의 새 자아를 위한 환경에 돌입했다. 이때 한 그림자 아니마를 만났는데(나와 거래하려는 할머니) 내가 응해주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성장을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로 해석된다. 또 한 친구가 나더러 '성장하고 보니 최약체였네'라고 농담조로 말을 건넸는데, 꿈에서 그냥 웃어넘기고 딱히 반박하지는 않고 감정적으로 '그렇네'라는 태도가 꿈 말미에 있었다. 그림자 아니마도 내가 현실에서 할머니들에게 보이는 특유의 정서적 친근감으로 대했을 뿐이었기에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후 확실히 애인의 얼굴을 한 아니마와의 관계 비상이 꿈의 주제로 등장했다. 꿈에서 애인의 전남친이 몹시 열등한 상태로 내 집에 기생하듯 눌러붙은 걸 애인이 용인하자 내가 이런 식이면 결혼 못한다고 막 감정을 토로하는 장면이었다. 그때는 깨고 나서도 잘 파악되지 않았는데, 내 열등한 그림자가 맞는 거 같다. 나의 그림자를 잘 알아보지 못하니 투사되어 상대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걸 지금은 선명하게 느낀다.
이 주제와 더불어 예술 창작을 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서 난 한 도자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명을 '달빛 손길'이라고 매우 유치하게 지었다. 이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쓴 시 '달빛'이 분명 연루된 무의식의 상징일 것으로 보인다. 도자 작품은 매우 상징적인 사면체의 작품으로, 만약 현실에서 그와 유사한 오브제가 있으면 책상에 두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이와 동일하게 무의식이 보여준 상징들 중 그 후보군은 '짙은 갈색의 거친 질감의 그릇'과 '칠흑같은 색의 매우 작은 호리병 2개' 등이 있다.
이 꿈을 꾸고 이틀 뒤 또 창작 관련 꿈을 꾼다. 안성재가 장관으로 나와 그에게 창작 승인을 받고 내가 직접 팀을 리드하며 세운상가와 관련된 영상 작업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다시 '가속화 사건'을 겪는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할 때 반복해서 나타나는 차의 통제불능 정황이다. 꿈에서 안성재가 만든 딸기 치즈 케이크를 나만 맛 보지 못해 매우매우 아쉬웠다.
그 후 3일전부터인가. 본격적으로 차량이 업그레이드 됐다. 첫 꿈은 현실에서 알았던 한 친구가 10인승 차를 주기도 했다. 그 다음날 꿈에서는 친가 시골에서 유골을 정리하며 내 차로 나타난 산업용 트럭이 있었고, 그 차가 주차된 걸 빼서 짐을 싣고 이동하려는 장면이 있었다. 난데없이 차가 기본 자가용 수준에서 그 체급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꿈에서 어머니가 정신적 억압을 하고 있는 듯한 감정적 장애가 있다는 사건이 나타난다. 꿈에서 난 몹시 놀랐다.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엄마가 사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난 엄마의 정신적 회복을 돕고 치유하기 위해 고민하다 꿈에서 깬다. 그리고.. 그 다음날 피곤해서 낮잠을 잠깐 잤는데 한 여자아이가 나와 한 남자가 뭔가 한 걸 발설하지 못하게 혀? 성대?를 잘라버리는 신체적 폭력을 하는 걸 환상 이미지로 목격한다. 반 수면 상태랄까? 분명 의식이 깨어 있는데 무의식이 막무가내로 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난 그 여자아이가 당한 폭력을 알아차리고는 몹시 충격을 먹었고 잔인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는 현재 내가 지금 감정 순환을 나도 모르게 잘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 했다. 정리를 하면서 감정이 좀 순환되는 걸 느꼈고(눈물이 살짝 나올 정도, 그만한 에너지였음이 분명하게 느껴져 옳게 느껴졌다), 현재 내 정신적 단계가 나의 그림자 통합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게 됐다. 아마 융적인, 정신의 무의식적인 작업을 의식 수준에서 지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알아차릴 수밖에 없겠지만, 정신적 성장은 늘 그에 걸맞은 수준의 그림자로 다시금 새롭게 통합해야 하는 여정을 밟는다. 즉, 다룰 수 있는 힘이 커진 만큼 그림자도 커진다. 이를 현실 속 일상에서 알아보기란 역시 쉽지 않다.
나는 늘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게 사실 모르고 있다고, 그래서 모르는 걸 알아야 한다는 그 나선형 의식, 재귀성을 겪는다. 우리 인간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자명성'이라는 구조 아래 느끼고 보이는 그대로를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하는 구조를 거스를 수 없다. 이미 느끼고 보이는 그 감각 재료조차 학습의 결과라는 건 벌써 낡은 정보값 같지만, 즉 뇌가 알아서 필터-해석을 진행해 느끼도록 만드는 중간 결과물이라는 걸 알지만, 어쨌든 의식 수준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다. 스스로의 변용이 가능한 역사적 방향성은 결국 자기 의심으로부터 비롯되는 스스로의 포용-통합이다. 즉 자신 아닌 것을 어떻게 자신으로 포섭시킬 수 있느냐, 하는 그 비논리적인 정신 작업이 우리 인간 정신 능력으로 가능하다. 난 이 과정이 결코 깨어있는 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식은 늘 의식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현재 난 시 창작에 대한 여러 불안을 느끼면서도 언제까지고 농축시켜야 하는지, 그 끝모를 불안을 느끼면서도 잠자코 있다. 과연 쓰지 않는데 괜찮은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과연 하는 걸까. 이 상태에서 확신을 느낀다면 그만한 위선도 없을 것이다.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닌, 현실에서 움크리고 잠재태 상태로 머무는 건 언젠가 피어나듯, 우화하듯, 그런 변신을 꿈꿔서 가능한 게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상태를 견디고 또 견딜 뿐이다. 오늘 내 감정은 불안 속에서도 너가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는 너의 감정이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너무 도시의 강박 정신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기로 한다. 내 정신은 점차 도시화되고 있지만, 좀 더 성숙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사로잡히는 게 나의 길은 아니다. '도시 시'를 쓰려는 15년도부터 지금까지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지만 아직도 난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준비는 단순히 하고 말고가 아니어서 그저 과묵하게 견뎌야 할 뿐이다. 일단, 내 정신은 좀더 사회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아직도지만. 나이를 먹으니 조급함도 힘을 잃는다. 마음 한 켠에는 이대로도 좋다는 현실적인 이미지가 한가득이다. 관계에 충실하고 정신적 양심에 충실하기 때문에 사회 속 인생의 시야로 보면 이미 더할나위 없다. 관계중심의 인간적 성숙은 사실 이른 시기에 단계를 거쳐 이제는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은 뜨거운 냉정함이 늘상 켜져 있다. 쓸 때 쓰고 안 쓸 때 안 쓸 수 있는 자율권은 이미 내 삶이 된지 오래다. 다만 내 무의식은 계속 창작을 한다. 내가 아직 의식적으로 완전한 자기 갱신을 하지 못한 단계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이 문제가 화두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시간도 난 김에 내 그림자의 한 편린을 다뤘다는 데에 인식적 기록을 남겨둔다.